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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fire May 18. 2024

ENFP 정신과 의사는 힘들어요.




진료 시간에는 대화주제 무거운 이야기만 다루어야 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의무감이 들고는 한다. 무언가 환자분들이 정신과 의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대나 바라는 스테레오타입이 있을 것 같아 거기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기도 하고괜스레 의사로서 체면을 차리려고 하는 것 같기도 다. 그래서 그런지 진료 중에 가끔은 농담이나 장난을 처보고 싶기도 하고, 일상적인 대화도 나눠보고 싶지만 최대한 자제하는 편이다.


오늘은 그만 진료 중간에 정신과 의사라는 정체성의 고삐를 놓치고 말았다. 환자분이 새로 시작한 취미 생활이 베이킹이라고 하시는데, 나 또한 홈베이킹의 애호가로서 그만 반가움에 수다를 떨고 내가 만든 빵 사진을 보여드리고 말았다. 이후 정신이 들은 나는 “아무리 내가 ENFP였어도 참았어야지” 하고 속으로 나를 채근했다.


그렇게 다시 진료로 돌아와 면담을 마칠 때 나는 환자분에게 물어보았다진료를 마치기 전 마지막으로 궁금하거나 걱정되어 물어보고 싶은 것은 없는지 말이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환자분 내 질문에 베이킹과 관련된 것을 물어보시면서 결국 대참사가 일어났다. 5분 전만 해도 “ENFP여도 참자!”는 내 각오는 금세 내 머릿속에 지워진 지 오래. 또다시 신나게 베이킹에 대해 떠들어 버렸다

 

정신과 의사와 ENFP 정체성, 이 사이의 간극을 조절하기란 참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 ENFP도 나고, 정신과 의사도 나다. 어쩔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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