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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Oct 24. 2024

어찌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우리 반에 천사가 산다.


3월 첫날 담임 소개 시간이면 꼭 빠지지 않고 들었던 질문이 있다. 

“선생님은 어떤 학생을 좋아해요?”

그러면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척 주절주절 이야기를 시작한다. 

“음, 선생님은 말이지.......”     


과연 선생님은 어떤 학생을 좋아하실까? 내가 학창 시절 궁금해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내 경험에 의하면 선생님들은 예쁘고, 부잣집에 공부까지 잘하는 아이들을 특히 예뻐하셨다. 하지만 이건 아주 주관적인 생각이고 내가 교사가 되어서 교실에서 직접 아이들을 만나니 대부분의 아이가 예쁘다. 하지만 특히 더 예쁜 아이가 있다.      


3주 전이었다. 오후 출장이 있었다. 나에게는 징크스가 있는데, 꼭 내가 출장을 가면 학급 아이들이 다투거나 다치거나 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저녁에는 학부모 전화에 시달리고. 그래서 출장을 갈 때마다 나는 불안해서 아이들에게 신신당부한다. 선생님 없을 때 잘하는 반이 진짜 멋진 반이야. 선생님은 너희들 믿어! 그리고 협박도 한다. 학급 온도계 2도 내려간다. 다행히 그날은 우리 반에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내가 처음으로 후진하다 다른 사람 차를 박았다. 출장을 가기 전 교실 문단속을 L양에게 부탁했다. L양은 반장도 아니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오후에 시간 여유가 많은 아이이다. 다음날 출근을 하고 교실 문을 열었는데 깜짝 놀랐다. 교실 바닥이 너무나 깨끗했다. 전날 5,6교시는 만들기 학습지를 프린터 해 놓고 갔기 때문에 당연히 교실이 더러울 것이라 예상했다. 왜냐하면 요즘은 당번이 있지만 그렇게 청소를 열심히 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생님이 방과 후에 추가적인 청소를 하신다. 분명 종이 쪼가리가 나뒹구는 바닥을 상상했던 나는 아이들이 등교하자마자 물어보았다. 누가 청소했어? 그랬더니 L양이 친구인 K양과 함께 아이들이 다 가고 나서 비질했다고 한다. 종이가 많아서 한참을 쓸었다고. 사소한 L양의 행동에 나는 크게 감동했다.   

   

L양은 방과 후 프로그램도 수강하지 않고, 학원도 다니지 않기 때문에 방과 후에 교실에 남아서 나와 공부를 한다. 공부하는 멤버는 총 4명이다. L양은 공부도 곧잘 하는데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아서 영어 학습에 조금 어려움이 있다. 수학은 수업 시간에 엄청나게 집중해서 그런지 곧잘 따라온다. 영어 공부는 문제집을 펴고 QR코드를 찍어 원어민 영어 발음을 들으면서 단어와 문장을 공부한다. 크게 내가 가르쳐주는 게 없는데 스스로 잘한다. 어제 영어 시간에 짧은 역할극 같은 것을 했는데 L양이 자신은 영어 문장 쓰기는 미숙한데, 읽기는 잘한다며 나에게 자랑을 하기에 방과 후에 남아서 열심히 공부한 덕분이라며 말해주었다. 다른 아이들은 내가 회의를 잠깐 다녀오거나 교무실 다녀오면 달아나기 일쑤지만 우리 L양은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그런 학생이다.      


수요일, 다른 아이들이 먼저 가버리고 교실에 L 양 혼자만 남았다. 갑자기 배구 경기가 잡혀서 교무선생님이 체육복을 갈아입고 체육관으로 오라는 연락을 주셨다. 내일 아이들과 만들기 할  게 있어서 미리 예시작품을 1개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L양에게도 선생님 배구 가야 하니 오늘은 그만 가자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옆에 있는 만들기 키트를 보고 재미있겠다며 말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내일 친구들이 만들 건데 네가 설명서 보면서 한번 만들어보겠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이 이런 횡재를. 학교 버스 놓치지 않게 만들다가 시간 되면 그만하고 가라고 일러두고 나는 체육관으로 갔다. 배구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왔더니 깔끔한 솜씨로 완벽한 샘플을 제작해 두고 그녀는 떠나고 없었다. 남은 부스러기까지 깔끔하게 처리하고 말이다. 오늘 만들기 할 때 완성작이 하나 있으니 든든했다. 덕분에 오늘 교실에 있던 아이들은 큰 어려움 없이 등불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오! 너는 나의 등불!     


오늘은 교육장배 육상대회가 있었다. 우리의 L양도 높이뛰기 종목에 출전했다. 아침에 교실에 갔더니 내 책상 옆에 흰 주머니가 있었다. 열어보았더니 간식거리가 한 아름이다. 아 어제 L양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 집에 주스가 너무 많은데 친구들하고 나눠 먹고 싶은데 내일 챙겨 와도 돼요? 내일 육상 대회 가는 애들 것은 따로 챙겨가고 교실에는 선생님 것 포함해서 11개만 챙겨 올게요? 네?’ 집에서 먹으라며 안 가져와도 된다고 거듭 말한 것 같은데 기어이 오늘 간식을 챙겨 왔다.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 주었더니 L양은 마음씨도 착하고 어쩌고 저쩌고 칭찬이 한가득하다. 오늘 높이뛰기에서 은메달을 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내일 오면 쌍 엄지척을 날려줄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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