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남편과 딸이 함께 데이트를 다녀오면서 파리채를 한 개 사왔습니다. 아니 한 여름도 다 지나고 파리채라니요. 남편에게 파리채를 왜 사왔냐고 물었더니 다 쓸데가 있다고 합니다. 파리채 가격은 이천 원인데 약간 기능성입니다. 파리채 손잡이가 스텐인데 안테나처럼 쭉 당기면 늘어났다 다시 집어넣으면 줄어듭니다. 아이디어가 좋네요. 그러면 뭐해요. 우리 집에는 파리가 없는걸요? 참 오늘도 돈 낭비했네요.
잠시 후 남편은 얇은 박스를 가져오더니 네모나게 자릅니다. 그리고는 딸에게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를 보내면서 무조건 예쁘게 글씨를 써주라고 합니다. 귀찮은 딸내미는 아빠의 기대에 못 미치게 글씨를 대충 써옵니다. 씩씩거리던 남편은 딸에게 이 실력으로 미대를 가겠냐며 막말을 쏟아냅니다. 워워. 하지만 아빠의 잔소리보다 아빠의 심부름이 더 귀찮은 딸은 자기 방으로 사라져 문을 잠가 버리지요.
약이 바싹 오른 남편은 더럽고 치사해서 자기가 한다면서 막 예술혼을 불태웁니다. 그리고는 얼마 후 자기가 붓펜을 들고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깨알 하트까지 그려 넣었습니다. 남편에게 혹 당신 사무실에서 쓸 것인지 물었더니 그것도 아니랍니다. 그럼 도대체 누구에게 얼마나 고맙기에 이렇게 정성을 담아 만드는 걸까요?
그 비밀이 지난 주말 풀렸습니다. 딸과 함께 사천에 가기 위해 남편 차에 탔더니 요상한 이 물건이 있더라고요. 자 집중하십시오. 이 물건의 용도는 바로 ‘끼어들기 표지판’입니다. 차가 밀렸을 때 끼어들기 힘드시죠. 그때 깜빡이를 켜고 창문을 내린 후 이 파리채를 밖으로 내보냅니다. 그럼 뒤차가 양보를 해주지 않을까요? 평소에 손을 내밀고 끼어들기를 하던 남편이 그 상황이 너무 불편해서 이런 발명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곧 특허 등록을 할 거라는데 혹시 시중에서 이 물건을 보신 분은 제보 부탁드려요!
근데 아직 써 보지도 못했습니다. 왜냐고요. 비가 조금 내렸는데 종이표지판이 비에 젖을까 걱정이 되었거든요. 비닐이라도 씌워야 할 것 같네요. 근데요. 더 큰 문제는요. 저희가 사는 지역은 차가 별로 안 밀려요. 이 물건을 쓰기 위해 연말에 부산이라도 한 번 가야겠습니다. 12월쯤 부산에서 이 요상한 물건이 보이시면 한 번만 끼워주세요! 감사합니다.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