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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fire May 22. 2024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게 큰 감동을 준 한 인터뷰가 있다. 그것은 테레사 수녀의 인터뷰이다. 그녀가 보여준 인류애와 평화에 관한 질문에 그녀가 했던 답변은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녀의 말이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제가 한 일은 특별한 능력이나 방법이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한 번에 한 명씩 돕는 것"이라는 대답으로 기억한다.




나는 의사로 살아오면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언제나 무언가 특별한, 거창한 것을 상상해 왔었다. 그동안 여러 봉사 단체에 참여했는데, 당시에 나는 가끔 회의감을 느끼곤 했다. 어쩌면 작더라도 분명한 도움을 줬는데, 무언가 거창하지 않아 보이고 봉사자들끼리 즐기는 모습 속에는 봉사자의 숭고함이 없다며, 이런 건 봉사가 아니라 레크리에이션이라며 냉소적인 태도로 평가하기도 했다. 결국에는 이런 내 냉소적인 마음과 특별한 것을 찾는 목마름 때문에 여러 활동들을 알아보던 중, 네팔 지진이 그 시기에 일어나 해외 단체를 통해 재해 복구 봉사를 참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난민촌에서 건물을 짓거나, HIV 감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등 다양한 일을 했다. 한 번은 자원봉사자들끼리 마음을 맞춰서 봉사 활동 외에도 더 지진 피해자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자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을 난민촌 분들께 드렸는데, 그분들이 거절하는 일이 있었다. 그들은 그 돈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었다. 그분들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마음은 감사하지만 돈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의 필요 이상이며, 우리는 당신들이 지진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고 슬퍼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이 고난을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온 나는 그분들의 말을 곱씹으며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중요한 것을 잊고, 항상 거창하고 특별해지려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일들은,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그 과정들은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그다음 날에는 HIV 아이들을 보호하는 감염시설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었다. 비록 우리가 아이들의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팔에 헤나 등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는데, 아이들은 우리와의 시간을 무척이나 행복해하였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꼭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그 후로는 작더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시각장애인 요리 프로그램 같은 봉사도 열심히 다니곤 했다. 시각장애인 어머니와 그 아이들이 함께 요리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는데 아이들은 그 시간을 무척이나 행복해했고 어머니분은 계속해서 내게 감사의 말을 건넸다. 내가 눈을 치료해 드린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어느 순간 나는 항상 거창하고자 했던 것 같다. 무얼 하나 하더라도 그 행위를 경험하고 즐겨보려 하기보다는 장비를 다 구비하려고 하고, 배우지 않아서, 장비가 부족해서,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하고 싶은 일을 쉽게 포기했다. 그 행위 자체의 의미를 잊고 거창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을 상상하고 바랬던 것 같다. 사람 관계도 비슷했다. 아내에게는 샤넬 백 같은 명품 선물이 아니더라도, 그날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로 듣고,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비록 거창하지 않더라도 함께 따듯한 하루를, 기념일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어머니에게 큰 금액의 용돈을 보내지 않아도, 안부전화 한 통화,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한마디로도 어머니는 행복해하실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거창함이란 단어에 홀려, 어머니에게 충분히 훌륭한 아들이 아니야, 좋은 남편이 아니야, 좋은 친구가 아니야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일들은 미뤄둔 채로 괴로움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환자를 진료 볼 때에도 엄청 특별한 나만의 치료 방법이나, 환자를 휘어잡는 카리스마 같은 무언가가 필요하기보다는 한번 더 관심을 가지고 한마디 더 들어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 한마디와 작은 정성들이 쌓여서 무언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치료과정이기도 하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렇게 나는 내게 매일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리고 하나씩 사소해 보이는 것도 소중히, 감사히 보내고 작은 것들을 실천하며 지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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