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순수함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4시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영원히 책임이 있어.
모든 어른들은 한때 어린이였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별을 꿈꾸는 이의 가슴속에는 맑고 순수한 별이 뜬다.
알퐁스 도데 <별>
모모는 이 세상 모든 것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묵묵히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걸 깨닫게 돼.
사람들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행복한 순간들을 낭비하고 있었다.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니까. 자기 시간을 지키는 것도 사람들 몫이야.
미하엘 엔데 <모모>
너는 아직 꿈을 이룰 충분한 시간이 있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날개를 가진 기분일 거야.
모든 건 믿음과 신뢰만 있으면 돼.
죽는 것도 정말 짜릿한 모험이 될 거야.
제임스 배리 <피터팬>
문학의 통찰
모든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다. 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인생의 모든 다양성, 모든 매력, 모든 아름다움은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전부를 사랑해야 해.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조지 오웰 <동물농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문학의 강렬함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질투를 조심하십시오. 질투는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며 먹이로 삼는 녹색 눈을 한 괴물이니까.
우리의 육체가 정원이라면, 우리의 의지는 정원사다.
가난하나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어떤 부자도 부러워하지 않는 법이지만, 제아무리 부자라도 가난해질까 봐 항상 두려워하는 사람의 마음은 한겨울처럼 쓸쓸하게 마련입니다.
이유가 있어 의심하는 게 아니라 의심 때문에 의심한다. 의심이란 스스로 생겨나거나 태어나는 괴물이다.
셰익스피어 <오셀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인간이란 얼마나 훌륭한 작품인가! 이성으로 둘러싸인 존재, 무한한 능력을 가진 존재, 신과 같은 존재! 그러나 결국엔 먼지나 다름없고....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데도 신의 섭리가 있다지
셰익스피어 <햄릿>
아름다운 것은 추하고 추한 것은 아름답다.
인생이란 그저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셰익스피어 <멕베스>
문학이 가진 것들
문학의 배경은 무궁무진하다. 세계관은 방대하단 말로도 부족하며, 지금도 여전히 뛰어난 문필가들에 의해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또 탄생하기를 반복한다. 어떨 때는 가본 적도 없는 멀고 먼 우주의 세계가 펼쳐지고, 어떨 때는 가볼 수 없는 땅바닥 가늘고 긴 개미굴 세계가 펼쳐진다.
문학의 인물은 다양하면서도 전형성을 가진 존재들이다. 전형적인 엘리트의 모습을 한 인물이 가진 히스테리적이고, 오만한 성격. 엘리트의 모습을 한 인물이 가진 순수하고 덜렁대는 성격.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채 오만방자하게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인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덜떨어진 판단력과 무지몽매함으로 좌충우돌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인물. 끔찍한 결벽증의 소유자이면서 온갖 사건 사고를 모조리 해결하고 다니는 탐정, 듬직한 모습으로 왕을 보좌하며 정의를 수호하는 기사. 핍박당하는 백성들을 위해 도술을 부리며 탐관오리들을 처벌하는 수호자.
문학의 사건은 비극적이기도, 짜릿함을 선사하기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기도, 안도감과 만족감, 행복감의 풍성함을 선사하기도, 마냥 웃기고 활기차며 한가롭기도 하다. 사건만 따진다면 내 현재 기분에 맞춰 작품을 골라도 될 정도로 문학 속 사건은 매우 다양하다.
문학의 문장들은 순수함의 향기를 잔뜩 묻혀내기도 하고, 인간이나 사회를 꿰뚫는 통찰을 보이기도 하며, 머릿속을 파고드는 강렬함을 숨기고 있기도 하다. 생각지도 못한 작품에서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통증을 맛볼 수도 있고, 이미 예상했던 작품에서 예상보다 더 강렬한 쓴맛을 맛보기도 한다.
문장은 기교의 범위 안에 있다. 하지만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바라보는 작가들의 문장은 기교를 가지고 노는 결과물이라기보다, 자신이 만든 세계 내에서 뛰놀다 툭 하고 내던져진 생각지 못한 보석의 발견과 같다고 생각한다. 일부러 노리고 쓴 것이 아니기에 더 아름답고, 더 신비롭고, 더 귀하디 귀한 그런 존재가 문학 속에 새겨진 문장들이다.
내가 만약 어떤 문장을 쓰기 위해 배경을 설정하고, 인물들을 설정하고 그 문장을 향해 달려가기만 했다면, 위의 문장 같은 고결함을 얻기 굉장히 힘들지 않을까.
독자들은 그런 작품 안에 뛰어들어 다양한 경험을 쟁취할 수 있다. 표면만 읽어 내려가면 얻어내기 힘든 이 경험은 앞선 수업들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우리 인간 고유의 능력인 상상력을 요구한다. 작품을 쓴 작가들이 발휘한 상상력을 최대한 온전히 즐기려면, 그것과 같은 능력이 요구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문학의 순수함 <어린 왕자>
다들 잘 아는 작품이겠지만, 이 작품은
“너희는 어린 시절 상상력이 뛰어나서 보아뱀이 삼킨 코끼리 그림을 알아볼 수 있었잖아. 그랬는데 왜 커서는 집을 볼 때 가격이 얼마인지에 집착하는 사람이 돼버린 거야?”
