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도 벌써 절반가까이 흘렀다. 시간은 참 빠르게도 흐른다. 그리고 내 나이를 실감할 때마다 어딘가 낯선 감정이 스며든다. 큰 변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마음 한구석에서 지금의 나는 뭔가 살짝 어긋나 버렸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지금껏 걸어온 길을 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그려보기도 한다.
어렸을 때의 나는 항상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한 마음에 조바심을 자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이란 정말 변할 수 있는 걸까?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이다. 변한 것이 있다면, 사회생활에 지쳐 생기를 조금 잃은 것과 돈에 민감해진 정도랄까?
자기 계발서나 TV 프로그램에서는 누구나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 모습에 안주하지 말아라!” “XXX처럼 살아라!” “지금의 너는 현명하지 못하다!”라는 식의 말들을 끊임없이 쏟아내고는 한다. 이런 말에 홀려 책을 읽어봐도, 어떤 내 모습이 스스로 완벽하게 느껴질지, 어떻게 해야 그렇게 변할 수 있을지 깨닫지 못했다. 그럼에도 무작정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 같다며, 나 자신을 채근해 왔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기도 했다. 때로는 이런 느낌들에 휩싸여, 덩달아 지금의 나를 미워하기도 했다.
사회에서 멋지다고 해주는 모습에 맞춰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답지 않은 행동을 억지로 해보려 노력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평소의 나처럼 행동하고, 일상은 반복되었다. "이런 하루가 쌓이다가 결국 내 인생은 끝나겠지."라는 생각이 들면 더욱 다급해지기도 했다. 어제와 다르게 특별하면서 스스로 발전적이어야 할 것 같지만, 그러다 보면 지금의 나를 미워하게 된다. 미워하다 보면 기운이 빠지고, 자기혐오적인 사고방식에 빠지곤 했다. 오히려 점점 더 나는 안될 거라는 생각에 빠졌다.
요즘에는 매일 작은 선행을 실천할 것이라며 길에 사람들이 버려놓은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그러다가도 나도 모르게 손에 쥐고 있는 작은 쓰레기를 길에 몰래 버리기도 한다. 쓰레기를 버리고 나면, 몰래 쓰레기를 버린 나는 사실 내가 아니고, 길의 쓰레기를 줍고 선행을 하는 모습만이 내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모습, 저런 모습 모두 나라는 생각을 한다.
요즘의 나는, 어떤 이상적인 모습만이 나 자신이고, 항상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을 조금은 내려놓았다. 다양한 내가 있는데 자꾸 특정 모습은 멋지지 않다는 이유로 부정하다 보니 괴로움이 왔던 것 같다. 세상에 치이며 혹시라도 내가 배품의 마음이 좁아졌다면 그것도 다양한 내 모습 중 하나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아닌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다시 잘 베풀지도 모른다. 사람은 한 가지 모습만으로 있을 수도 없고,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고, 좋은 모습을 보이는 순간이 있기도 할 테니깐 말이다.
나에게 멋지다고 생각되는 모습만이 진정한 나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내 여러 가지 모습들을 부정하고 강요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이런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즐겁게 살아가다 보면, 또 어느 때는 상냥한, 잘 해내기도 하는 내 모습을 만나기도 할 테니깐 말이다. 혹시라도 변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금 노력을 할지라도, 지금의 나도 사랑스럽지만 또 다른 나를 만나보고 싶어 노력하는 긍정적인 마음과 내가 싫어 다른 사람이 되고자 불평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지금의 나는 별로라서 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라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마음도 한결 편해지고 여유도 되찾은 것 같다. 이건 오래된 생각은 아니고 환자분들과 면담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다 보니, 나도 환자분들에게 이야기해 주듯이 스스로를 대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도움이 컸던 것 같다. 환자분들에게 전하는 내 진심들이, 때로는 나에게 돌아와 힘이 되어주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요즘의 나는 부족한 내 모습들 하나하나 꼬옥 안아주고 있다.
잘하는 내 모습도 부정하지 말고, 부족한 내 모습도 부정하지 말아야지. 모든 내 모습들은 결국 다 나이니깐 말이다.
모든 모습이 나이다. 모든 모습이 나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