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숨통을 틔워 주는 정의로운 이들을 응원하며
소설 삼국지에 보면 조조가 동탁에게 죄를 짓고 도망치다가 잠시 부친의 친구인 여백사의 집에 숨어드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여기에 얽힌 이야기는 대체로 소설적 허구로 본다.) 소설로만 보자면, 조조는 자신을 대접하기 위해 돼지를 잡으려고 칼을 가는 여백사 식구들을 오해해서 자신을 죽이려는 것으로 판단, 일가족을 몰살시킨다. 모두 죽이고 나서 부엌에 묶여 있는 돼지를 발견한 조조는 자신의 오해로 참극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더 이상 그 집에 머물 수 없어 서둘러 동행인 진궁과 함께 여백사의 집을 떠난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황급히 길을 나서던 조조 일행은 그때 마침 이웃 마을까지 가서 조조를 위해 술과 안주를 마련해서 가져오는 길이던 여백사와 마주치게 된다.
여백사는 조조를 대접하기 위해 돼지도 잡고 술과 안주를 마련해오던 길이라, 조조의 급히 떠남을 의아하게 여겨 조조에게 어디에 가는 것인지 묻게 된다. 급한 일이 생겨서 서둘러 떠나게 됐다고 변명하는 조조, 그리고 아쉬워하며 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가는 여백사. 그런데 조조는 돌연 몸을 돌려 멀어져가는 여백사를 쫓아가 단칼에 죽여버린다. 이에 놀란 진궁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묻자, 조조는 여백사가 원래 자신을 죽일 마음이 없었더라도 집에 돌아가서 가족이 모두 죽은 처참한 광경을 보게 되면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서 반드시 자신을 잡으려 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쫓기는 몸인 자신은 살아날 수 없을 것이라고 장황하게 변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긴다.
"차라리 내가 남을 저버릴지언정 남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으리라!"
여기까지가 소설 속 조조의 언행이고, 그 후 이에 실망한 진궁은 조조를 떠나게 된다는 내용이 전개된다.
소설 지은 이가 조조의 잔인하고 무도한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저 대사를 굳이 가져다 썼다고 해도, 소설의 허구성은 늘 그렇듯이 이 경우에도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삶의 현장 곳곳에서 이 문제로 힘들어하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많은 선량한 이들이 '차라리 남이 나를 저버리게 할지언정 차마 내가 남을 저버리지는 못하겠다.'라는 심정으로 살아내고 버텨내다가 끝내는 호구가 되고 이용만 당하다 버려진다. 또 그 반대편에는 일반인들의 상식적 판단으로는 이해를 할 수 없는 소시오패스들이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저버리며 비인간적인 행동들을 일삼고 있다. 역사적으로 조조가 어떤 인물이었는지와 관계 없이 소설 속의 저 대사를 내뱉은 조조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떤 짓이라도 하는 소시오패스의 전형적인 심리를 드러내주고 있고, 그가 대표하는 인간상은 현대에도 여전히 살아남아서 사회 곳곳에서 물을 흐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누구나 알고 있듯이 가장 좋은 답은 '남도 나를 저버리지 못하게 하면서, 나도 남을 저버리지 않는 것'일 테다.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될 짓이라는 게 있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 간에 이런 짓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당장 어린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학교 현장에만 가 봐도 이런 아이들은 꼭 한 명씩 있다. 자기가 다른 애를 괴롭히지도 않고, 다른 애가 자기를 괴롭히도록 내버려두지도 않는 아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더 나아가서 친구들 간에 부당한 일이 있을 때 꼭 그 일이 더 심각해지지 않도록 적절한 선에서 막아서는 정의로운 아이들이다. 그런 애들이 커서도 사회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 본다.
이렇게 가장 기본적인 정의를 삶의 현장에서부터 실현해나가지 않으면 몇몇 거물급 소시오패스들을 몰아낸다고 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정말 좋은 세상을 살고 싶다면 나 자신부터 남에게 못할 짓은 하지 않으려 삼가면서, 누군가 사람이 사람에게 해선 안될 짓을 하는 걸 목격하면 바로 그 싹을 잘라버리고 제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부당한 일에 대해서는 화를 내되, 그 화가 너무 커져서 내가 오히려 상대에게 부당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균형을 잡아야 한다.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반성을 하고 질책을 수용하되, 그 질책이 지나쳐서 너무 부당해지지는 않는지 늘 감시하고 그 선을 넘어오지 못하게 상대를 압박해야 한다. 내가 남을 너무 괴롭히지도 않고, 남이 나를 너무 괴롭히지도 못하게 늘 사소한 일상에서 계속해서 균형을 맞춰 나가는 사람. 나도 살고 남도 살 수 있도록 그 여지를 계속 만들어가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서 길러지고 버텨줘야만 아직도 한국 사회 전체를 병들게 만들고 있는 온갖 비인간적인 일들이 점차 모습을 감춰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