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준비 - 각종 어카운트 닫기, 출국 전 코로나 테스트받기
한국에서의 삶이 싫어 캐나다 밴쿠버로 도피했던 과거를 까맣게 잊은 채 한국이 그립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한국의 음식들, 병원 등 언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망설일 일이 전혀 없는 내 조국이 그리웠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나라는 인간은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 자체가 문제구나. 나라는 인간은 현재를 살지 못하고 늘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서 후회를 친구 삼아 우울과 함께 사는 인간이었다. '그땐 그랬지, 그때 그러지 말 걸, 그때 그랬었더라면….' 이미 다 지나간 일이고 돌이킬 수 없음을 알면서도 꼭 지나고 나서 후회한다. 정작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같은 선택을 할 거면서.
아무튼 나는 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1년 동안 한국에서 내가 누렸던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한 삶이었는지를 깨달았고 백신 2차 접종을 마친 후 연장 신청을 한 비자가 채 나오기도 전에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때 연장 신청을 한 비자가 6개월짜리 비자였는데 한국으로 돌아가기 일주일 전에 비자가 나온 것은 아직도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한두푼도 아니고 무려 100불 들인 6개월짜리 비자인데, 엉엉.
휴대폰 정리하기
가장 먼저 굳이 전화를 하지 않아도 인터넷 채팅으로 어카운트를 취소할 수 있는 휴대폰을 정리하기로 했다. 나는 Fido라는 통신사를 이용했는데 처음 채팅을 통해서 대화를 했을 때 무엇 때문인지 취소할 수 없다고 했다. 이유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안 된다고 해서 며칠 후 다시 문의했다. 그때는 지금 당장 취소하지 말고 내가 요금을 내는 날, 그러니까 즉 한 달 사용량을 다 채우고 그때 취소를 문의하면 바로 취소를 해주겠다는 답변을 듣고는 또 일단은 알겠다고 하고 계속 휴대폰을 사용했다. 블로그 보면 나처럼 이렇게 힘들이지 않던데? 취소하겠다고 하니 바로 알겠다고 하던데 왜 나는 취소 조차 이렇게 힘든 거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이런 일도 여러 번 겪다 보면 사람이 무뎌지더라.
그리고 마침내 출국 3일 전, 내가 요금을 내는 날이 하루 지나고 난 후였다. 온라인을 통해 한 번에 취소가 되지 않으니 남자 친구는 차라리 Fido 매장을 직접 찾아가서 취소를 하자고 했고 나도 그러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 동의했다. 우리는 데이트를 가는 길에 미리 먼저 Fido 매장에 들렀다. 하지만 역시나 뭐 하나 쉽게 쉽게 흘러가는 일이 없다. Fido 매장에 갔더니 본인들은 매장에서 취소를 해 줄 수 없고 전화를 해서 취소를 하라고 했다. 전화를 하면 5분도 안 걸려서 바로 취소를 해 줄 거라나, 뭐라나.
전화라니…! 모두가 알 것이다. 전화 영어는 그냥 영어보다 훨씬 더 안 들리고 힘들다는 것을. 이미 전화로 영어를 사용할 때마다 남자 친구와 매번 다투었기 때문에 덜컥 걱정이 되었다. 남자 친구는 30년 밴쿠버 토박이라 나 같은 사람(영어 공포증이 유독 심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영어를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이며 못 알아들었으면 다시 한번 물어보면 되고 문장을 말하기 힘들면 그냥 단어로 말해서 어떻게든 의사소통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 친구와 그럴 때마다 좌절하며 패배감을 느끼는 게 싫은 나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전화로 영어를 할 일만 있으면 항상 다퉜었다. 남자 친구의 말이 백번 맞는 말임을 알면서도 괜히 서운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래서 이번에는 충분히 내 입장에서 생각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나서야 Fido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캐나다는 고객센터에 전화만 했다 하면 무슨 대기 시간이 그렇게나 긴지 바짝 긴장을 하고서 통화 버튼을 눌렀는데 대기만 30분을 넘게 했다. 30분이 뭐야, 총 대기 시간을 합하면 무려 1시간이었다. 마침내 상담원과 연결이 되고 간단한 개인정보를 확인한 후 전화하기 전 달달 외운 'I want to cancel my plan, because I'm leaving canada, and I'm not gonna come back.'을 기계처럼 내뱉었다. 이후 다시 담당자를 연결해주겠다기에 한참을 기다렸다가 진짜 담당자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는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들이 많았는데 언제부터 취소하길 원하냐기에 생각할 틈도 없이 곧장 'Right now'라고 했다. 담당자가 'Oh? you want? Okay, No problem.' 했다. 이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남자 친구가 당황하며 답답했는지 나에게서 전화기를 가져가 담당자와 다시 통화를 했다. 그녀는 3일 후에 밴쿠버를 떠나고 돌아오지 않을 거다, 하지만 출국하는 날까지는 전화기를 쓰고 싶다, 가능한가? 하는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결국 남자 친구의 도움으로 지금 당장이 아닌 출국날까지 사용하고 자동으로 취소가 되도록 담당자가 내 플랜을 설정해주었고 무사히 통화를 마칠 수 있었다. TMI를 잠깐 뿌리자면 내가 그 달의 요금을 내는 것을 깜빡해서 남자 친구의 카드로 요금까지 결제하게 되어 살짝 미안했다. 미안.
