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믿음이 있으세요?

by Woodfire

오늘 환자가 내게 물어봤다. 선생님은 믿음이 있냐고.


어떤 믿음인지 물어보았다.


그냥 뭐든 믿는 게 있냐며, 종교인지 신념인지 어떤 가치인지 사실인지 자기도 정확하게 뭘 물어보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환자는 내게 말했다. 환자에게 나는 지금 내게 질문하는 환자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보고는, 곧 환자가 느끼는 공허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환자에게는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말해주지 않았다. 환자가 아니라 친구였다면 내 안의 믿음은 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고 하고 싶었다.


내가 믿음이나 신념 같은 것이 있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가끔은 나도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오락가락하는 내가 지닌 믿음이라는 게 믿음이라 불릴 만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당장 환자의 질문에 떠오르는 것들이 몇가지 있기는 하다. 오그라드는 말이지만 나는 진심으로 사람은 선하다고 믿었고,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해 왔다. 정말로 세상에 사랑을 전파하고 싶었다. 사랑을 모두 받을 자격이 있고 상처 속에서 사람들이 헤매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지만 환자들의 이야기나 내 삶에 펼쳐지는 일들은… 그러니깐 현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믿음을 가진 나를 피터팬 같은 사람으로 만드는 느낌이다. 어른이 되어가며 현실파악을 해 나가는 것인지, 나도 그냥 찌들어가는지 사실 잘 모르겠기도 하다.


때로는 정신과 진료를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듣다 보면 뭔가 세상은 그냥 태어난 대로 굴러가는 거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한다. 세상에 별로 아름다운 일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는 느낌과 인과응보는 없다는 허무주의적 마음들이 커지면서, 그냥 점 점 기계 같이 진료를 보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려고는 하는데, 가끔은 이런 내가 아직도 어리광 피우며 아등바등 허우적 대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해서 나 자신이 웃퍼보일 때도 요즘에는 종 종 있다. (우울증이 내게도 오는 것일까하는 마음도 같이 들기도 한다)


글 쓰다 보니 오늘 내게 질문을 던진 환자분에게도 미안해지기도 한다. 환자는 나를 꽤나 지혜로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의지하는데, 사실 나는 ai같이 그럴싸한 지식만 늘어놓는 깡통 로봇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가슴 따뜻해지는 경험을 느껴 본 지 너무 오래된 것 같다는 생각도 떠오른다.

이건 내 카르마인가, 세상이 이런 곳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


오늘은 나도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선생님 점 점 회색빛으로 변해가는 것 같은 제 삶은, 제가 문제인가요? 세상이 원래 이런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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