라는 물음을 넌지시 우리에게 던지는 작품이다. 선생님은 저 물음 때문에 이 작품이 매우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에 인간에게 물음을 던졌음에도 여전히 그 물음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은 인간이나 시대를 꿰뚫어 본 통찰을 해낸 것이다. 물론 비극적인 일이다. 100여 년이 지났는데도 저 물음이 유효하고 그렇게 성장한 어른들이 여전히 바뀌지 않다는 건.
물론 이 수업에선 저 질문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너희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 것인가?”
“인간들은 왜 순수함과 상상력을 잃는 방향으로 삶을 걸어가는 걸까?”
“순수함과 상상력을 간직한 어른은 아이 취급당해 마땅한 것일까?”
“순수함과 상상력을 폄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이런 이야기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계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는 바보다. 자기 밥그릇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건 미련한 일이다. 나이 먹고도 순수한 것은 순수한 것이 아닌 덜떨어진 것이다.
물론 계산적이지 못한 사람이 못마땅하거나 바보같이 느껴질 수 있고, 답답할 수 있다. 한국은 그런 사람들을 등쳐먹으려고 하고, 이용해 먹으려고 하고, 자기보다 약해 보이면 편하게 무시하고, 쓸모가 없어 보이면 관계 맺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아 물론 그들이 쓰레기라는 말은 아니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거 같긴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교육과 사회적 통념이 잘못된 원인이 훨씬 더 크고,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 사회적으로 존경할만한 어른이 별로 존재하지 않는 것의 악순환 등이야말로 집중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순수함은 은근 나약함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아 버렸고, 앞서 말한 것처럼 어른이 순수하면 사기당하거나 이용당하거나 무시당하기 딱 좋은 먹잇감으로 취급한다. 또한,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나쁜 짓을 당하진 않을까, 미련한 선택을 하진 않을까, 이익을 못 보는 선택을 하진 않을까 하고 적극적으로 걱정하길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누군가는 개인이 순수함을 지키기 어려운 이유는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정말 그럴까? 구조가 문제라는 것에는 충분히 동의할 지점이 있지만, 이분법적으로 구조가 문제니까 개인은 문제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구조가 문제라는 말에 동의한다고 해서, 개인의 책임까지 함께 사라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선생님은 감히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시각에서는 개인의 문제 소지가 매우 다분하다. 통렬한 반성과 성찰과 숙고가 행해지지 않으면, 악순환의 고리는 여전히 악취를 풀풀 풍기며 돌고 또 돌기를 반복할 것이다.
<어린 왕자>가 던지는 이야기는 무척 가벼우면서도 묵직한 맛이 있다. 그렇기에 어떤 이들은 소설의 초반부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스치듯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마음이 쿵 내려앉는 느낌을 받으며 치열하게 사유하거나 토론하곤 한다.
이미 느꼈겠지만, 선생님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그 부분을 스치듯 지나가도록 놔둘 마음은 없다. 앞의 질문들에 대해 내 생각을 자세히 적어보자.
1. 나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은가? 순수함과 상상력을 간직한 어른이 되고 싶은가, 그것들은 일단 제쳐두고 현실적인 문제, 이성적인 사고에 유능한 어른이 되고 싶은가? 하지만 이 모두를 함께 가진 어른이 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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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텍쥐페리는 100여 년 전에 왜 어른들에게 순수함을 잃은 계산적인 어른이 돼버렸는지를 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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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순수함과 상상력을 간직한 어른은 아이 취급당하거나 무시당해야 하는 걸까? 그렇거나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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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순수함과 상상력이란 무엇일까? 상황 등을 떠올리고, 그것을 예로 들어 적어보자.
순수함: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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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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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함과 상상력의 단점
어른이 순수하다는 것은 긍정적으로만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단어 자체에 어수룩한 판단과 남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태도나 선택 등이 모조리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관용이 죽어가는 사회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피해를 줬을 때, 예민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가는 것이 느껴질 때도 있다.
유튜브를 가끔 보면 배려하는 사람의 모습을 찍어놓고, 많은 사람이 큰 감동을 했다는 댓글과 수만 개의 ‘좋아요’가 찍혀 있는 모습을 보곤 한다. 슬프고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그게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고 당연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이 더 나아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선생님이 학교에 다닐 땐, 선생들조차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모습을 수도 없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을 거라 예상하지만, 그런 선생들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우리 사회엔 존경받을 만한 존재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유재석이라는 연예인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그러한 어른을 향한 갈증의 반증이라 볼 수도 있다. 권력이나 부를 가진 사람 중에 그럴 만한 어른을 쓰기 위해 누가 있나를 떠올려 보다... 약간 우울해졌다. 떠올리지 못하는 내가 바보 같기도 하고,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서글프기도 하기 때문이다. (너무 우울한 얘기만 많이 한 것 같네.. 미안해. 우리라도 좋은 어른이 되자!!! 선생님부터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게!)
순수함의 단점은 그것에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포함해 놨다는 것이다. 다른 단점은 대한민국의 많은 어른 아니, 사람이 그 순수함을 못마땅해하고, 답답해하고, 어수룩한 취급을 하고, 고쳐야 할 단점으로 치부하는 통념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무언가의 가치가 나에게 어떤 유용함과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가. 이것을 따지는 것은, 경제나 금리, 금융 쪽에서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헐뜯고 비난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회로 몰락하지 않는, 대한민국 사회가 그런 사회가 되길 바란다.
