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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Apr 24. 2024

담임은 소풍에 진심입니다.

소풍을 한 번 가보겠습니다.

오늘 봄 현장 체험학습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학교는 1학기에는 무조건 시내로 체험학습을 떠납니다. 저희 학년의 체험학습지는 케이블카 타고 미륵산, 그리고 박경리 기념관입니다. 통영 무식자인 저는 지난주 옆 반 선생님과 함께 사전 답사를 떠났습니다. 그러고 답사보고서를 제출하였지요. 사전 답사에 가서 이동 시간 체크, 위험한 곳 확인, 점심 먹을 장소 확인, 그리고 박경리 기념관에서 풀 퀴즈의 정답 확인을 해 보았습니다. 박경리 기념관 퀴즈는 우리 학교 선생님이 몇 년 전에 쓰던 걸 공유해 주신 덕분에 잘 활용하였습니다. 박경리 기념관에서 5분정도 걸어 올라가면 박경리 묘소가 나왔습니다. 가는 길에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기에 아이들과 사진을 찍을 장소로 픽해 두었습니다.      

4월 17일 사진


그리고 D-6일 전부터 저의 온 신경은 일기예보에 꽂혔습니다. 저번 주는 미세먼지가 나쁨인 날이 많아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다행히 토요일에 비가 온 후 미세먼지가 조금 사라졌습니다. 일요일에 보니 화요일 저녁부터 비 예보가 떴네요. 아, 어떡하지. 화요일 저녁 핸드폰으로 내일 날씨를 검색합니다. 비는 5mm 미만인데, 해안가에는 강풍이 불 수 있다고 시설물 관리에 유의하라고 합니다. 케이블카를 많이 타 보신 분은 아실 텐데 비가 오면 케이블카는 운행합니다. 하지만 강풍이 불 경우 운행이 중지되기도 합니다. 아, 첫 일정부터 꼬이면 정말 난감한데 말이죠. 강풍주의보는 얼마나 바람이 세게 불어야 발효되는 거지? 걱정 인형 회로는 풀로 가동이고요. 인터넷을 검색하니 정보가 바로 나옵니다. 밤새 온갖 걱정을 했습니다. 비가 오면 길이 미끄러울 텐데 미륵산 정상에 어떻게 올라가지? 바람이 불어서 케이블카 운행이 중지되면 교감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기 도서관이라도 들러야 하나?     



오늘 아침 일어나자 TV를 켰습니다. 오전에 5mm 미만의 비와 바람, 점심 이후에는 날씨가 갭니다. 하늘이시여 제발 저희의 소풍을 막지 마소서.     


학교에서 스쿨버스를 타고 9시 40분쯤 출발해서 케이블카 매표소에 10시 조금 넘어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오늘은 운행이 가능하답니다. 하지만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시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를 나눠서 케이블카에 탑승했습니다. 우리 반 P군과 반장 J군과 그리고 몇 명 저까지 맨 먼저 탑승했습니다. “선생님 무서워요. 무서워요”를 연발하던 P군이 울기 시작합니다.

“선생님, 이러다. 떨어져 죽는 거 아니에요. 흑흑흑. 야 J 너 발 쿵쿵거리지 말라고!”

“걱정하지 마. P야. 우리 케이블카가 떨어지면 선생님은 꼭 너부터 구할 거야! 양옆에 J 하고 K는 우리 P 군이 진정할 수 있도록 손 꼭 잡아주세요.”

하지만, P 군의 무서움을 달랜 건 저의 약속도, 친구들의 따뜻한 손도 아니었습니다. 영리한 반장 J의 한 마디였어요.

“내가 엄마한테 용돈 받아왔거든. 매점에서 내가 간식 사줄게.”

“그래? 그럼 힘내 볼게. 훌쩍.”

네. 호랑이의 곶감보다 무서운 건 매점의 간식입니다. J는 약속대로 소떡소떡과 아이스 탕후루를 사서 P의 마음을 달래주었고, 하산 케이블카에서 우리는 웃으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한 20분가량 계단을 쭉 올라갔습니다. 온통 시야는 뿌옇게 흐리지만 나무와 꽃은 상당히 싱그럽습니다.

“반장, 여기 분홍색 꽃 상당이 예쁘다. 그렇지?”

“선생님, 제 앞에 이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데요.”

“반장. 그만.”     


정상에 올라서 미륵산 표지석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하산 케이블카를 타러 내려갑니다. 탑승장에 다 내려갈 무렵 해가 나면서 안개가 싹 걷히고 시야가 드러납니다. 아! 타이밍이 절묘하네요. 아쉽지만 저희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급하게 내려갑니다.     


점심을 먹고 박경리 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기념관 입장 시간이 남아 일단 박경리 묘소에 가기로 합니다. 또 계단이  나오자 아이들이 비명을 지릅니다.

“선생님, 오늘 지옥 훈련인가요?”

“아니야, 다 와 가. 그리고 조금만 있으면 멋진 풍경이 나올 거야.

“얼마나 더 가요. 선생님?”

“다 왔다. 다 왔어. 어. 맙소사!”

“아니, 선생님. 뭐예요!!!”

그새 일주일만 더 버텨 달라며 빌고 또 빌었는데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포클레인이 유채밭을 다 엎어놓았네요. 작업하는 분의 말에 의하면 새로운 작물을 심어야 해서 다 갈아엎었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한 줄로 서서 유채꽃밭에서 신나게 뛰어 내려오는 영상을 찍을 계획까지 담임의 머리에는 다 있었는데 말이죠. 저는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박경리 묘소에 갔습니다. 아이들은 솔방울을 주워서 묘지 상석에 올려두고 절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또 자기들끼리 옥신각신합니다.

“야, 나는 교회 다녀서 절하면 안 된다고.”

“네. 그럼 기도하세요.”     


박경리 기념관 앞에서 퀴즈 미션을 간단히 설명하고 저는 입구에서 아이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립니다.

1반 선생님은 아이들의 질서 지도를 위해 전시실로 따라가셨죠. 한 30분이 흐르자 다 푼 조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뽑기 기회를 제공합니다. 1주일 동안 열심히 준비했는데 선물이 약했나 봅니다. 생각보다 반응이 미지근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친구들과 우리 고장의 자랑인 박경리 선생님의 일생과 작품을 알아본 것만 해도 큰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아가는 버스에서도 조잘조잘 떠드는 너희의 체력에 두 손 두 발 다 든 날. 선생님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시집과 아이들 읽어주려고 산 동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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