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6
무사히 이사를 마치고 이전보다 두 배는 넓은 침대로 기어들어왔다. 아, 편한 사람과 좋은 공간에 살게 된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분이 움직이는구나. 이전 집에서 나오기 전에 건조기를 돌려놓고 나왔는데 물이 다 차서 알림이 뜬다며 물을 비우고 간 김에 보일러도 꺼줄 수 있겠냐는 연락을 전철을 타고 나서야 받았다. 조금만 연락을 일찍 주고받았더라면, 꼭 오늘 가지 않다고 된다고 했더라면 하는 생각들이 들었지만 내가 실수했던 일도 있고 해서 그냥 밤에 들러서 해결하겠다고 이야기하고 늦은 시간 다시 들렀다 오느라고 진이 다 빠져버렸다.
올리오라는 좋은 어플을 알게 되어서 이사한 집 주변에서 몇몇 물건을 나눔 받으러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짐을 내려놓자마자 자전거 타고 물건 픽업하러 두 군데를 갔다가 이전 집에 가서 건조기와 보일러 문제를 해결하느라 매뉴얼을 찾아보며 끙끙거리고 돌아오니 벌써 밤 열한 시다. 밥도 못 먹어서 라면이라도 끓여 먹어야지 싶었는데 인아가 곤드레밥을 했다며 따끈한 저녁식사를 차려주었다. 인아와 같이 사는 건 처음인데도 마치 가족과 있는 것처럼 편안하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함께 따뜻한 겨울을 보낼 생각에 설레는 밤이다. 이제 긴 새벽과는 당분간 작별해야겠다. 넓은 창으로 런던 시내가 내다 보이는 집의 거실에는 모닝커피와 음악과 좋은 책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