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끝내 남아있던 얼룩
그 사건이 지나간 후로 바쁜 일상을 보내는 우리에게는 그날의 색이 점점 옅어졌다.
그럼에도 무언가 남아있던 찝찝한 얼룩.
누군가가 그 사건으로 인해 화가 났다거나, 누군가가 서운해했다는 것이 마음에 찝찝하게 남았는가?라고 묻는다면 시원하게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일주일 정도 내리 찝찝했다. 뭐가 문제일까?
뭐가 문제인지 모르고 흘러간 시간 동안 사람들은 나름의 노력을 하거나 우연한 모습으로 점차 섞이며 새로운 친밀함이 생겼다.
이 찝찝함은 그것과도 별개의 문제였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그냥 내 행동에 대한 약간의 후회인가? 그런가 보다. 하고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 찝찝함은 정말 우연하게 풀렸다. 늦게 퇴근 한 날.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선생님과 함께 퇴근하게 되었다.
그 분과는 다른 층의 교무실을 사용해서 그렇게 말을 자주 하지는 못하는데....
우연히 퇴근 시간이 겹쳤고, 내가 먼저 운동장을 함께 돌자는 러브콜?을 보냈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셨고 함께 운동장을 돌게 되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내 이야기를 하면서 그날의 일이 입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내 말이 끝나길 가만히 듣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무 가신건 맞는데... 나는 이해가 된다. 나는 종종 들었다. 그분이 뭔가 서운함을 느끼시는 것 같더라. 서운함을 느끼는 그만큼 사람들을 챙겨주시고 신경 쓰시는 분이시니. 그리고 또래 친구분이 아무도 없어서 더 그러신 것 같더라... 외로워하시더라...."
그 말에 마지막 남았던 얼룩이 지워졌다.
왜 그렇게 하셨는지. 그 이해되지 않던 부분이 무언가 이해되었다.
나와는 다른 그분의 성향이.
나는 다른 사람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인 사람에 속한다. 그러니까 관계가 좋은 건 좋지만 관계 속에서 친밀도가 그다지 없는 사람에게는 서운함을 잘 느끼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 사람들마다 친밀도가 정해져 있고 기대하는 부분도 다르다.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는 편이 아니다. 이건 주위에서 나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니 신빙성이 있다. 혼자 있어도 나에게 집중되어 있는 내 성격은 외로움을 잘 모른다.
그렇지만 살다 보면 나와는 다른 사람들도 존재한다. 나와는 다른 성향의 사람이었다. 외향적이시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에 에너지를 투입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러니 그분의 전후 감정 사정을 모르는 나는 그 사건으로 무언가를 오해하고 있었다.
'본인의 일도 아닌데... 왜 남을 위해 저렇게까지? 우리에게 선을 그으시는 거지?'
그런데 본인이 서운함을 느껴 그렇게 행동했다면 이해가 된다.
물론 더 좋은 방법이 있었겠지만, 사람이 감정적일 때면 그럴 수 있지 않은가. 나도 감정적인 부분이 커지면 사람들에게 실수하니까... 그리고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나이차가 많이 나니 말씀을 하시기도 애매했을 것 같다.
그렇게 그분의 감정 사정을 알고 시원해졌다. 나는 그분의 감정 전후사정을 알아차릴 만큼 친밀도가 높지 않고 마주칠 일이 많지 않아서 당연히 몰랐다.
"저 오늘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뭔가 풀리지 않았던 게 풀렸어요. 전 정말 몰랐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계실 줄은... 진짜 몰랐어요. 알았으면 제가 더 신경 썼을 것 같아요."
"맞아. 알았으면 쌤 성격에 신경 썼겠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 정말 이제는 마음에 남는 것 없이 그분을 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간 나를 따라다니던 찝찝함이 모두 사라졌고 그 분과 관련되어 있던 사람들에 대한 찝찝한 감정도 어느 정도 갈무리 된다.
참 많은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 나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냥 들여다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해 없이 솔직하게.
(음... 더 좋은 관계를 맺고 살기 힘들어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