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수능 칸트 비문학 지문 비판
철학에서 특정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인격’이라 하고, 그중 ‘나’를 ‘자아’라고 한다. 인격의 동일성은 모든 생각의 기반이 된다. 우리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 동일한 인격이기 때문에 과거에 내가 한 약속을 현재의 내가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인격의 동일성에 대한 설명은 오랫동안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된다는 견해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이는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와 깊이 연결되는 관점이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의심하고 있는 ‘생각하는 나’의 존재만큼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고 보았고, 이를 철학의 제1 원리로 세웠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확신은 매우 명료하고 강력하다. 생각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우며, 실제로 철학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강렬한 감동을 주는 문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명제가 ‘생각하는 나의 존재’에서 곧바로 ‘영혼이라는 실체의 존재’로 넘어갈 수 있는가 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칸트는 바로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칸트에 따르면 ‘나는 생각한다’라는 자기의식은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조건 자체가 어떤 실재의 존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자기의식은 영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가 아니라, 영혼이 실재할 가능성을 열어둘 뿐이다. 이 때문에 칸트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동일성을 의식하는 것은 인격이다’라는 전제와 ‘영혼이 자기의식을 한다’라는 전제 모두를 인정하면서도, 그것들로부터 ‘영혼이 인격이다’라는 결론은 도출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두 전제에서 사용되는 ‘의식’이라는 말의 의미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한 의식을 뜻하지만, 다른 하나는 단지 의식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가리킬 뿐, 그 대상의 실재를 보장하지 않는다.
칸트는 통시적으로 동일한 인격의 실재를 직접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주치는 복수의 주관이 동일한 인격으로 인식된다’라는 가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가정이 없이는 경험적 판단도, 윤리적 판단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현재의 판단에 연결하고, 과거에 형성된 윤리적 기준을 바탕으로 미래의 선택을 수행한다. 이러한 사고의 구성은 시간의 흐름을 따르며, 통시적으로 동일한 인격이라는 전제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이후 스트로슨과 롱게네스는 칸트의 논의를 계승하면서도 비판을 제기한다. 스트로슨은 인격을 의식과 신체의 복합체로 보며, 자아에 대한 인식은 시공간적 세계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추상화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는 신체를 매개로 한 경험이 인격의 통시적 동일성을 뒷받침한다고 본다. 반면 롱게네스는 통시적으로 동일한 자아가 선행되지 않으면 경험적 인식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보며, 인격의 동일성 기준을 각자가 자신의 것이라고 인식하는 신체에 둔다.
이러한 논의들을 접하며 나는 ‘생각’과 ‘의식’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생각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곧바로 나의 존재나 영혼의 실재를 증명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도약일 수 있다. 나의 관점에서 의식은 무언가가 저장된 공간이 아니라, 텅 빈 그릇 위로 수많은 생각의 물줄기가 흐르는 장면 그 자체에 가깝다. 그 안에는 하나의 자아가 자리 잡고 있을 수도 있고, 여러 개의 자아가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존재하며 숨 쉬고 있을 수도 있다.
의식의 그릇 안에서 흐르는 생각의 물줄기들은 때로는 질서 정연하게 연결되고, 때로는 무작위적으로 흩어진다. 시냅스는 어떤 순간에는 연결되지만, 다른 순간에는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고 사유에 머물며,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현존재로서의 기둥, 통시적 연결로서의 역사적 존재인 나를 놓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의 온전한 자아가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인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또한, 외부 환경이나 타자의 영향으로 이러한 흐름이 다시 무작위적으로 흩어질 때, 우리는 그것을 ‘정체성의 혼란’이라 부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재미있는 지문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보자면 굳이 고3이나 재수하는 학생들에게 저렇게 불친절하고, 일부러 꼬으고 꼬아서 쓴 지문을 던져줬어야 했나 싶긴 하다. 인생이 걸려 있는 시험이고, 1년에 한 번뿐인 시험인데.. 어차피 내용이 쉽지 않은 거 글이라도 좀 친절하고 이해하기 쉽게 써주지....
영어 지문도 그렇고... 국어 지문도 그렇고.. 굳이 학생들을 그렇게까지 쥐어짜 내야 하나...? 차라리 논술 시험을 보자.. 애들한테 글을 쓰라고 하는 게 훨씬 낫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