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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과 지구력

2025/01/05

by Stellar

새로 살 집에 짐을 옮겨놓고 왔다. 게이 커플인 밍제과 클리포드는 우리에게 몇 달간 집을 맡기고 멕시코로 아이를 입양하러 떠났다. 런던 시내가 내다보이는 거실이 있는 집에서 친구와 함께 편히 지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 다시 집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고 독서를 하며 글과 그림을 더 많이 쓰고 그려야겠다.


다음 달 내 생일을 끼고 캐나다에 다녀와야겠다.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신체검사를 다시 받고 5월까지 입국하던가 지금 가진 신체검사 결과지가 만료되는 2월 말까지 입국하면 되는데 영국에서 신체검사를 받는 비용이 캐나다 왕복 비행기표 보다 훨씬 비싸다. 처음 생각했던 도시는 토론토였는데 런던에 사는 사람으로서 캐나다의 제 1 도시인 토론토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질 않는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볼 수 있다지만 그 외에 며칠 동안 그 도시에서 무얼 할지 생각해 보면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밴쿠버나 몬트리올도 고려해 봤지만 이상하게도 캐나다의 도시를 걷는 내 모습이 그려지질 않는다. 그래서 4년 반 전에 동생과 함께 갔던 캐나다의 로키산맥을 떠올렸다. 캘거리 공항에서 렌터카를 픽업해 떠났던 로드트립에서 만난 마음에 다 담기 벅찬 풍경과 야생동물들이 그리워졌다. 캐나다 로키의 초입인 캔모어의 백패커에 밤늦게 도착해 그대로 잠든 뒤 아침 일찍 주차된 차를 옮겨야 해서 밖으로 나갔다가 반쯤 감겨있던 눈이 번쩍 떠졌다. 하늘에 닿을 듯한 설산을 배경으로 놓인 아름다운 작은 마을에 아침이 오는 모습을 혼자 볼 수 없어 달려가 동생을 깨워 나왔던 기억도 여태 생생하다.


찾아보니 겨울의 밴프는 하루종일 영하의 날씨로 춥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얼어 죽을 만큼은 아닌 것 같다. 점점 더 추운 날씨를 싫어하게 되는 중이라 다행인 일이다. 굳이 그러려고 계획하는 것은 아닌데 매년 생일마다 홀로 여행을 가게 된다. 생일날 새로운 풍경을 마주한 채 혼자 앉아 있으면 그리운 것들이 생각난다. 내가 보는 것을 함께 보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나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생각나고 떠나보낸 시간들이 생각난다. 울적하고 쓸쓸한 감정으로부터 새로운 기운이 차오르고 그 기운으로 새로 만난 길들을 걷고 또 걷게 된다.


내가 지치고 가난해지면서도 계속 이동해야만 하는 이유는 이 기운 때문일까. 내가 빠진 이 구덩이가 어떤 구덩이인지 알아보려면 어쨌건 계속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나는 지구력이 꽤 괜찮은 사람이다. 내일은 새로운 동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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