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차원 그녀 Aug 17. 2023

5. 나도 장화 갖고 싶다.

비만 오면 왜 이놈의 생각이 자꾸 나는지.....

  어릴 적부터 유난히 비 오는 날을 좋아했던 아이. 비가 오면 우산 쓰고 집 뒤에 있던 큰 바윗돌로 달려갑니다. 세월을 이겨낸 바위에는 여러 개의 움푹한 구멍이 있었고, 그 사이에 빗물을 모으며 놀았지요.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좋았고, 비를 머금은 풀냄새 나무 냄새도 좋았습니다. 비를 맞아 눅눅했던 옷 냄새, 아니 살 냄새, 슬리퍼 사이로 발가락에 닿던 흙탕물의 감촉도 눈앞에 잡힐 듯합니다.      


  그렇게 비를 좋아하던 그녀는 비만 오면 학교 가기가 싫었습니다. 그것은 다 장화 때문입니다.     

 

  오늘도 싸구려 운동화를 신고 30분 정도 걸어왔더니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벌써 내 운동화는 물먹은 솜뭉치같이 무겁습니다. 학교 옆문에 도착한 나는 신발을 벗고 문을 열고 골마루를 걸어갑니다. 내 발자국이 골마루에 선명하게 찍힙니다. 콩콩콩콩. 교실에 도착한 나는 애가 탑니다. 빨리 친구들이 오기 전에 발자국이 말라야 할 텐데요. 종일 실내화 안에서 내 발은 물에 퉁퉁 불어 있습니다.      


  하굣길에 해가 납니다. 집에 가서 빨리 신발 말려야겠다. 집에 도착한 나는 신발 안에 신문지를 구겨 넣고, 수건에 돌돌 말아 신발을 짠 다음, 밖에 넙니다. 꾸릿꾸릿 발 냄새를 풍기며 신발이 말라갑니다.      


  그다음 해 우리 학교는 폐교가 되고, 나는 면 소재지의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오란 스쿨버스도 타게 되었지요. 아버지는 그제야 장화를 사주십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월요일입니다. 아끼고 아끼던 장화를 신고 학교에 갔습니다. 이상하게 여자아이들은 아무도 장화를 신고 오지 않았습니다. 병아리 같은 내 장화가 부끄러워 발을 배배 꼽니다. 그다음부터 내 장화는 학교 간 주인을 기다리는 외로운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올봄. 4학년 아들은 장화가 작아졌다며 새 장화를 사달라 하여 새로 사주었습니다. 5학년 딸은 장화 같은 거 잼민이 들이나 신는 거라며 강하게 거부했습니다. 지루한 장마가 이어지던 올여름. 내 발을 부끄럽게 하고, 내 속을 태우던 그 장화가 더 생각이 났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4. 그 남자 그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