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선생님과 저는 동학년입니다. 물론 학교도 다르고 얼굴도 모릅니다. 아들의 선생님은 젊고 부지런하신지 아이들과 재미난 활동을 많이 하시는 모양입니다. 아들이 집으로 가져오는 활동지를 볼 때마다 선생님의 아이디어에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제가 열정이 넘쳐서 이런 걸 좀 본받아야 하지만 그냥 감탄에서 끝입니다. 그래서 가끔 우리 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지난주 아들이 흑백요리사 활동지를 가져왔습니다. 자신이 심사받고 싶은 요리를 그리고 관련 설명을 옆에 적어 놓았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친히 부모님의 심사평을 적어오라며 붙임 종이까지 챙겨 보내셨더라고요. 이런 꼼꼼함까지 대단하신 분! 구불구불 기어가는 아들의 글씨가 잘 안 보일 듯하여 제가 그대로 옮겨 적어보겠습니다. 문장이 너무 긴 부분은 제가 읽기에 불편하여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적어볼게요.
치즈 함박스테이크
저는 치즈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고기를 좋아하는데 그때 엄마가 저에게 치즈 함박스테이크를 손수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때의 함박스테이크가 너무 맛있었고 기억에 남아서 치즈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저는 다른 건 넣지 않고 오직 치즈 함박스테이크와 소스, 위에 있는 계란, 파슬리를 썼고, 아주 even하게 구웠습니다. 맛있게 먹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만 보면 엄마인 제가 대단한 요리 실력을 가진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위 글의 설명처럼 저는 아들에게 치즈 함박스테이크를 손수 만들어 준 적이 없습니다. 제 요리 실력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그럼 아들의 엄마는 누구일까요? 궁금하시죠!
바로 CJ 제일제당 엄마입니다.
저는 우리집 냉장실 비상식량인 CJ 함박스테이크를 잘 데워 접시에 담아준 기억밖에 없습니다. 물론 계란 이런 것도 올려주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 왜 거짓말을 했냐고 물어보니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해주신 맛있는 요리들로 꾸미는데 자기는 할만한 게 없어서 겨우 머리를 쥐어짠 게 이거였다고 합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아들의 글을 보고 엄마인 저는 정말 진심 0%의 감상평을 남겨 주었습니다. (학교에 다시 들고 가야 한다 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