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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Aug 31. 2023

8. 흐르는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흐르는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저는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올해, 칠순을 맞이하신 아버지는 고집이 세시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떠들어도 본인이 아니면 아닌 거다. 작년 11월 중순, 며칠 동안 허리가 이상하셨던(?) 아버지는 읍내 병원에 진료를 보러 가셨다. 의사는 허리뼈 골절이라며 입원을 권유했다. 고집 센 아버지는 손사래를 치시며 ‘집에서 잘 누워있으면 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당당히 병원 문을 박차고 나가셨다. 병원을 다녀온 아버지는 괜찮다 괜찮다를 연발하셨으나 그 소식은 언니의 귀에 들어가고 만다. 금요일 오후, 하던 일까지 내팽개치고 시골집으로 달려온 언니는 아빠를 모시고 기어코 입원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내었다. 사실 우리 3남매는 누구 하나 빼지 않고 다 고집이 세다. 그리고 특히 우리는 의사 말을 잘 듣지요.


  토요일 오전 입원 수속을 다 마치고 청도로 돌아가던 언니는 나에게 전화했다.

“의사가 그러던데, 3주 이상 입원해야 한다더라. 나이가 들면 뼈도 안 붙는다더라. 내일 시간 되면 한번 가보든지 해라.”


  일요일 오전 언니가 주문한 대로 아버지가 쓰실 생필품 몇 가지를 사 들고 아버지 병실로 찾아갔다. 시골 병원이라 5~6명의 환자가 함께 누워있는 병실은 좁고도 불편했다. 그 흔한 커튼 하나 없었고, 방에는 샤워실 화장실도 따로 없었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할아버지 냄새가 많이 났다. 챙겨간 물건을 정리해 드리며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있으라 신신당부를 드렸다.     


  주말마다 언니와 나는 번갈아 병원을 드나들었고, 그 사이 아버지는 언니에게 전화해서 ‘집에 가고 싶다. 의사한테 전화해봐라.’라고 투정을 부렸다. 언니는 그때마다 어린 아기 달래듯이 아버지 마음을 위로해 드렸다.     

  주말에 한번 갔을 때 아버지는 집에 다녀오고 싶다고 하셨다. 벌써 간호사에게 외출까지 다 말해 놓은 상태라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모시고 집에 갔다. 아버지 허리에 무리 가지 않으시게 방지턱마다 나는 속도를 낮추느라 진땀을 뺐다. 아버지의 눈은 바깥 풍경을 담기에 바빠 보였고 우리는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마당에 들어선 아버지는 메주가 진눈깨비에 맞을까 걱정하셔 집안으로 옮겨 드리고, 본인은 방에 들어가 잠시 앉아계셨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서 뭔가를 주섬주섬 챙기셨다. 정확히 보진 못했는데 병원비 계산할 현금을 챙기시는 모양이었다. 가져간 외투가 지저분해서 다시 새 외투를 챙겨 차에 올랐다. 채 30분도 집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날 날은 추웠고 부슬부슬 눈발이 날렸다. 나는 병원 근처에서 호두과자와 땅콩 빵을 사서 아버지 품에 안겨 드린 뒤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진주로 돌아가는 차 안 언제가 혼자 남게 될 엄마를 상상하자 눈물이 터졌다.      


  퇴근길에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이번 주는 의사가 보내줄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가뜩이나 12월이라 할 일도 많은데 나는 아빠의 어리광을 곱게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언니와 달리 매정한 나는 우리 집 애들 혼내듯이 쏘아붙였다.

“아빠가 의사가? 의사가 나가라 해야 갈 거 아니가? 나갔다가 또 아프면 입원하러 올 거가? 제발 보채지 말고 기다려요.”

“그래, 그래야지.”

또 금세 수그러지시네요.     


  크리스마스이브, 드디어 의사로부터 퇴원 허가를 받은 아빠는 한 달 만에 집에 오실 수 있었다. 퇴원을 시켜드리며 점심을 사드린다고 하니 중국집에 가서 음식을 포장해 가자고 하셨다. 짜장면과 짬뽕을 포장해서 엄마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엄마, 이제 자유 끝이네, 아빠 이제 집에 왔으니 잔소리 엄청 할 건데.”

“너희 아빠 잔소리가 뭐 하루 이틀인가?”

엄마는 내 농담에도 허허 웃으신다. 오랜만에 나란히 앉아 식사하는 모습을 보니 그저 흐뭇했다.     


  다행히 올봄 아버지의 칠순 잔치를 무사히 할 수 있었다. 작년 봄 큰아버지의 부고에 누구보다 마음 아파했던 아버지. 부산의 작은고모는 자신도 편찮으시면서 막냇동생 입원 소식에 전화로 내내 우셨다고 했다. 꽃도 피고 지고, 사람도 한번 태어나면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요즘 들어 이 시간이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눈 앞을 가린다.      


자식은 부모에게 바란다.

잘 살아서 금수저면 좋겠다고.

아픈 부모를 둔 자식은 말한다.

부디 건강만 하시라고.

부모를 여읜 자식은 말한다. 

다 필요 없으니 제발 살아만 계시라고.      

-김다슬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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