1. ‘순수함’은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사회가 그 단어에 덧씌워 놓은 이미지 때문에 오해를 사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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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떤 이들은 순수함을 곧바로 ‘어수룩함’이나 ‘현실 감각 부족’으로 연결하며, 순수함이 미덕이 아니라 결함처럼 취급하곤 한다. 난 순수성을 미덕으로 보는 편인가, 결함으로 보는 편인가? 그리고 그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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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좋지 않은 사유가 세상에 떠돌기 시작하고, 그것이 마치 절대적 진리인 양, 무조건 옳은 것인 양 탈을 뒤집어쓰고 돌아다닐 수 있다. 그것을 잡고 늘어진다면 사람들의 사고는 닫히고, 잘못된 판단이나 시선이 당연한 것처럼,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에게 인식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좋아 보이는 것, 옳아 보이는 것마저도 의심하고 비판해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보이는 것은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모모>
소설 속 주인공 모모는 이 세상 모든 것에 귀를 기울이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 아이가 나타났을 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툭하면 모모를 찾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곤 한다.
고요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 가만히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존재, 비밀을 이야기해도 끝까지 그 비밀을 지켜주는 존재. 그런 존재가 바로 모모였다.
이 소설에는 청소부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묵묵히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걸 깨닫게 돼.”
이 부분 역시 스치듯 지나가는 부분이지만, 어릴 적 난 여기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미래, 벗어나고 싶은 고난. 그런 것들이 나를 힘들게 할 때 이 문장은 나의 소중한 친구였고, 나의 소중한 스승이 되어주었다.
언젠가 너희도 책이나 사람에게서 자신의 소중한 스승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보다 나이가 적다고 해서 스승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스승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린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 사람 그 자체를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소중한 존재, 소중한 스승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교생 실습을 갔을 때, 수많은 소중한 제자들을 만날 수 있었어. 그런데 그중에 딱 한 학생이 인사를 잘 안 하고, 상당히 까칠한 태도를 보이는 아이가 있었거든. 근데 선생님이 성격이 이상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데도 너무 이쁘고 사랑스럽더라고. 그래서 계속 잘 대해주려 노력하고 더 신경 쓰려고 노력했었는데. 우연히 그 친구와 단둘이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어. 그때 아이에게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봤거든. 고맙게도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아버지 직장 때문에 갑작스럽게 이사를 오게 돼서 모든 게 다 너무 싫고, 힘들고, 적응하기 어렵다고 하더라고.
그때 선생님은 깨달았어. 상대가 좋지 않은 태도로 나를 대하더라도 내가 계속 노력하고,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를 파고들다 보면 그간의 행실에 대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내고,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는 걸.
아, 물론 정말 나쁘고 이상한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으니까 모두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만.. 선생님은 제자들이 그런 사람을 곧바로 싫어하기보다 아주 자그마한 노력이라도 해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절대 강요도 아니고,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라는 것도 아니야. 그냥... 뭐.. 그렇다고.. 하하... 뻘쭘.. ㅋㅋㅋㅋ 아, 저 청소부 할아버지 이름 생각났다! 베포 할아버지! 정말 좋은 분이야.)
<피터 팬>
<피터 팬>의 시작 부분은 정말 흥미롭다. 어릴 때 그런 부분이 있었다는 걸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도 하고, 내용 자체가 그러하기도 하다.
소설의 초반부에 웬디의 부모가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겪는 일들이 전개된다. 어머니는 참 해맑게 아이들을 생각하고,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길러내지만, 아버지는 일하면서 주식 투자도 하고, 또 계산적으로 가정을 이끌어 나간다. 아이를 낳았을 때, 센트 단위까지도 계산하면서 아이를 잘 기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도 나온다.
그래도 어찌어찌 위기를 극복했고, 아이들은 잘 자란다. 어느 날, 부부가 모두 파티에 갔을 때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피터 팬이 등장한다(선생님은 어릴 때 바보여서 피터 팬이 아니라 피터팬 이 세 글자가 주인공 이름인 줄 알았다..).
그는 웬디와 그의 동생들을 너무나도 유명한 그 이름. ‘네버랜드’로 데려간다. 그곳의 아이들은 영원히 늙지 않는다. 계속 어린 상태로 살아간다. 요즘 인터넷 밈에 ‘아 늙기 싫다.’, ‘나이 먹기 싫다.’ 등이 유행하던데. 제임스 배리가 살던 110여 년 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나 보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평생 해보기 힘든 엄청난 모험을 한다. 후크 선장 일당을 만나 싸우고 지고, 납치당하는 등의 일을 겪으며 좌절도 하고 성장도 한다. 낯선 이들을 만나 친구가 되기도 하고, 배신당하기도 하며, 믿음이 깨지기도 한다.
엄청난 모험을 한 후 웬디와 동생들은 현실로 돌아온다. 피터는 웬디가 자신을 기억하길 바라고, 웬디는 피터가 자기를 다시 찾아와 주길 바란다. 과연 둘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 (안 알려줄 거야)
1. 나만의 네버랜드를 만들어 봅시다. 이 소설 속 네버랜드는 영원히 아이로 살 수 있는, 나이를 먹지 않는 곳입니다. 만약 내가 나만의 네버랜드를 만든다면, 나는 그곳을 어떤 곳으로 만들고 싶나요? 다양한 설정을 마음껏 넣어봅시다. 여러 개여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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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가 만든 네버랜드에 절대 없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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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통찰
“모든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다. 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아직도 문학 역사상 최고의 첫 문장, 최고의 도입부라 손꼽히는 저 시작.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이 소설은 <안나 카레니나>라는 소설이다.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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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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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본 만화나 드라마, 웹툰, 영화, 소설 등에서 기억에 남는 불행한 사연은 무엇인가? 그 주인공 혹은 주변 인물은 무엇 때문에 힘들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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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천재 작가 톨스토이. 그는 작품에서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전부를 사랑해야 해.”
