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4
운동을 하고 집에 오니 경호처가 세운 차벽을 경찰들이 사다리를 타고 넘어갔다는 뉴스가 나온다. BBC뉴스에도 생중계가 되고 있다. 가장 추운 계절에 하지 않아도 되었을 싸움을 해야 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시리다. 한국의 괴로운 뉴스들을 해외 언론을 통해 접할 때면 저 나라가 내가 자라온 그 나라가 맞는지 어리둥절하다. 불안정하게 날아오던 비행기가 활주로 끝의 외벽을 들이받고 폭발하는 장면을 멍하게 볼 때라든가 성조기를 든 사람들이 경찰들을 밀치고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라던가. 외국에 오래 살면 느껴지는 한국의 장점들과 아름다움 때문에 내가 종종 잊어버리는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이사 오고 들떠있던 기분이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기 시작하면서 차분해지고 있다. 1년 중 가장 추운 때에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길 잘했다. 마음에 찬기가 가득 들어차도록 속을 텅 비워둔 채 쓰라림을 감수하며 소화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일들은 너무나 가까운데 가장 멀리서 일어난 것처럼 스쳐버리고 어떤 일들은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나의 내장을 뒤틀고 삶을 흔들어 버린다. 현실의 삶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편안한 잠을 잃어버리고 규칙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쩌면 더 자주 잃어버리기 위해 계속해서 익숙한 곳으로부터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익숙한 곳에 있으면서도 속하지 않았다는 좌절과 부끄러움으로부터 멀어져 밖에서 문을 열고 시간을 들여 걸어와 더 친해지기 위해서. 뉴질랜드에 살 때는 무슬림을 상대로 한 총기난사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었고 지난주에 울리치에서 이사오던 날에는 어린 소년이 버스에서 칼에 찔려 사망했다. 호주에서도 뉴질랜드에서도 영국에서도 나는 어딜 가나 눈에 잘 띄는 이방인이다. 가까운 거리의 슈퍼마켓에 갈 때도 지도를 여러 번 확인하고 길을 나서지 않으면 어김없이 길을 잃어버린다. 익숙한 것은 여기에 없다. 이런 곳에 나를 던져놓음으로써 비행기의 폭발과 검은 옷을 입고 새해를 맞이하는 군중과 성조기를 들고 고함을 치는 사람들에게 걸어갈 수 있다. 붉어진 눈으로 밤을 새우고 이곳에는 내리지 않는 눈을 마음속에 쌓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