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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pr 03. 2024

애증의 시집 한 권, 미당未堂의 화사집花蛇集초간본

미당 서정주 시인의 화사집











전리품戰利品으로 얻은

애증의 시집 한 권, 미당의 화사집 초간본






1980년대 중후반이니

거진 40년은 되었으리라.


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서울 오산학교이다.

분명

오산고등학교인데

우리는 '오산학교'라 부른다.


오산학교는 1907년

평북 정주에

민족의 선각자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세운 민족 사학이다.


그때

오산학교라 불서인지

우리도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오산고등학교는 경기도에도 있다.

재직 시

오산고등학교 선생이라고 하면

대부분

 "그렇게 먼 곳을

어떻게 출퇴근하느냐"라고

걱정한다.


경기도 오산은 까마귀 오烏자를

서울 오산은 다섯 오五자를 쓴다.


원 밑 보광동에  있는

오산 학교를 가려면

용산역에서 내려

81번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용산역 근처에

사창가私娼街가 있다.


지금

개발되어 자취를 감췄지만

당시에는

서울역, 청량리역 등지에

사창가가 많았다.


그런데

하필 용산역 사창가 중간에

'뿌리서'이라는

헌책방이 있다.


헌책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기에

종종

그곳에 들다.


그럴 때면

아가씨들의 집중 공세에

곤욕을 치르고서야

그곳에 당도한다.


그야말로

전쟁이다.


그곳에서

횡재橫財를 했다.


구석진 곳에서

미당 서정주 시인의 1941년 판

화사집花蛇集초간본을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전리품戰利品과도 같았다.


헌데

책값이

내 한 달 월급 32 만원이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던 끝에

급기야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당시

신혼 초이기에

시골 농협에서

500 만원 융자받아

월급으로 이자를 갚아가며

살아야 했다.


살림 집은

경기도 부천 심곡동

산동네

연탄 때는

사글세다.


큰 죄를 지은 듯

슬금슬금

들어와

아내 몰래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슬쩍

신발장 구석

다.


나중

책꽂이 꽂을 요량로!


그만

매의 눈을 한

아내에게

들키고야 말았다.


그날 밤 이후

우리 부부는

말없이 며칠을 보냈다.


한 달 생활비를

시집 한 권에

모두 탕진한 죄로!


지금

녀석 '화사花蛇'

아는지 모르는지

서재 한 켠에 떡하니

자리 잡고 .


애증愛憎의 화사집을 보고 있노라면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구입한 화사집은

100부 한정판  중

 96번째이다.


화사집을 구입한 몇 년 후

어떻게 알았는지

미당 생이

사람을 보내

내 책을 구입하겠다고

했다.


그 당시 내가 구입한

10배 가격인

300 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팔 수는 없고

빌려는 드릴 수는 있다고 했다.'


나의 고집에

그는

아쉬운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미당 당신께서는

정작

저자이면서

그 책을 소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

그럴 수 있었겠다.


1941년 판이니

일제 강점기였고

게다가

육이오 동란이 있었으니

백 권 중

몇 권이나 남았을까?


어디에선가

시개로

아궁이에 들어가거나

심지어는

된장 장독 덮개가 되었을지도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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