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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Aug 22. 2023

6. 나는 하느님이 싫어요.

선생님에 대한 기억 

  올봄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는 등교 첫날 상기된 목소리로 저를 불렀습니다. 

“엄마, 엄마, 나 완전 대박이야!”

“왜? 무슨 일 있어?”

“글세, 나 또 담임선생님 남자다. 5년 동안 나 4번이나 담임선생님이 남자셨어. 이건 기적이야. 친구들이 대단하다고 말했어.”

여교사 비율이 워낙 높은 초등에서, 그리고 진주시에서 이건 기록에 가까운 확률입니다. 

“그래, 좋겠다. 우리 딸은 담임 선생님 복도 많네.”     


  저도 초, 중, 고 동안 여러 명의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중 탑은 역시 초 1 때 선생님입니다. 이분의 실명을 아직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지금도 한 번씩 떠오를 때마다 이가 빠득빠득 갈리기 때문입니다. 40대 중반의 여교사 P선생님은 짙은 화장과 날카로운 눈매로 도시녀의 매력을 풀풀 풍겼으며, 선생님 앞에만 서면 나는 말이 제대로 안 나오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요즘이야 학교 가기 전에 한글 조기교육이 많이 이루어지지만, 먹고살기 바쁘셨던 부모님을 둔 나는 내 이름 3글자를 겨우 쓰며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하루 걸러 하루 그놈의 받아쓰기는 건너 띄는 날이 없었고, 나는 매번 10-20점을 기록하며 선생님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습니다. 오후 돌봄도 없던 그 당시에 나는 나머지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가야만 했지요. 선생님은 유달리 숙제를 많이 내어주었습니다. 오늘은 국어책 따라 쓰기 숙제입니다. 개미가 나뭇잎에 올라타 강물에 떠내려가는 짧은 글이었습니다. 그걸 100번 써오는 숙제입니다. 초저녁 밥을 먹자마자 나는 숙제를 합니다. 아무리 해도 아직 멀었네요. 나는 엉엉 웁니다. “숙제 안 해가면 나 혼나” 

밤새 언니, 아빠, 나는 돌아가며 쉬지 않고 숙제를 합니다. 

“내 글씨 보이제. 내가 쓴 것처럼 너무 잘 쓰지 말고 알았제?” 

엄마는 괜찮다고 자라고 말리고, 나는 안된다며 언니, 아빠에게 자지 말고 숙제하라고 떼를 씁니다. 밤새 숙제를 했지만, 다하진 못했고, 부랴부랴 등교를 합니다. 친구들은 아무도 숙제를 안 해왔습니다. 선생님은 가타부타 말이 없네요. 네가 잘못 들었다든지 밤새 숙제한다고 욕봤다든지 한마디만 해주셨어도 이렇게 오래 기억되지 않았을 텐데요.      


  오늘도 밥을 먹고 미친 듯이 학교에 왔습니다. 아차차. 큰일 났습니다. 덜렁대는 나는 깜박하고 크레파스를 안 들고 왔습니다. 

“선생님, 저 크레파스 안 들고 왔어요. 언니 교실에 가서 있는지 물어보고 올게요.”

“그래, 얼른 갔다 와라.”

언니 교실로 달려온 나는 부끄러워 노크도 못하고 뒷문을 기웃기웃 댑니다. 언니반 선생님이 날 봤는지 언니 보고 나가보라고 합니다. 

“왜? 또 눈물 바람인데? 뭐?”

“언니야, 크레파스 있나? 내 안 들고 왔다. ”

“없다. 어제 안 챙기고 뭐했노? 가서 선생님한테 죄송하다고 해라.”

교실로 돌아온 나는 모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합니다. 

“선생님, 언니도 없대요. 집에는 있는데, 집에 가서 가져올까요?”

“그래, 그럼 집에 가서 가져 온나.”

“예? 아, 알았어요. 다녀올게요.”

집에 가는 길에 나는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박았습니다. ‘멍청이, 선생님한테 친구 거 같이 쓰면 안 되냐고 말도 못 하는 멍청이.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이’ 그날 나는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서 30분 만에 집에 도착했습니다. 크레파스를 챙겨 들고 또 30분을 걸어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점심시간이 다 되어 나는 급식을 먹으러 갑니다.     


  이 두 번의 기억은 참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항상 이 세 번째 기억입니다. 남자아이처럼 짧은 레고머리를 하고 다녔던 나는 머리에 이가 있었습니다. 위생적이지 못한 주거 환경과 엄마의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했던 우리 3남매는 초등학교 때 머리에 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선생님이 내 머리에 기어 다니는 이를 발견하고 기겁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머리에서 용케 이 1마리를 잡으셨어요. 바닥에 뽈뽈뽈 기어가는 이를 나는 모른 척 눈으로만 쫒았습니다. 

“빨리 죽이지 않고 뭐하노?”

“네?..........”

“빨리 잡아서 죽여야지.”

나는 친구들이 다 쳐다보는 가운데 선생님 교탁 옆에 쭈그려 앉아서, 이를 처음 본 것처럼 손톱으로 뚝 눌러서 이를 죽였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이를 죽여봤지만 이날은 능숙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엄청 연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눈치채지 못하게요.     


  이렇게 나에게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이 여자는 교회를 다니는 모양이었습니다. 그 당시 우유급식을 했고, 그 여자는 우유 먹기 전 꼭 눈을 감고 함께 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

눈을 찔끔 감고 나도 기도했습니다. 아니 고백했습니다. 

“나는 하느님이 싫어요. 아니 선생님이 너무너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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