1.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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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누군가의 ‘전부’를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 아니면 불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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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장점만 사랑하는 것은 ‘소비’이지만, 그 사람의 못난 점까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안나의 선택은 아직도 많은 사람의 토론이나 논쟁에 불을 지핀다. 도대체 어떤 선택을 했길래 아직도 그러나 궁금하지? 강의실에 책이 구비되어 있음.
프란츠 카프카 : “책은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34. 보기
「 과녁 」에는 활쏘기를 대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태도가 나타난다. 자기 수양의 과정을 통해 내면의 완성을 추구하는 궁도로 활쏘기를 바라보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남에게 과시하거나 승부를 가르기 위한 수단이자 흥밋거리로 대상화될 수 있는 기술, 즉 솜씨로 활쏘기를 바라보는 인물도 있다. 한편으로는 활쏘기를 궁도로 존중하기도 하고 대상화될 수 있는 기술로 보기도 하는 양면적 태도를 지닌 인물이 있다.
소설은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심리나 태도를 가졌는지가 중요한데 이 보기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주고 있음.
다음 날 오후도 석주호 검사는 청을 나오자마자 폴을 끌고 북호정으로 올라갔다. 한데 노인은 아직 활을 골라 놓지 않고 있었다. 주호가 다시 찾아온 것을 오히려 의아스러워하는 눈치였다.
“해 보겠소? 그럼 있는 활이니 지금이라도 골라 보지요.”
그제야 대청마루로 올라가서 활을 몇 채 골라 내왔다. 전부 새로 만든 것뿐이었다. 주호는 어느 것이 나을지 정할 수가 없었다.
“㉠ 전에 쓰던 것은 없습니까?”
“있지요. 하지만 활은 자기가 길을 들여야 하는데 쏘던 것은 다 길이 들어 있어서.”
“내력이 있는 것으로 하나 봅시다. 제 힘에 맞을 만한 것으로.”
A새것은 너무 생퉁스러웠다. 그리고 이런 물건일수록 골동품 가치가 문제 되기 쉬울 듯했다. 명사수가 못 된 터에는 물건이라도 그럴듯한 것을 지니고 있는 게 나을 법했다. 그런 것을 차지해 두자. 바둑집 영감님들에 앞서서. 한발 앞선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A
“이게 재료도 좋은 것을 썼고, 얼마 전까지 꼭 한 사람이 쏘던 것이오만.”
노인이 활을 더 가지고 나와 그중의 하나를 지목했다. 활고자가 유독 반들거렸다.
“여기선 승단이 되고 있지 않지만 제값으로 치자면 이 활을 쏘던 노인은 2단 활을 쏘았을 게요.”
어느 만한 실력인지 주호는 짐작할 수 없었지만 바둑 생각을 하면 썩 명수에 들리라 여겨졌다.
“제 힘에 맞을까요?”
“힘은 활을 다루기 나름이오.”
㉡ 그러나 주호는 눈으로 다른 것을 찾고 있었다.
“내력 좋달 게 쏘는 사람에 달렸는데, 잘 쏘는 분들은 대개 자기 궁이 있고, 빌려 쓰다 가더라도 그런 이들은 대개 사 가지고 가니까 남은 게 없소. 이것은 노인이 바로 이 땅에서 숨을 거뒀으니까 남았지만.”
그것으로 정했다. 노인은 색 띠도 하나 내주었다.
“이건 뭡니까?”
“궁대라고 하지요. 활을 질 때 매는 띠인데 활을 멘 일은 없지만 그래도 활을 쏠 때는 매고 쏘아야 합니다. 법도도 법도지만 마음이 다르오.”
[중략 줄거리] 활쏘기를 먼저 배운 석주호는 지역 유지들을 북호정에 부르고 그들은 노인의 딸에게 관심을 보인다.
“노인넨 활을 쏘고 또 활을 만들어서 그걸로 밥 먹고 사는 게 여느 사람과는 다르죠. 더군다나 딸아이까지 활을 쏜다던데.”
해괴한 일이라는 투였다. 한번 말길이 그쪽으로 터지고 여인의 활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들 이제는 그 딸아이의 활 솜씨를 한번 보자고 덤벼들었다. 노인은 첫마디에 볼 만한 게 못 된다고 점잖게 거절했다. 그러나 그렇게 점잖게 말하는 노인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물러서지 않고 굳이 시범을 강청했다. 노인은 마침내 화가 나서 거절이 결연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활터의 질서 속에 있지 않았다.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양조장’ 영감이 가장 심했다.
