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에는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많다. 가족내에 별다른 큰 문제가 없고, 집도 넉넉하고 풍요로운 집안이라고 할까. 사실 나는 그렇지는 못했다. 내가 고등학교로 진학하던 시기에 아버지의 사업에 문제가 생겼고, 극복하지 못한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정말 몇년간 힘든 시기였다. 누구보다 강인 하셨던 나의 어머니는 집안에 들이닥친 그늘에 나와 10살 차이 나는 어린 동생이 무너지지 않도록 고생해서 지켜 내셨다.
어머니는 누구의 도움 없이 아버지의 폭력과 주사를 홀로 받아 내시며, 돈까지 벌어 오셨다. 어머니의 희생으로 나는 공부에 좀 더 집중 할 수 있었고 의대에 무사히 진학했다. 그렇게 들어간 의대에서는 집안 문제로 사람들에게 다시금 상처를 받았다. 선배들이 강제로 권유하여 들어간 동아리에서는 방학 마다 합숙 활동이 있었다. 당시에 나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다음 학기 용돈을 벌어야 해서 참여를 못한다고 하자, 모두가 나에게 폭언을 하고 내 말이 거짓말이라며 의심하고 몰아 새웠다. 결국 소심하기도 했고, 어렸던 나는 선배들에게 낙인이 찍히면 전공의를 하지 못하는 줄 알고 과외나 알바를 하지 못한 채 합숙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나는 선배들 사이에서 합숙하기 싫어하는, 거짓말이나 하는 나쁜 후배가 되어있었다. 합숙 내내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합숙 기간도 정말 길어서 방학을 대부분 소모했고, 긴 합숙 기간 내내 나는 어머니에게 죄송했다. 이 외에도 여러 일이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을 물어본 압구정에 사는 선배는 그런 거지같은 곳에 왜 사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다들 방학 시간에 해외여행을 갈 때 나는 대교 공사를 하는 공사판에서 합숙 노가다 알바도 해보기도 했다. 해외로 가는 졸업 여행도 부모님께 부담 주기 싫어 가지 않았다.
웃기게도 대학에서 정말 이런 여러 일을 겪으면서, 집안이나 사는 곳 이야기가 나오면 예민한 사람이 되어갔다. 모교 병원 인턴 면접 때는 내 부모님이 무얼 하는지 면접 교수가 물어보았다. 사회 생활이라는 것이 때로는 거짓말을 필요로 할 수 도 있지만, 솔직하게 대답했다. 당시 나는 부모의 직업란에 자영업이라 적었었고, 교수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시냐는 질문에, 방문 판매업 일을 하신다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가족문제에 예민한 사람이었지만, 비굴하게 거짓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건 누구보다 성실한 어머니를 욕보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교수 앞에서 주눅든 모습으로 대답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이렇게 훌륭하게 길러 내셨다고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내 안의 열등감으로 인해 더욱 주눅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면접 교수의 표정은 애써 용기를 내 당당해 보이려고 했던 내게 한번 더 큰 상처를 줬다. 비웃는 듯한 표정과 함께 아… 방문 판매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도 아닌데.. 이것도 자영업으로 봐야하나? 크큭 하며 말이다. 지금 이 글은 적는 이 순간에도 그 교수님에 대해 부디 내가 오해한 것이라 믿고 싶은 그런 표정과 말투였다.
결국 나는 정신과를 전공하기 전까지 집안 이야기를 꺼려하는 것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잘 극복 해내지 못했다. 사실 정신과를 전공하면서도, 저년차 때에는 환자분에게 티를 내지 않았지만 중년의 알코올 중독인 남성 환자를 보면 화가 났다. 알코올 환자들이 무책임하고, 얼마나 가족에게 피해를 끼치는지 알지도 못하는 양심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여러 알코올 환자분들과 이야기를 하고, 중독 센터에서 사례관리를 해보면서 아픔이 많고,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습게도 환자들 덕분에 내 안의 아버지에 대한 화는 없어지고, 연민으로 바뀌어갔다. 알코올 환자분들이 나를 치유해준 것이다. 저년차에 나는 환자를 치료하기도 하지만 환자들로 부터 위로, 아니 위로를 넘어선 치료를 받는 의사이기도 했다. 이후에는 때때로 아버지도 나름의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끝까지 내가 잘 보살펴 드리지 못한 것 같은 마음도 들어서 미안하기도 했다. 어쩌면 긴 시간의 흐름이 그렇게 도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에 대한 화는 사라졌지만,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움츠러드는 것은 많이 나아지지는 않았었다. 혹시나 알코올 환자 아들이라는 주홍글씨를 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정신과의사가 이런 배경이라면 신뢰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정신을 돌보는 정신과 의사인데, 내 자신이 이런 것을 극복 못하는 것을 보면서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정신과 의사 같아서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말 웃기게도, 어느날 소설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보았다. 대충 내용은 서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열등감에 사로잡힌 인물에게 주인공이 “너가 선택한 일도 아닌데, 주변 사람들이 네게 서자라고 하는 말만 듣고도 화를 내는 것이 참으로 못났다”라는 식의 이야기였다. 내 뒷배경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측은하게 생각했지, 저렇게 이야기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내가 선택하거나 저지른 일도 아닌데, 뭘 그렇게 부끄러워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는 정말로 마법같은 저 소설 속 주인공의 말 한마디에 나는 확연하게 좋아졌다. 빨리 나아지고 싶어하며 조급해 하는 환자분들께 마법 같이 한번에 마음을 좋아지게 하는 치료제는 없다고 설명하고는 했는데, 사실은 있었나 보다.
오늘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내가 이런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잘 이겨냈다고 외치고 싶었다. 오히려 힘든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고 좀 더 나은 선택한 나를 이 세상에 이제는 떳떳하게 보여주고, 나를 위로해주고, 나를 자랑스러워 하고 싶었다. 불우한 가정이라 비웃어도 좋다. 이제는 내가 당당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내에서그 누구보다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도, 나도, 동생도 각자 훌륭하게 지금은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우리 셋은 정말 따뜻한 사람들이고,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
내 자신이 주홍 글씨를 두려워 하는 것을 극복해 내야, 나도 내게 진료를 보는 환자분들을 주홍 글씨에서 꺼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도 하지 못하는데, 남에게 권한다는 것은 웃긴 일 아닌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것에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다. 아니 내가 선택한 것일지라도, 앞으로가 중요한 것이다. 그걸 꼭 환자분들도 알게 해드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