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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fire Jun 09. 2024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

하루 일과 중 쇼츠 둘러보기는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일상이자 고치고 싶은 취미생활이다. 열심히 영상들을 둘러보다 보면 요즘엔 부쩍 “ADHD인 사람 특징”이나 “ADHD 의심해봐야 하는 경우”와 같은 주제의 영상들이 자주 보인다. 친구들도 쇼츠에 나오는 영상들이 나와 비슷한가 보다. 친구들은 나에게 ADHD 관련 영상 링크를 보내면서 “완전 영상 속 내용들이 나랑 똑같은데, 나도 ADHD야?”라고 물어보곤 한다. 정신과 의사이면서 동시에 ADHD 환자인 나는 그런 영상들을 볼 때마다 “와, 진짜 누가 나 염탐하나? 나 ADHD가 맞긴 하는구나!” 하며 웃곤 한다.


지금은 이렇게 ADHD 영상을 보며 웃기도 하지만, 사실 ADHD 치료를 받기까지 정말 오랜 기간 스스로 고민했다. 부족한 나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ADHD라고 진단하며 도망치려는 건 아닌지, 눈앞에 쌓여 있는 일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ADHD 진료를 받으려는 건 아닌지 여러모로 의구심이 들어 괴로웠다. 주변 지인들은 “나도 ADHD야?” 하면서 자주 물어보기도 하니, 응당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ADHD와 관련된 문제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준비물을 자주 챙겨가지 못해서 선생님께 뺨을 맞기도 했고, 부모님은 내가 너무 물건을 자주 잃어버려서 심부름을 잘 시키지 않으셨다. 시험문제를 풀 때는 틀린 것을 고르라고 하면 맞는 것을 고르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나중에는 이런 실수가 있어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냥 조금 쾌활하고 실수가 잦은 장난꾸러기 정도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이런 실수들은 신뢰의 문제로 이어지기도 하고, 생활에 불편함이 점점 생겨났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ADHD를 전문으로 하는 정신과 교수님의 진료를 보았다. 낙천적이기도 했고 그동안 털털할 척하며 외면해 왔던 내 문제들에 대해 처음으로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나는 ADHD 진단과 함께 약을 복용하게 되었다.


막상 진단을 받고 약을 먹고자 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환자들에게는 정신과 진료의 낙인효과라던지 약물의 부작용 등을 너무 염려하지 말라며 수없이 설득해 놓고는, 정작 나는 치료를 앞두고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이런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을 혹시라도 들키게 되어 소문이라도 나면, 환자분들이 나에게 진료를 안 받으려고 하지 않을까?” “약이 안 맞아서 부작용이 심하면 어쩌지?” 같은 생각들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환자들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치료를 받으라며 설득해 놓고, 정작 그러한 순간들이 내게 닥쳤을 때 나는 어떠했는가? 내게 내려진 진단과 치료를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비록 나를 거쳐간 모든 환자분들이 이 글을 읽기는 어렵겠지만, 그분들께 사과를 드리고 싶은 마음을 함께 담아 글을 쓰고 있다. 


이 외에도 ADHD 치료를 받으면서 여러 가지를 느끼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 약에 민감해서 부작용을 자주 겪고는 했다. ADHD 약도 예외는 아니었다. ADHD 약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나는 두근거림, 식욕저하 등의 부작용을 겪게 되었다. 입맛이 너무 없어서 하루에 밥 한 끼도 먹기 힘들 때도 있었다. 가끔은 정신과 약에 대한 지식이 많은 내가 혼자 상상으로 만들어낸 부작용인지, 정말 약 때문에 불편한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환자들이 약 부작용을 호소하면 원래 정신과 약은 부작용이 있을 수 도 있으니 참고 복용 해보라고 말씀드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부작용이 이렇게 힘든 것인지 직접 체험해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정확한 전공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부작용을 겪었다면 아마 나는 약을 다시는 절대로 먹지 않았을 것 같았다. 이렇게 부작용을 조절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기도 했고, 부작용이 있어도 나를 믿고 부작용으로 인한 약물조정 과정을 견뎌준 환자분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자신이 아파본 의사만이 진짜 의사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때로는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서도, 치료 효과에 대해서 의심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플라세보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환자분들이 약 효과 때문에 좋아진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이야기 하던 모습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일이 많이 쌓여 부지런해져야 하는 순간에는 일을 미룬다든지, 실수를 한다든지 같은 문제들이 꽤나 개선된 것을 보며 치료로 인한 변화를 체감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나아져 가는 과정에서 내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뭐가 내 진짜 모습이지? 원래 나는 어떤 사람인거지? 병과 나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나? 뭐가 핑계이고 뭐가 진짜인지 혼란스러웠다. 돌이켜보니 이러한 고민은 정신과 치료를 받는 분들이 치료 과정에서 많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기도 했다. 


문득, 나는 지금 치료자로서 환자분들을 돕는 역할을 하면서도, 나 자신도 그들과 함께 걸어가는 동행자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진료실에 마주하는 모든 분들이 함께 걸어가고 있는 동행자이기도 하기에, 때로는 내가 환자분들에게 위로를 느끼고 배움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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