여인의 시범에 관해서는 시종 입을 다물고만 있던 석주호는 그때 그들의 요구 속에서 묘한 희롱기를 느끼고 있었다. 이 늙은 사내들 앞에 딸이 활을 쏘게 하는 것이 마치 무슨 큰 모욕이라도 당하는 일인 양 한사코 거절하는 노인의 태도가 더욱 그런 생각을 들게 했다. 그러나 주호 역시 하루 아침 딱 한 번밖에 구경하지 못한 여인의 활 솜씨, 그 유려한 모습을 한 번 더 보고 싶은 욕망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북호정을 다니기 시작한 뒤로는 그 사람들의 새벽 활쏘기에 자리를 피해 줘야 하리라는 생각 때문에 다시는 그것을 구경한 일이 없었던 것이다.
B아름다운 것은 충분히 자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칭찬받고 사랑받아야 한다. 저 늙은 사내들이 어떤 동기로 그것을 요구하든 적어도 궁도에 바른 이해를 가지고자 하는 이 석주호는 그럴 권리가 있다 ―B
주호가 노인을 권했다. 그러자 노인은 아주 난감한 얼굴이 되어, 그럼 다음날 새벽으로 때를 잡자고 했다. 낮에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태도였다. 그러나 주호는 아무것도 부끄러울 것은 없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은 떳떳이 자랑되고 칭찬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그 목소리는 노인보다 더 엄숙하고 법정에서처럼 고압적이었다.
노인은 갑자기 힘이 빠진 얼굴이 되어 딸과 소년을 불렀다. 소년이 과녁판으로 골짜기를 건너갔고, 여인은 모시옷에 옥색 궁대를 띠고 나와 활을 쏘았다.
사건이란 그것뿐이었다.
그것을 사건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석주호까지도 여인이 석양을 비끼고 서서 화살을 건네 보내는 모습과 맞은편 언덕 부채를 든 소년의 판정 동작을 번갈아 보면서 “아, 아름답습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하고 취한 듯 감탄하다 북호정을 내려갔으니 말이다. 그들은 애초의 동기야 어쨌든 다 같이 만족했다. 다들 만족해서 북호정을 내려갔다. 아무도 자기의 만족감을 의심하여 그것을 훼손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이 북호정 사람들에겐 분명 하나의 사건임에 틀림없는 듯했다. 노인은 이날 밤 통 저녁을 들지 않았으며 여인은 또 상을 들여놓고 방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어두운 부엌에 쭈그려 앉은 채 말이 없었다. 다만 소년만이 여느 때처럼 열심히 숟갈질을 하고 있었다. 노인은 이따금 딸아이를 불러들이려는 듯 한두 번 마른기침을 했으나 이내 눈을 감고 깊이 상처받은 짐승처럼 낮은 신음 소리를 냈다. 하기는 그것이 그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어떤 사건이었다고 해도 아무도 그 깊은 곳을 알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것은 어차피 사건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실상 그런 식의 사건은 이 세상 어디에나 미만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북호정 사람들도 종당엔 그렇게 생각하고 넘겨 버린 듯했다. 그들은 다음날 새벽에도 여전히 활을 쏘았고, 석주호 일행에 대해서도 노인은 같은 정도의 관심으로 활쏘기를 살펴주었다. 일행에 대한 노인의 일관된 태도를 보자 주호는 이상하게도 전날 얼핏 지나쳐 버린 노인의 태도가 다시 생각났다. 그때 노인은 뭔가 몹시 흥분을 하고 있었다. 드물게 긴 말을 하고 얼굴이 긴장하고 그리고 나중에는 맥이 풀려 딸을 불러냈었다. ㉣ 주호는 그들에게 무슨 욕이라도 보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데 노인은 다시 의연했다. 그때의 굳은 얼굴과 고통스러운 듯하던 목소리를 다시는 내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 주호는 어딘지 서운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편이 더 좋았다. 두려운 마음으로 노인과 활에 순종하려고 했다.
- 이청준, 「 과녁 」 -
석주호는 활쏘기를 기술(솜씨)로 바라보며 과시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인물
노인은 궁도로써 활쏘기를 보는 인물
생퉁 – 어려운 단어가 주석이 없을 땐 맥락으로 충분히
파악이 가능하거나 중요치 않다는 의미
활고자 – 활의 양 끝머리
활을 쏘던 노인 2단 활 쏘았을 것 – 바둑 생각을 하면 명수에 들리라
지역 유지들 - 활쏘기를 과시, 솜씨로 보는 이들
중략 줄거리 이후 주호는 양면적 인물
미만해 있다 – 이런 일은 흔히 일어난다.
세상에 많이 일어난다 라는 의미.
활쏘기를 노릿감, 구경감으로 보여주는 것은 북호정 사람들 즉, 노인의 가족에게(소년 제외) 깊은 상처, 궁도로서의 길에 어긋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음. 따라서
여인(노인의 딸) – 궁도로써 활쏘기를 보는 인물
31. 윗글의 내용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여인은 오전에 석주호 일행 앞에서 활쏘기 시범을 보였다.
② 소년은 여인의 활쏘기 시범 이후에도 전과 동일한 태도를 보였다.
③ 노인은 석주호가 다시 찾아올 것을 예상하여 활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
④ 석주호 일행은 활을 만드는 사람이 활을 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⑤ 석주호 일행은 석주호와 달리 여인의 활쏘기 시범을 보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32. [A]와 [B]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A]는 인물의 행적을 요약하여, [B]는 인물 간 대화를 제시하여 인물의 태도를 분석하고 있다.
② [A]는 동시적 사건을 병치하여, [B]는 시간의 순서를 뒤바꾸어 사건에 대한 상이한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③ [A]는 인물의 행동을 실감나게 묘사하여, [B]는 인물의 외양을 감각적으로 묘사하여 인물의 성격을 제시하고 있다.
