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진도를 찾아서
내가 근무하는 통영에는 수많은 섬이 있다. 올해로 4년째 근무하는 동안 한 번도 섬에 가본 적이 없지 않다. 작년에 환경 연수 들으면서 마지막 연수 시간에 상괭이를 보러 섬에 들어갔는데, 분명 거기서 쓰레기도 주웠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는 해상택시를 타고 갔는데 일렁이는 파도에 나는 여기서 죽겠구나 싶었다. 그날 상괭이는 보지 못했고, 나는 파도에 대한 공포가 더 심해졌다.
방학 전 남편과 휴가를 어딜 갈지 이야기 나누면서 남편이 통영의 섬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내가 통영을 떠나기 전에 꼭 섬에 가보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었다. 처음으로 내가 꼽은 섬은 욕지도였다. 주변 선생님께 물어보니 아이들 데리고 가서 물놀이하기에는 비추라고 하셨다. 유튜브 검색을 통해 최근 뜨고 있다는 ‘비진도’라는 섬을 발견했다. 욕지도는 1시간 넘게 배를 타야 하는데 비진도는 넉넉잡아 50분이라니 이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 물놀이할 해수욕장이 있었다.
일단 펜션부터 예약했다. 14일이면 극성수기도 아닌데 생각보다 방값이 비쌌다. 남편 말로는 내륙보다는 확실히 비쌀 거라고 했다. 그다음은 최근에 비진도를 다녀온 사람들의 블로그에 들어가서 꿀팁을 얻었다. 비진도는 외항과 내항이 있는데 해수욕을 하려면 외항에서 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숙소는 외항 마을에 있는 것이 맞았다. 뭔가 뒷발로 쥐 잡은 느낌이었다.
14일 아침, 우리는 7시 조금 넘어서 일어났다. 그날 아파트 가스 검침이 있는 날이었는데 검침원 아주머니께 조금 일찍 와달라 부탁을 드렸더니 7시 30분에 오셨다. 가스 검침을 마치고 짐을 챙겨 우리는 출발하지 못했다. 왜냐면 전날 남편이 허리를 삐끗한 것이었다. 쓸데없이 진짜 내 기준에 쓸데없이 가게에 있는 큰 화분을 움직이다가 화분은 다 깨고, 허리는 다치고 진짜 말이 곱게 안 나왔다. 남편이 대기 1번으로 한의원에 간 사이 우리는 차에서 대기했다. 30분이 넘으니 슬슬 초조했다. 항상 약속 장소에 10분 일찍 도착해야 하고,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나는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중요한 건 배 시간이 2시 30분이라서 오전에 나폴리 농원에 맨발체험을 신청해 둔 상태였다. 10시 30분 입장은 물 건너갔고, 45분이 넘어가니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지막 물리치료, 5분만 더하면 된다고 했지만, 그냥 나오라고 했다. 9시 50분, 운전대는 내가 잡았고 우리는 11시 무렵 나폴리 농원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규모도 크고 맨발 걷기 체험도 재미있었다. 마지막 코스는 족욕이었는데 폰으로 딴짓하다 물양을 지키지 못해서 여사장님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12시 30분쯤 나와서 근처 식당으로 갔다. 아, 평일인데 대기줄까지 있어서 포기하고 여객선 터미널 근처 식당을 물색했다. 네비를 따라서 돌다가 우연히 풍자의 또간집 현수막이 달린 식당을 보고 들어갔더니 사람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갈치조림과 생선구이를 배부르게 먹었다. 남편은 최근래에 먹은 갈치조림 중에서 최고라고 했다. 1시 40분쯤 나와서 나는 여객선터미널에 티켓 발권을 하러 뛰어갔고, 남편은 아이들과 근처의 하나로마트에 고기와 먹거리를 사러 갔다. 하나로마트에서 물건을 사면서 배에 물건을 실어달라고 하면 그렇게까지 해준다고 블로그에서 봤지만 우리는 우리가 들고 갔다. 다행히 남편은 2시 5분쯤 도착했고 우리는 무사히 2시 30분 배에 올라탔다. 진짜 빈자리 없이 손님이 가득 탔다.