은행 계좌 닫기
은행 계좌를 닫기 전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신용카드를 해지하기 위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마찬가지로 영어에 자신이 없었던 나는 남자 친구와 나란히 앉아서 남자 친구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걸 수상하게 여긴 CIBC 신용카드 고객센터 측에서 지금 해지를 진행할 수 없다고 본인이 맞는지 은행에 가서 ID카드를 확인 후 거기서 해지를 하라는 답변을 받게 되었다. 하, 절망. 이게 다 영어 못하는 내 탓이지, 뭐.
그래서 은행에 갔다. 은행에 갔더니 웬걸, 본인들은 신용카드 해지 못 한단다. 신용카드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해지를 해야 한단다. 그래서 옆에 있던 남자 친구가 전화를 했더니 직접 은행에 방문하라고 했다고 하였더니 은행에서는 또 걔들이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본인들은 처리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다른 상담원이 받았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확인하고 카드를 해지하고 싶다고 했더니 잠시 후 혹시 이전에 전화를 한 적이 있느냐며 그때 남자 친구의 도움을 받아 대답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현재 전화로 신용카드 해지를 진행할 수 없다고 또 은행을 방문하라는 답변을 듣게 되었다. 짜증도 짜증인데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는 왜 그때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는…. 알고 보니 은행 측에서 내 정보를 열람도 하지 않고 본인들은 해결할 수 없다고 나를 집으로 돌려보낸 것이었다.
그래서 또다시 은행에 방문했다. 나는 내 은행계좌를 닫고 싶고 신용카드를 해지하고 싶어. 그랬더니 이번에도 자기들은 해 줄 수가 없다는 거다. 진심으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내가 영어만 잘했다면 요목조목 따졌을 것이다. 속이 너무너무 답답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남자 친구가 결국 폭발했다. 그가 나를 대신해 요목조목 따졌다. 우리 이미 이 짓을 몇 번이나 했고 너희는 서로 미루고 있냐, 확인해봐라, 너희가 직접 신용카드사에 전화해서 그녀의 ID카드를 확인했다고 말을 해줘야 우리가 신용카드를 해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은행 어카운트는 왜 못 닫는 거냐? 얘가 몇 만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은행이 이 정도 돈도 없는 거냐? 그제야 일처리가 하나씩 되기 시작했다. 신용카드사에 전화해서 신용카드를 해지하고 은행 계좌도 정상적으로 닫을 수 있었다.
모든 일을 다 처리하고 나니 혼이 쏙 빠졌다. 내가 처음 전화를 했을 때 제대로 통화만 했더라도 이럴 일은 없었을 텐데 괜히 남자 친구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남들은 그냥 척척 취소만 잘하던데 나는 그 쉬운걸 이렇게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며 힘들여서 해야 하는 건가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휴대폰도 은행계좌도 신용카드도 다 정상적으로 취소하고 해지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영어 공부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결심이 섰다.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일을 처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 이런 것들을 취소하고 해지하며 더 빨리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혼자서 문제없이 척척 처리하고도 남았을 일을 남자 친구 없이는 무엇 하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스스로 굉장히 위축되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신용카드 해지할 때 잘 알아들을 자신이 없다고 혼자 해보기도 전에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 나처럼 은행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영어가 자신이 없더라도 끝까지 스스로 한 번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출국일 기준 72시간 전 코로나 테스트받기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는 라이프랩(Lifelabs)을 통하여 코로나 테스트를 예약하고 먼저 결제를 한 다음 검사받기를 원하는 집 주변의 샤퍼스드럭(shoppersdrug)마트에 예약을 신청하면 된다. 나는 예약을 신청하자마자 약 30분 후에 바로 예약 신청한 샤퍼스드럭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그때 검사를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상의해서 예약을 마무리하면 된다.
나는 출국일 기준 48시간 전에 예약을 잡았다. 그날은 하필 평일이라 항상 남자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일을 처리했던 나는 이번에는 남자 친구 없이 혼자서 코로나 테스트를 받으러 가야 했다. 근데 사람이 웃긴 것이 이제 영어를 쓸 일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알 수 없는 근자감이 막 샘솟았다. 잘하고 올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은 남자 친구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떵떵 치고 혼자 검사를 받으러 향했다.
이미 내 앞에는 한국인 가족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를 하고 있었다. 바짝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영어로 쉽게 의사소통을 하고 대기를 했다가 마침내 내 차례가 되어 검사를 하러 들어갔다. 코로나 테스트는 면봉을 콧구멍 깊이 찌른다고 해서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모른다. 뇌까지 찌르는 느낌이라는 후기를 보고는 지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보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먼저 입 안을 면봉으로 슥슥 훑고 그 면봉을 그대로 콧구멍에 넣어 몇 번 돌리더니 그대로 끝이었다. 그리고 언제쯤 결과를 받을 수 있는지 달달 외워온 문장을 꺼내 물었더니 무어라 영어로 말을 해주는데 못 알아들었다. 대충 들리는 대로 따라 말하며 '투에니에잇?' 했더니 그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길래 나도 '아, 오케이!' 하고 나왔다. 못 알아들으면 알아들을 때까지 물어보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들은 투에니에잇은 48시간 내에라는 말이었다. 왜 투에니에잇이라고 들렸던 거지? 그는 왜 내 물음에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을까? 아직도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