④ [A]와 [B]는 모두 특정 인물의 입장에서 그 내면을 서술하고 있다.
⑤ [A]와 [B]는 모두 인물의 내면을 행위로 드러내어 인물 간의 갈등을 표면화하고 있다.
33. ㉠ ~ ㉤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 남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드러나 있다.
② ㉡ : 노인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있음이 나타나 있다.
③ ㉢ : 노인을 돕겠다는 의지가 드러나 있다.
④ ㉣ : 전날의 사건으로 노인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성찰이 드러나 있다.
⑤ ㉤ : 여전히 의연한 태도를 보이는 노인에 대한 심리가 나타나 있다.
<과녁>은 굉장히 독특한 작품이면서도 인간의 본질을 잘 파고드는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엔 하나의 법도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노인과 그의 가족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가 품은 법도란 어떠한가? 타자가 들었을 때, 하등 쓸모없어 보이거나 하찮아 보이거나 이상해 보이는 그러한 법도이다. 그래서 양조장 영감이나 석주호를 비롯한 일행들은 법도를 철저히 무시하며,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한다. 심지어 주인공인 주호는 그 요구에서 희롱기까지 느낀다.
이 사회는 타자의 취향에 얼마나 관대하고, 얼마나 큰 존중을 품고 살아갈까?
선생님이 이 소설에서 포착한 커다란 질문이었다.
인간은 왜 권력 혹은 권위로 타자의 취향이나 법도를 짓밟으려 할까?
모의고사 기출 지문이지만, 이러한 소설을 아이들에게 던져준다는 것은 황홀한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다(감히 교사인 주제에 바람직하다고까진 말하기 어렵고..).
현실로 돌아가자면, 우린 어쨌든 소설을 읽으며 인물에 많은 집중을 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를 풀어봐서 알겠지만, 때로는 저렇게 사건이 벌어진 시간적 배경을 물을 때도 있다.
정리하자면, 인물에게 집중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 외에 공간, 시간적 배경, 사건의 순서(혹은 전후 관계 맥락 파악, 때로는 역순행적 소설도 지문으로 나오니까!), 대사가 가진 의미와 그 대사를 누가 던졌는지, 어떤 의미로 던졌는지, 인물의 다양한 호칭을 던져줄 땐 그 호칭에 해당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이 모든 것을 세세하게 포착하며 읽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포착하는 훈련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____________________ 이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훈련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가장 탁월한 효과를 가진 훈련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 수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생들이 소설 파트에서 그것을 잘 소화하고, 문제를 잘 풀어내는 것이지만...
솔직히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그저 아이들이 소설이란 장르가 얼마나 재미있고, 좋은 장르인지. 그것을 통해서 한 인간이 얼마만큼 성장할 수 있고,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 생각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고, 얼마나 큰 배려심을 획득할 수 있고, 얼마나 큰 공감 능력을 얻어낼 수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부분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삶을 읽어 내려가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안에서 성장을 비롯한 다양한 과정을 겪어내는 일이다.
그렇기에 문학은 읽어야 하는 것이나, 사랑해야 하는 것이라기보다.. 사랑받아 마땅한 것,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에 해당하는 것일지 모른다.
이 작품은 편견과 차별로 상처받은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할 때도 있지만, 단순히 피해자로 머무르지는 않는다. 외모의 차이가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주기도 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위로하기도 한다.
[앞부분의 줄거리] 차별받으며 살아 온 고아인 나는 얼굴을 스크랩하는 취미가 있다. 유엔군으로 참전했다가 한국에 정착한 터키인 하산은 자신과 비슷한 흉터를 지닌 나를 고아원에서 데려와 보살핀다. 하산은 가게 운영이 어려워지고, 폐렴까지 걸려 몸이 점점 쇠약해진다.
사람들은 하산 아저씨를 두려워했다. 하산 아저씨가 겁을 준 적도 없고 불량스럽게 대한 적도 없고 품에 무기를 숨긴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들이 하산 아저씨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자신들과 다르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콧수염을 길러서, 눈이 더 깊고 그윽해서.
차이는 유사성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한 자는 행복한 삶을 살았음이 분명하다. 차이가 유사성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걸 안다 해도 자연스레 생겨나는 불쾌감과 공포를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 한번 오줌을 누기 시작하면 방광이 텅 빌 때까지 멈추기 어렵듯이 타인에 대한 혐오감은 그러한 감정이 생겨나게 된 원인이 제거되거나 그 혐오감을 정당화할 적당한 이유를 찾아낼 때까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으므로, 그 말을 한 사람은 행복했던 자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들을 무시해도 상관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행복한 자들이라고 한다.
하산 아저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아이들, 혹은 강보에 싸여 어섯눈*을 뜬 지 얼마 안되는 아이들, 아니 어머니 배 속에 여전히 웅크리고 있는 생명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경멸해도 좋다는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생명체들은 하산 아저씨를 보고 까르르 웃었다.
