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닮은 마음을 만날 때

by Woodfire

나와 닮은 마음을 만날 때



어릴 적부터 나는 무언가를 자꾸 흘리고, 놓치고, 깜빡하는 아이였다.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은 내게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다.

걸어가는 길마다 무언가를 하나씩 흘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약속 시간에 자주 늦어 “펑크맨”이라 불렸고, 성인이 되어서는 허둥대다 깜박한 걸 떠올리며 “아, 맞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별명은 ‘아맞다’가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그런 별명들이 그저 내 실수나 덤벙거림을 가리키는 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비슷한 일들이 반복될수록, 어쩌면 이 모든 것에 어떤 설명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 늦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ADHD라는 이름과 마주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진단을 받고 나서 돌아보니 내 주변에는 ADHD를 가진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나는 왜 우리가 서로를 쉽게 알아보고, 스스럼없이 마음을 놓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냥 잘 통한다고만 여겼지만, 지금은 그것이 '다름에 대한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서로의 복잡하고 산만한 생각이나 행동을 낯설지 않게 받아들였다. 마치 번역기 없이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난 느낌처럼. “너도 그렇구나” 하는 무언의 신호를 우리는 이미 주고받고 있었던 셈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할 때, 나는 내가 더 잘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을 자주 느끼곤 했다. 아마도 세상의 속도에 버거워지는 감각, 머릿속을 휘몰아치는 생각들, 예민한 감각과 감정의 진폭 같은 것들을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챘던 것 같다. 그런 관계에서는 “이상하다”는 판단보다 “괜찮아, 그럴수 있어”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이 짧은 한마디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게 만드는 연료였다.



ADHD를 마주한 뒤, 정신과 의사인ㄴ 나는 이 상태를 설명하는 언어들—‘부주의’, ‘충동성’ 같은 말들—에 대해 오래 고민해왔다. 때로는 그런 단어들에 거부감을 느끼며, 오히려 독특한 사고방식이나 창의적인 에너지로 바라보고 싶었다. 무엇이 정상이고, 왜 이러한 특성이 문제인가. 이런 특성을 꼭 문제로 규정해야만 하는가. 그런 질문들을 곱씹을수록, 쉽게 정리할 수 없다는 걸 더 깊이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정상’이라는 개념은 언제나 조심스러운 단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고,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세상을 다르게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자연스럽게 배웠다. ADHD든, 퀴어든, 혹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정체성이든, 우리는 모두 정상이라 불리는 좁은 틀 바깥에서 세상을 경험해왔다. 그런 우리들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더 쉽게 알아보고,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그만의 감각—일종의 레이더 같은 걸—가지게 되는 것 같다.



(ADHD는 사실 비교적 덜하지만) 다름으로 인한 차별과 편견을 겪으며 “너는 여기 속하지 않아”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어본 사람일수록, 오히려 비정상이라 불리는 현상들 앞에서 더 깊은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들은 이미 다르게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몸으로 마음으로 겪으며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진단만큼이나, 그 진단을 둘러싼 관계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뇌의 특성 자체보다, 그 특성으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지는 연결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만약 당신도 ADHD(혹은 어떠한 다름을 지닌)이고, 비슷한 고민을 가진 아이를 만난다면—말을 더듬고, 눈빛이 자주 흔들리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그 아이에게서 왠지 모르게 익숙한 기분이 든다면—그건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아이는 당신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나 같은 사람도 있구나”라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그 아이의 삶에 조용한 등불이 되어줄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가끔 “내가 너무 다르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지난다. 하지만 그 다름이 때로는 문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감의 신호가 되기도 한다. ADHD라는 이름, 혹은 우리가 품고 있는 다양한 다름들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만은 아니다. 때로는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고 연결되는 하나의 기호, 따뜻한 암호가 되어준다.



결국 우리는, 자신을 닮은 누군가를 만날 때 조금 더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만남은 때때로, 나와 세상을 좀 더 너그럽게 바라보게 만드는 이해의 첫걸음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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