50분쯤 달려 비진도 외항에 도착했다. 펜션 사장님이 트럭을 가지고 나오셔서 짐을 실어주시고 우리도 트럭을 타고 숙소에 갔다. 생각보다 숙소는 많이 낡은 상태였고,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빨리 옷을 갈아입고 물놀이를 하러 갔다. 신기하게도 우리 숙소 앞은 몽돌이 있는 바다였고, 맞은편은 모래사장이 있는 해수욕장이었다. 아이들은 모래가 없는 몽돌에서 놀기를 희망해 그쪽에서 놀았는데 파도가 너무 세서 겁이 났다. 나중에 나오면서 알았다. 물놀이 금지 표지판이 있었다는 걸 말이다. 튜브를 이고 다시 반대쪽 해수욕장으로 갔다. 우리가 늦게 도착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당일치기로 섬에 들어온 사람들은 배를 타러 줄줄이 나가고 있었다. 모래 해변에는 폭우에 떠내려온 지푸라기와 나뭇가지, 일반 쓰레기가 많이 보였고 물도 생각보다 흐렸다.
남편과 아들이 수영을 즐기는 동안 딸아이와 나는 해변에 앉아 있었다. 그 순간 내 눈에 반짝이는 게 보였다. 그건 바로 다이아몬드가 아닌 바다 유리(씨글라스)였다. 파도에 깎인 바다 유리는 둥글둥글 예뻤다. 개학하면 아이들과 바다 유리를 활용해 미술 활동을 계획했던 나는 만세를 불렀고, 보석을 줍는 심정으로 유리를 주웠다. 딸 아이와 30분 넘게 주웠는데 충분한 양을 구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하고 저녁에는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십 년 넘게 고기를 굽고 있지만, 매번 고기를 태우는 남편에는 배신감을 느꼈다. 고기를 먹고 있는데 반대쪽 바다를 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노을 사진에 환장하는 나는 뛰어 내려가 사진을 몇 컷 찍었지만 아쉬웠다. 저녁에 자기 전 아침 일출 시각을 확인했다. 5시 45분? 실화냐
다음날 아침 6시 가까이 눈을 떴다. 너무 피곤했기에 남편보고 먼저 나가 보라고 했다. 좋은 건 남편 먼저. 남편이 이제 해가 뜨고 있다고 했다. 눈을 비비고 폰을 챙겨 나갔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아침 운동 겸 마을 입구까지 걸어 나갔다. 거기서 나는 움찔하고 말았다. 마을 주민들이 해변의 쓰레기를 주워 마대 포대에 담고 계셨다.
어제 오후에도 봤었다. 몽돌이 있는 펜션 앞바다에도 쓰레기가 군데군데 있었다. 놀러 온 사람들이 버린 소주병이며, 플라스틱 음료수병에 담배꽁초까지 말이다. 섬에 오기 전에는 분명 깨끗한 바다를 기대하고 왔는데 쓰레기로 널린 바다를 목격하고 나니 마음이 씁쓸했다. 그리고 여기 살고 있는 주민분들께 죄송한 생각도 들었다. 자기 쓰레기만 자기가 챙겨가도 이렇게까지는 안 되었을 텐데,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일까?
우리는 11시 50분 배를 타고 안전하게 뭍으로 나왔다. 이번 섬여행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시간이었다. 통영에는 570개의 섬이 있으며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섬은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자연의 보물이다. 여행 온 사람들이 조금만 신경 써서 쓰레기를 되가져간다면 섬은 더 깨끗하고 아름답게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바다가 깨끗해야 우리는 스노클링도 해수욕도 안전하고 즐겁게 할 수 있다. 우리의 휴가가 섬의 주민과 자연에게 고통의 시간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