(중략)
나는 스크랩한 얼굴들을 재배열했다. 흔히 한국인의 전형이라 여겨지는 얼굴들을 기준 삼아 가운데 두고 그와 비슷한 얼굴들을 사방에 배치하는 식으로 하나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몽타주와 비슷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나는 우연의 효과를 노리지는 않았다. 이것은 목적이 분명한 작업이었다. 나는 얼굴로 이루어진 세계지도를 만들 생각이었다. 얼굴들은 자신의 옆에 붙은 얼굴과 유사해야 했다. 아주 작은 차이만 있으면 된다. 코가 조금 더 높거나 낮거나, 눈이 조금 더 깊거나 얕거나, 광대뼈가 조금 더 돌출했거나 주저앉았거나, 피부가 조금 더 밝거나 어둡거나.
그런 식으로 작업을 진행하자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선택하는 얼굴은 기준점이었던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과는 딴판이 되었다. 이건 열 살짜리 아이가 열다섯 살짜리 친구를 지녔는데, 그 친구에게 스무 살짜리 친구가 있었고, 이 친구에게는 서른 살짜리 친구가 있었으며…… 그래서 결국 열 살짜리 아이가 백 살 노인과 친구가 된다는 농담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농담처럼 무례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A] 내 지도에서 한국인은 중국인이 되기도 했으며 아랍인이 되기도 했다. 대륙을 넘어 아프리카인이 되기도 했고 유럽인이 되기도 했다. 그들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통나무집에 거주하기도 했으며 북극에서는 이글루를 지었고 파타고니아에서 목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반얀 나무 그늘 아래 해먹에서 잠들었고 짚이 깔린 정글의 오두막에서 잠들기도 했다. 남십자성과 북십자성을 동시에 볼 수 있었고 사막과 바다를 동시에 거닐었으며 낙타와 야크를 타고 돌아다녔다.[A]
나는 완성된 지도를 하산 아저씨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평소처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정육점에 갔다가 문을 열지 못하고 오래도록 자신의 정육점을 바라만 보다 돌아왔다. 그리고 숨을 곳을 찾는 사람처럼 집 안을 안절부절못하며 헤집고 다니더니 격렬한 육체노동을 마친 사람처럼 지쳐서 잠들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그의 얼굴을 더듬었고 그의 가슴팍이 불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금식 기간*이었기 때문에 그는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 그의 메마른 입술은 갈라졌고 콧수염은 윤기를 잃었다. 나는 하산 아저씨의 머리맡에 [완성된 지도]를 놓고 그가 기도 시간에 맞춰 깨어나길 기다렸던 것이다. 기도하기 위해 일어난 하산 아저씨는 내가 만든 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을 발견한 것 같구나.”
“그걸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아저씨예요. 보세요, 아저씨. 아저씨 얼굴을요. 아저씨는 어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답고 어떤 터키인보다 더 터키인다워요.”
“한국인인지 터키인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
“맞아요. 분간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아무나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네 그림 속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 같구나.”
“그래서 그림이에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꿈같은 거죠.”
“네가 아는 현실을 옮긴 거라고 생각했다.”
“안다고 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요. 사랑, 우정, 평화, 자유…… 그런 말은 알지만 그걸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것처럼요.”
“난 너한테 그런 걸 가르쳐준 적이 없다. 하지만 네가 이런 걸 알게 될 거라고 짐작은 했다.”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단 말이죠…… 이렇게 난폭하고 더러운 녀석이 될 줄.”
하산 아저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를 난폭하게 만든 건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너 자신이란다.”
하산 아저씨는 나를 끌어당겨 자신의 넓은 가슴팍에 품었다. 그의 가슴팍은 단단하지 않았다.
“네 흉터는 그냥 흉터가 아니란다. 그 흉터는 역사가 날염*된 것이야. 내 몸의 모든 흉터들 역시 내 개인사가 날염된 것들이지.”
나는 하산 아저씨가 나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역사가 날염된 흉터. 이 말은 내게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 손홍규, 「이슬람 정육점」 -
* 어섯눈 : 지능이 생겨 사물의 대강을 이해하게 된 눈을 비유하는 말.
* 금식 기간 :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음식을 먹지 않는 라마단 기간.
* 날염 : 피륙에 부분적으로 착색하여 무늬가 나타나게 염색하는 방법.
31. [A]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인물의 외양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② 특정 소재를 바탕으로 상상한 장면을 나열하고 있다.
③ 내적 갈등의 원인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 주고 있다.
④ 공간의 이동에 따른 인물의 직접 경험을 드러내고 있다.
⑤ 인물의 회상을 중심으로 사건을 속도감 있게 전개하고 있다.
32. 윗글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사람들이 모두 하산 아저씨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② 하산 아저씨는 금식 기간에도 가게 일을 하느라 지쳐 있었다.
③ 하산 아저씨는 ‘나’가 난폭하게 된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④ ‘나’는 자신이 만든 지도를 보여 주기 위해 하산 아저씨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⑤ ‘나’는 얼굴로 이루어진 세계지도를 만들기 위해 스크랩한 얼굴들을 재배열했다.
33. 완성된 지도 의 기능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두 인물이 타인들의 시선을 외면하게 한다.
② 두 인물이 자신들의 처지에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③ 두 인물이 함께했던 과거의 경험을 회상하게 한다.
④ 두 인물이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협력하게 한다.
⑤ 두 인물이 서로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34.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이 작품은 편견과 차별로 상처받은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할 때도 있지만, 단순히 피해자로 머무르지는 않는다. 외모의 차이가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위로하기도 한다.
① 사람들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하산 아저씨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보여 주는군.
② ‘나’가 ‘선택’한 ‘얼굴’이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과 달라졌다는 것은, 외모가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주는군.
