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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세미(2)

나는 더 이상 이웃들이 궁금하지 않다.

by 사차원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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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을 잘 꾼다. 12년 전 우리 둘째가 태어나고 몇 달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육아에 지친 나는 침대에서 낮잠이 들었고, 화살이 날아와 내 이마에 명중하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시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셨다. 4년 전 충수염으로 수술하고 무사히 퇴원한 나는 그날 밤 꿈을 꾼다. 나는 썩은 자두를 2알 주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큰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된다. 10월 8일 저녁, 9일 새벽 되겠다.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내가 쓰는 안경이 약간 망가진 모양이었다. 그걸 내가 억지로 쓰는데 안경 코걸이에 내 콧등이 쓸려서 피가 나는 꿈을 꾸었다. 약간 찝찝했다. 그냥 연휴도 다 끝나가도 출근하기 싫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렸다. 근데 그것이 신호였나 보다.


가을이라 선선하다. 그리고 달리기 하기 참 좋다. 마라톤 대회 날짜가 2주 남았다. 오늘은 저녁을 조금 일찍 먹고 달리기하러 갔다. 오늘은 이상하게 몸이 가벼웠다. 다른 날은 달리는 도중 신발 끈이 2-3번은 꼭 풀리는데 오늘은 신발 끈도 풀리지 않았다. 평소에는 4km 정도를 뛰는데 오늘은 욕심이 났다. 그래서 조금 더 욕심을 냈다. 4.7km 가까이 뛰었다. 어라? 이러면 대회까지 5km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기분이 좋았다. 출발점으로 돌아왔고 한숨 돌리고 집에 가려니 아쉬워서 수세미가 잘 크고 있는지 보러 갔다.


9월 말 남편과 나는 수세미들에게 비료를 주었다. 성장은 더디고 날씨는 갈수록 서늘해지니 걱정이 되었다. 비료를 주고 며칠 지나지 않아 비가 푹 내린 덕분에 수세미들은 생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6 포기의 수세미 중 성장이 제일 빠른 수세미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나는 기대와 희망으로 자주 수세미를 찾았다.


가로등은 있었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서 수세미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첫 번째 아이는 잘 크고 있었다. 두 번째 꼬맹이는 아직도 꼬맹이다. 성장이 너무 더디다. 그리고 발을 옮기는데 어 세 번째 아이는 시들어있다. 어라? 비료를 너무 많이 줬나? 언니가 비료 잘못 주면 수세미 죽는다고 했는데, 아이 그냥 둘 걸 그랬다. 침울해서 다음 아이를 찾는다. 근데 이상하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아이도 죽어가도 있다. 마지막 제일 큰 나의 희망 여섯째까지 시들어버렸다. 혹시나 하고 불빛을 비춰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글쎄 뿌리가 뽑힌 채 말라 있는 것이 아닌가?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가면서 시든 아이들을 다시 보니 모두 뿌리가 다 뽑힌 채 말라가고 있었다. 하! 너무 허탈했다. 오늘 낮에 다이소에 가서 퇴비 1 봉지와 혹시 몰라 비료를 사 왔다. 이걸 사면서 내가 얼마나 두근두근 했는지 모른다.


눈물이 핑 돌았다. 누가 고의로 수세미 뿌리만 뽑은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옆에 있는 다른 풀들은 하나도 뽑힌 흔적이 없었다. 내가 이 수세미 키워서 뭐 돈을 벌려고 한 것도 아니고, 남에게 해코지를 하고자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이웃들이 지나다니는 산책로에 노란 수세미꽃이 피고 수세미가 달리면 이게 뭐지 하면서 좋아할 것 같아서 심고 가꾼 것이 다다. 죄라면 내 땅이 아닌 시의 부지에 허락 없이 씨를 뿌린 죄.....


지난주 <태구는 이웃들이 궁금하다> 책을 읽었다. 주인공 태구는 12살 남자아이로 복도식 아파트에 산다. 태구의 가족은 한화(야구) 걱정을 하는 아빠와 남의 걱정을 잘하는 할머니 이렇게 3명이다. 태구는 이웃들 관찰하기가 취미이다. 그래서 708호 아줌마와의 층간소음 문제도 현명하게 해결하고, 810호 할아버지의 실종 신고도 하게 된다. 결국 할아버지는 일주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다. 예은이의 부탁에 예은이 엄마를 관찰하지만 어려워진 회사 사정으로 인해 실직 위기에 처한 예은이 엄마가 편의점에 취직한 것을 알고는 자신이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한다.(태구는 편의점 사장님과 예은이 엄마가 사귄다고 단정했다.) 나중에는 태구를 관찰하는 해모라는 아이가 나타난다. 그 아이에게 자신이 810호 할아버지에게 1만 원을 빌려주었다는 거짓말도 들키게 되고, 엄마가 몰래 다녀갔다는 소식도 전해 듣게 된다.


에필로그에 이렇게 적혀있다.

내가 진짜 걱정되는 건 아빠와 할머니다. 아빠가 회사에서 잘릴까 봐, 그래서 아파트 관리비를 못 내게 될까 봐 걱정이다.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실까 봐, 그래서 나랑 아빠만 남을까 봐 걱정이다. 그러니까 내가 진짜 걱정하는 건 나 자신이다. 나는 내가 너무 걱정돼서 이웃들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태구의 마음을 안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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