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나를 아프게 할 때

by Woodfire

좋은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나를 아프게 할 때



나는 평소에도 스스로의 능력이나 내가 한 일에 대해 불안이 많다. 그래서일까. 누군가 나를 칭찬하면 나도 모르게 “아니에요”부터 튀어나온다. “정말 잘하셨어요”라는 말에도 “아니요, 사실은요…” 하며 얼버무린다. “고마워요”라는 인사말에도 우선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나를 향한 긍정적인 말 한마디를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어쩐지 칭찬이라는 건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느껴지고, 내 몫이 아닌 것처럼 불편하다. 그런데 또, 좋은 피드백이 없으면 은근히 서운하고 서글퍼진다. 참 모순된 마음이다.



내 안에는 ‘스스로를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 산다. 그래서인지 전공의 시절보다 전문의가 된 지금, 아는 것은 더 많아졌지만 오히려 그때보다 더 불안할 때가 많다. 대학병원에서는 교수님이라는 든든한 안전망이 있었다. 물론 실수라도 하면 혼쭐이 날까 무섭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그래도 교수님이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무서움을 가장한 안도감이 있었다. 지나고 나면 힘든 부분은 잊게 되는 건지, 그땐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요즘엔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 그 시절 교수님들이 참 세심하게 우리를 들여다보아 주셨구나…



전문의가 된 지금은 환자 한 분 한 분의 치료가 온전히 내 몫이다. 그리고 그만큼의 책임감과 부담이 함께 밀려온다. 덕분에 진료가 끝나도 머릿속이 복잡할 때가 종종 있다. ‘이 약이 맞았을까?’, ‘뭔가 놓친 건 없을까?’, ‘다음엔 뭘 더 해볼 수 있을까?’ 같은 생각들이 때때로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건 좋은 치료자의 자세일까, 아니면 불필요한 조급 함일까—가끔은 헷갈리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건 좋은 의사가 되고 싶은 욕심이다. 그런데 이 욕심이 어느 날은 나를 지치게 만든다.



병의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짜잔! 하고 만사를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은 세상에 없다. 특히 마음의 병은 기다림과 인내를 먹고 천천히 나아간다. 그런데 어떤 날은 진료가 끝나고도 마음이 무겁다. 환자의 경과가 나쁘거나, 충분히 빠르지 않을 때면 ‘내가 부족한 건 아닐까?’ 하는 자책이 나도 모르게 스며든다. 환자 앞에서는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어도, 돌아서면 내 안은 어느새 여러 걱정과 불안으로 물들어 간다. 이러한 마음을 달래 주려고 논문을 찾고, 내가 뭔가 놓친 게 있지는 않았는지 차트를 돌이켜 본다. 공부하려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내 안에 자리 잡은 불안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면담 중에도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의욕이 앞서 말을 너무 많이 할 때가 있다. 천천히 듣고, 기다려주어야 할 순간에, ‘이 말을 꼭 알려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앞질러 버린다.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때로는 말의 속도를 너무 빠르게 만든다.



지인들은 가끔 묻는다. “그렇게 힘든 얘기만 듣고 있으면 너도 힘들지 않아?”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사실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더 괴롭다고. 나를 향해 화를 내거나 거칠게 반응하는 환자보다, 묵묵히 힘들어하는 분들 앞에서 더 큰 죄책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치료 경과가 안정적인 분들도 주기적으로 면담을 원하실 때가 있다. 그럴 때도 내심 불안해질 때가 있다. 환자분은 그냥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일 수 있는데, 나는 매 진료마다 뭔가 의미 있는 ‘무엇’을 전달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기준에 눌려 괜히 초조해진다.



이런 불안은 내가 잘 해내고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자꾸 나를 지치게 하기도 한다. 그럴 땐 친한 정신과 선배들에게 털어놓는다. “저 너무 조급한가 봐요. 괜찮게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한 번은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너무 구원자가 되려고 하지 마.”

그 말에 한참을 생각하게 됐다. 사실 나는 ‘꼭 내가 고쳐야 해’라는 마음보다는, 적어도 ‘해가 되는 의사는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좋은 마음일지언정, 너무 강하면 결국 나를 병들게 한다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다.



이처럼 좋은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멈추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게 되고, 그만큼 자주 지치게 된다. ‘이 정도는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같은 생각들이 맴돌고는 한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순간은, 정말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명확히 알 수 없고, 이 길이 맞는 건지 확신도 잘 서지 않을 때가 많다. 이렇게 불안해하면서도 계속 해내고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게 바로 잘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도 자리에 앉아,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고서도 끝까지 해보려는 나. 불안을 품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불안을 안고 계속 나아가는 나는 의외로 “단단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혹시 나처럼 마음이 자주 흔들리고, 스스로를 믿기 어려울 때가 있다면…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어드리고 싶다.



불안하더라도 괜찮다고.
잘 모르겠어도 괜찮다고.
그런 마음으로도 계속 해내고 있다는 게, 결국은 가장 대단한 일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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