③ 하산 아저씨가 ‘나’를 당겨 ‘넓은 가슴팍에 품’는 것은, ‘나’의 상처를 보듬으며 위로하려는 모습을 보여 주는군.
④ ‘나’가 하산 아저씨의 ‘더 많은 이야기’를 들으려 ‘기다렸다’는 것은, 하산 아저씨가 피해자로 머무르지 않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을 보여 주는군.
⑤ ‘나’의 흉터가 하산 아저씨의 흉터처럼 ‘역사가 날염된 흉터’라는 것은, 이들이 상처를 입고 살아온 사회적 약자임을 보여 주는군.
1. 윗글의 서술자인 ‘나'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하산 아저씨와 달리 자신은 한국 사회의 편견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② 타인에 대한 혐오감이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사라지기 어렵다고 본다.
③ 하산 아저씨의 흉터를 보며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낀다.
④ 얼굴 지도를 만드는 작업을 통해 세상의 모든 차별을 없앨 수 있다고 믿는다.
⑤ 하산 아저씨의 무력한 모습을 보며 그를 점차 경멸하게 된다.
2. 윗글에 나타난 ‘흉터'의 상징적 의미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개인이 숨기고 싶어 하는 어두운 과거와 비밀
② 타인과 구별되는 고유한 개성과 정체성
③ 사회적 편견과 억압으로 인해 새겨진 아픔의 역사
④ 세대를 거쳐 반복되는 비극적인 운명의 징표
⑤ 육체적 고통을 이겨낸 강인한 생명력과 의지
3. ‘나'가 ‘얼굴로 이루어진 세계지도'를 만든 방식과 그 결과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다양한 인종의 얼굴을 무작위로 섞어 인종 간의 차이가 무의미함을 보여 주었다.
②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에서 시작하여 미세한 차이를 따라 연결하자 결국 완전히 다른 인종의 얼굴에 도달했다.
③ 가장 이상적인 얼굴을 중심으로 설정하고 그보다 못한 얼굴들을 배제하며 아름다움의 기준을 제시했다.
④ 서로 다른 얼굴들을 억지로 연결하여, 인위적인 화합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를 보여 주었다.
⑤ 역사적으로 관계가 깊은 나라들의 얼굴부터 순서대로 배치하여 민족의 이동 경로를 시각적으로 보여 주었다.
4. 윗글에 나타난 ‘아이들'과 ‘사람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아이들은 순수하지만 위험을 구분하지 못하고, 어른들은 신중하기에 타인을 경계한다.
② 타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다.
③ 아이들은 감정 표현에 솔직하지만, 어른들은 자신의 감정을 이성적으로 통제한다.
④ 아이들은 감각적 인상으로, 어른들은 논리적 정보로 상대를 판단한다.
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세대를 초월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5. <보기>를 바탕으로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사회적 ‘타자(他者)'란, 주류 집단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우리와 다른 존재'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대상을 의미한다. 주류 집단은 타자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고 경계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동질성과 우월성을 확인한다. 문학 작품은 이러한 타자화의 폭력적인 과정과, 타자로 규정된 인물이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① 하산 아저씨가 “콧수염을 길러서, 눈이 더 깊고 그윽해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주류 집단이 외모의 차이를 근거로 타자를 규정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군.
② ‘나'가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을 기준으로 지도를 만든 것은, '우리'라는 주류 집단의 시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스스로 탐구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군.
③ ‘얼굴 지도'에서 모든 얼굴이 결국 하나로 연결되는 것은, ‘우리'와 ‘타자' 사이의 경계가 사실은 허구적이고 인위적이라는 깨달음을 상징하는군.
④ 하산 아저씨가 “네 흉터는 역사가 날염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타자에게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긍정적인 역사성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군.
⑤ ‘나'가 스스로를 “난폭하고 더러운 녀석"이라고 말하는 것은, 타자화된 인물이 주류 집단의 부정적 시선을 내면화하여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된 모습을 보여주는군.
6. ‘나'와 ‘하산 아저씨'의 대화에 대한 분석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나'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꿈"이라며, 자신이 만든 지도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인식하고 있다.
② 하산 아저씨는 “네가 아는 현실을 옮긴 거라 생각했다"며, ‘나'의 인식 속에 이미 현실을 넘어선 통찰이 담겨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③ ‘나'는 “사랑, 우정, 평화" 등을 언급하며, 관념적으로는 알지만 실제로는 경험하지 못한 가치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④ 하산 아저씨는 “네가 이런 걸 알게 될 거라고 짐작은 했다"며, ‘나'의 비판적인 시선이 형성될 것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⑤ ‘나'는 “이렇게 난폭하고 더러운 녀석이 될 줄" 알았냐고 물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은 70년의 한평생만 살지만, 독서를 하는 사람은 5,000년의 삶을 산다.”
나의 소설 문장 갤러리
문학의 순수함
“제가 잡은 고기 따윈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놀린은 이렇게 말하며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숫자 따위론 환산할 수 없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깊고 깊은 유대감. 그 정수를 보여주는 헤밍웨이.
문학의 통찰
문학의 강렬함
잠든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겉으론 패배자인 척, 모든 걸 내려놓은 듯 말하고 행동하지만, 그의 무의식엔 사자가 숨어서 도사리고 있다. 헤밍웨이가 보여주는 인간이란 존재의 숭고함, 그 무엇보다 강렬한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