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동호인의 축제, 마라톤 대회를 다녀오다.
그게 말입니다. 남편 따라 우연히 달리기를 시작한 게 봄이었죠. 그 사이 무릎, 발목이 아파서 한의원을 여러 번 들락날락했죠. 하루는 한의원을 갔는데 10년 전 제자의 언니(현 한의원 간호사)를 만났습니다. 나는 동생 담임이었는데 언니가 절 기억하는 게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그날 밤 저의 신상은 털렸고, 제자에게서 카톡이 왔더군요. 뭔가 기억의 끄나풀이라도 잡아야 했기에 급히 서랍장을 뒤졌고 6학년 졸업앨범을 찾았습니다. 사진까지 찍어 보내며 선생님은 너를 잊지 않았음을 증명했습니다.
다행히 그 이후에는 한의원을 가지 않았습니다. 한의사가 해준 무리하지 말고, 본인의 체력에 맞게 운동해야 오래 한다는 충고를 잊지 않았습니다. 체력 이슈! 매일 2시간씩 하는 운전과 바깥일, 집안일, 그리고 그보다 더한 각종 스트레스로 인해 운동량을 늘리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여름에는 더웠고, 가을에는 여름보다 더 비가 자주 와서 운동을 자주 빼먹었습니다.
마라톤 대회 1주일 전, 남편과 저는 마라톤 대회장에 사전 답사를 갔습니다. 처음에는 뭐 그런 걸 가냐고 말렸는데, 가보길 잘했습니다. 오르막이 생각보다 가팔라서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욕심내지 않고 달려 처음으로 5km를 완주하니 뿌듯했습니다. 혼자 연습할 때보다 기록이 잘 나왔습니다.
마라톤 대회를 3일 앞두고 남편이 새 러닝화를 사 왔습니다. 흰색이라 때가 타서 더럽다고 한 말이 마음에 쓰인 모양입니다. 근데 그것보다 더 불편했던 건 끈이 너무 자주 풀리는 점이었죠. 이번에 사 온 신발은 가볍고 끈이 특이해서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생애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에 갔습니다. 5km, 10km, 하프 코스가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인파에 마라톤의 인기를 실감했습니다. 하프 코스가 4시 40분경에 출발하고, 10km가 그다음, 마지막으로 5시 7분에 5km가 출발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초반에는 다 함께 우르르 몰려가더니 1km가 지나니 조금씩 간격이 벌어지는 게 보이더군요. 유모차에 아이 태우고 밀고 가는 엄마 아빠도 있었고요. 중간에 초등 고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안 가겠다고 그만 포기하겠다고 엄마랑 실랑이하는 모습도 봤습니다. 상가 주민 분들이 나오셔서 응원을 계속해주셨고요. 캠핑 오신 어떤 아저씨분은 ‘오 필승 코리아’ 응원곡을 신나게 틀어주셨네요. 진짜 힘이 났습니다.
10km에 출전한 남편은 제 걱정을 했지만, 누구보다 씩씩한 저는 남 의식하지 않고 평소 제가 뛰던 그 속도대로 오버페이스 하지 않고 차근히 뛰었습니다.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선두팀은 벌써 돌아가고 있었지만, 조바심 내지 않기로 해요. 스프링처럼 통통 뛰어가는 초등 잼민이의 여유로움에 약간 주눅이 들었지만, 우리 반 아니니까 괜찮아! 31:37로 5km를 완주했습니다. 노을이고 풍경이고 하나도 못 봤고요. 앞사람 뒤통수만 열심히 보면서 달렸습니다.
달리기를 마치고 완주 메달도 받고(5km는 기록측정 안 했음.) 남편이랑 기념사진도 찍었네요. 그리고 소고기국밥을 나눠주길래 그것도 받아와서 먹었습니다. 남편은 최선을 다했는지 밥맛이 없다며 조금만 먹었는데 저는 너무 맛있어서 단숨에 다 먹어 치웠네요. 생각보다 나 마라톤 체질인 듯. 그래요. 어디 가서 말하긴 부끄러운 기록이지만(그래서 카톡에도 못 올렸어요.) 첫 마라톤 대회 즐기고 왔습니다. 내년 봄을 기약해요. 남편은 내년에는 10km 나가보자는데 글쎄요. 그건 그때 알려드릴게요!
아, 첫 마라톤 대회에 가서 제가 느낀 점은요. 멋쟁이 분들이 진짜 많으시더라고요.
내년에는 저도 새 옷 좀 사고 멋을 내고 가야겠어요. 이번에 집에 있는 옷 아무거나 입고 갔는데 사진이 영 아니더라고요.(남편 반바지+ 윗옷은 언니가 5년 전에 준 티셔츠+양말 집에 있던 두꺼운 나이키 양말) 내년에는 삭스도 1개 사고 옷도 새삥으로 예쁘게 준비해서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