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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안경 잠시 내려놓기

요동치는 마음의 물결 속에서 중심 잡고 버티는 법

by 융중복룡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마음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색안경 끼고 본다'는 말은 이런 마음의 작용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이 있는 그대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나가 자기만의 안경을 끼고 그 세상을 자기 위주로 해석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령 마음에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할거야'라는 안경을 하나 끼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그때부터 그 사람의 언행 하나하나가 다 그 안경의 색에 맞춰져서 보이기 시작한다. 그 사람이 나를 칭찬하면 왠지 나를 비웃는 것 같고, 그 사람이 나를 그냥 보기만 했는데도 싸우자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사람이 나를 무심코 지나쳤는데 내가 싫어서 인사조차 하기 싫은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은 진짜 나랑 잘 지내고 싶어서 나를 칭찬한 것이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시선을 옮기다 보니 나를 본 것이며, 인사하기 괜히 어색해서 아무런 악감정 없이 쑥쓰러워하며 지나쳤을 수도 있다.


안경을 한 꺼풀만 벗겨냈어도 아무 일이 없었을 것을, 그 안경 하나 쓴 것 때문에 혼자서 끙끙 앓으면서 '대체 쟤는 나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라고 밤을 새서 괴로워하게 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는 것.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하고 있어'라는 안경을 끼고 나면, 그 사람이 나를 비웃는데도 내가 좋아서 웃는 줄 알고, 그 사람이 나를 이용해먹으려고 접근하는데도 그 사람의 진실됨에 감동하게 되며, 정신적으로 심한 착취를 당하면서도 상대방을 둘도 없는 친구라고 착각하게 될 수도 있다.


자기의 마음에 어떤 안경을 썼는지에 따라서 세상에 대한 해석이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일을 가지고 어제 생각했을 때는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우울했다가 오늘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 일 없이 감사하구나 하는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기'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중요하다. 사람은 순간적으로 시야가 좁아지면 자기 생각에 매몰되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마치 늪에 빠져들어가는 것 같이, 오판에 오판을 거듭하며 비현실적인 추론의 바닥으로 떨어져내린다. 이럴 때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천천히, 침착하게 그 늪을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은 비로소 짙은 색안경을 잠시 내려놓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


"뭐야, 그렇게 심각한 일이 아니었잖아?"라든지,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심각한 문제 덩어리잖아?"라는 식으로 어느 쪽으로든 결론은 날 것이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상황에 적절한 대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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