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획일화, 빈부격차,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마찰
강성했던 시대의 기억이 바래면, 공동체는 종종 과거 영광의 표피적인 원인에 매달린다. 심화된 고찰 없이 제시되는 간략한 서사, 예컨대 뿌리에 대한 맹신이나 외형적 우월에 대한 집착은 쇠퇴를 설명하는 안일한 도구가 된다. 이는 사유의 스펙트럼을 양극단으로 수렴시키며, 불확정성에 대한 불안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해소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좌우로 나뉘는 경향성, 그것은 복잡성을 감당하지 못하는 인지 시스템의 자기 위안일지 모른다.
경제적 불균등은 이러한 사유의 경직성을 심화시킨다. 부의 집중은 '나도 언젠가'라는 허황된 기대를 증폭시키고, 자녀 세대에 대한 과도한 투자(교육열)를 정당화한다. 자식은 성장의 동반자가 아니라, 계층 이동의 ‘로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지배적인 경제적 ‘분포'가 인간관계의 본질을 왜곡하고, 미래 세대의 ‘분포' 형성 과정을 ‘성공'이라는 단일 기준 아래 획일화하려는 압력으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자본과 권력은 이러한 기대를 조장하고 이용함으로써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
시스템의 곳곳에서 붕괴의 흔적이 관찰된다. 거짓에 대한 응징이 권력에 따라 달리 적용될 때, 정직함은 어리석음의 동의어가 된다. 보상이 노력보다 계략에 주어질 때, 인간은 단기적 이득을 위해 윤리적 원칙을 희생한다. 처벌은 행동을 억제하는 물리적 장치여야 하지만, 불완전한 법과 부패한 집행은 그 기능을 상실한다. ‘노력의 대가'는 미화되지만, 그 노력의 진정한 가치나 분배의 정의로움은 외면당한다.
가장 냉혹한 진실 중 하나는, 인간 사회에서 ‘잔혹함'을 완벽히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능력의 차이, 자원의 희소성, 인맥과 운이라는 불확정적인 요소들이 필연적으로 시기와 질투, 경쟁과 갈등을 낳는다. 교육과 가정의 노력은 이러한 본능적이고 환경적인 분포가 외현화되는 방식을 조율할 수는 있으나, 그 근원적인 마찰 자체를 소멸시키지는 못한다. ‘바르고 올바른 사회'에서도 인간은 타자의 존재와의 부딪힘 속에서 필연적인 고통과 마주할 것이다.
모든 것이 비극적이고 체념적인 서사로 수렴하는 듯 보일 때, 우리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인간 사유의 끈질김과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희미한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