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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Apr 19. 2024

왜 초등학생은 급식에 열광하는가?

사실 저도 급식 먹으러 학교에 갑니다. 

우리 교실 게시판에는 이달의 급식 종이가 없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주야장천 그것만 쳐다보고 있는 게 못마땅했던 담임은 언젠가부터 급식 메뉴 종이 게시를 그만두었다.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급식 메뉴를 옆 반 애들에게 물어보곤 했다.       


올해도 당연히 없다. 하루는 우리 반 여자아이가 선생님은 왜 급식 종이를 게시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생각해야 한다. 생각해야 한다. 순간 번쩍 나도 모르게 멋진 답을 하고 말았다. 이건 다 환경을 생각해서지. 종이를 뽑으면 종이 낭비 잉크 낭비잖아. 너 집에 가서 학교 누리집이나 학교종이 앱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단다. 우리 환경을 생각해 조금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어때? 내가 생각해도 멋지다.   

   

당일 급식소만 가도 급식 메뉴를 눈으로 확인 가능한데 도대체 왜 이렇게 급식 메뉴를 미리 알고 싶어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런데 급식소도 가기 전에 나에게 그날의 급식 상황을 알려주는 소식통이 나타났다. 3월부터 급식을 가는 길에 이상한 남자애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하며 나에게 꼭 한 마디씩 흘려주고 갔다. “선생님, 오늘은 돈가스 맛있어요.” 그다음 날은 “선생님 오늘 조금 매워요. 매우니까 물하고 같이 드세요.” 돈가스가 나온 날은 진짜 돈가스가 바삭해서 맛있었고, 매운 메뉴인 오리 불고기는 내 입에는 크게 맵지는 않았다. 점심을 먹을 때마다 그 아이 생각에 웃음이 났고, 가는 길에 그 아이를 못 만난 날은 괜히 서운하기도 했다.      


오늘 2학년 반에 대교를 들어갔다. 뜨아! 그 반에 그 녀석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내어주고 가신 수학 학습지를 열심히 풀고 있었다. 학습지를 다 푼 친구는 학급 문고 책을 읽도록 했다. 근데 교실 앞에 우유 바구니에 우유가 한가득하다. 저학년의 경우 1~ 2교시쯤 빨리 우유를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점심 급식이 12시 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늦게 먹으면 배불러서 아이들이 밥을 많이 못 먹기 때문이다. 

“자, 우유 아직 안 가져간 친구 우유 가져가서 먹어요.” 

“선생님, 저는 기침해서 우유 못 먹어요.”

“그래? 근데 왜 마스크를 벗고 있죠? 마스크 쓰세요.”     

이 녀석은 또박또박 말도 잘하네요. 그러고는 제 눈치를 보면서 마스크를 씁니다.


 40분의 시간이 금세 흘렀습니다. 그냥 가기 아쉬웠던 저는 그 아이에게 말을 붙여 봅니다. 

“너, 혹시 선생님 누구인지 기억하겠어?”

“네. 급식소에서 밥 먹고 올 때마다 만나는 선생님요.”

“그래, 근데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뭔데요?”

“너, 왜 만날 나한테 급식 메뉴 알려줘?”

“급식 맛있으니까, 선생님도 맛있게 드시라고요.”

“그래, 고마워!”

와, 2학년이 이렇게 달콤한 말을 한다니요. 심쿵했습니다. 여기도 우리 반 반장 못지않은 언어의 마술사가 사시네요. 반가웠어. K군.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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