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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pr 20. 2024

감나무 우듬지에 낮달이 걸려 있다

초가집의 담장 너머







4월 중순이다.
아직 봄이다.


30도를 웃돈다.

여름도 되기 전에

불볕더위다.


거리엔

성급한 젊은이들

반팔 셔츠에 반바지다.


지난겨울 끄적인

글이 있.


시를 쓰려

아니

수필인지

소설을 쓰려한 것인지

모르지만


중간쯤 선 채

그대로

몇 줄

옮겨 본다.








찬 겨울이 내린 산마을, 깊숙한 산골짜기를 헤치고 내려온 흰 눈이 초가집 지붕을 부드럽게 덮었다. 허연 이불처럼 덮인 그 지붕 너머로, 앙상한 감나무 우듬지에 하얀 낮달이 걸터앉았다. 그 낮달은 마치 이곳의 시간을 멈춘 듯,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산골의 풍경을 고요히 바라보고 있다.


이 겨울의 산마을에서는 엊그제 눈을 떠 세상의 빛을 처음 본 강아지가 있었다. 그 작은 생명체는 처음 보는 흰 눈에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세상을 바라보며, 대청마루 아래를 서성인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딘 듯 그 순수한 눈빛은 겨울의 차가움 속에서도 따스함을 불어넣는다.


한편, 삽살이는 마치 자식을 잊은 듯 눈밭을 뒹굴며 달린다. 흰 눈이 뒤집히고, 눈보라가 일며, 그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산골짜기에 메아리친다. 그의 장난감처럼 보이는 눈더미는 겨울의 즐거움을 그대로 전달하며, 그 어떤 순간보다도 자유롭고 신나는 시간을 보낸다.


산골 마을의 삶은 그리 낭만적만은 아니다. 허리가 활처럼 구부러진 늙은 촌부는 오솔길을 걷고, 눈을 치우며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킨다. 그리고 홀로 된 아낙은 젖은 버선을 말리기 위해 숯불을 지피며, 겨울의 추위를 견디고자 한다. 그들의 일상은 고된 겨울나기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도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강인함이 엿보인다.


삭풍 한 줄기가 마을을 스치며 가난이 묻은 문풍지를 흔든다. 그 소리는 마을 전체에 울려 퍼져, 겨울의 척박함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 찬란한 겨울 풍경 속에서도, 산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계절의 허물을 벗고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겨울이 주는 엄혹함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의 삶은, 저마다의 서사를 가지고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봄을 향해 나아간다.


이렇게 찬 바람이 불어오는 산골짜기에서, 작은 생명들의 탄생과 함께, 새로운 생명의 순환은 계속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겨울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산골의 깊은 정을 더욱 깊게 한다. 낮달이 지키는 고요한 밤, 초가집의 담장 너머로 은은하게 빛나는 눈의 세계는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산골의 겨울밤은 길고, 별들이 총총히 빛나며 새벽을 알린다. 그 별빛 아래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간결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늙은 촌부는 긴 하루를 마치고, 숯불 곁에서 잠시의 휴식을 취한다. 그의 눈가에는 수많은 겨울을 견뎌낸 주름이 새겨져 있으며, 그 주름 사이로 스며드는 미소는 온화하다. 그는 젊은 날의 꿈을 잃지 않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꼭 붙잡고 있다. 마을의 젊은이들이 떠난 자리는 그에게 더욱 큰 책임감을 안겨주었으며, 그 책임을 지고 서는 그의 모습은 마을의 든든한 기둥과도 같다.


한편, 처음 눈을 경험하는 강아지는 마루 아래를 벗어나 조심스레 눈밭으로 발을 내딛는다. 그 작은 발걸음은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담고 있으며, 처음 마주하는 눈의 차가움에 잠시 놀라 움츠린다. 그러나 호기심이 그를 다시 이끌고, 곧 그는 눈 위에서 해맑게 뛰노는 삽살이를 발견하고 얼굴에 활짝 웃음을 피운다.


젊은 아낙은 숯불 곁에서 버선을 말리며, 잠시나마 겨울의 추위를 잊는다. 그녀의 마음은 홀로 남겨진 가족을 걱정하면서도, 이내 불길을 바라보며 잠시의 평화를 느낀다. 그녀의 생각은 때때로 고향의 따뜻한 기억으로 떠돌아가지만, 이내 현실의 무게가 그녀를 다시 현재로 불러들인다. 그녀는 이 겨울을 또다시 견뎌내야 할 것이며, 그녀의 강인함은 마을 사람들에게도 힘이 된다.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겨울을 견디고 있는 산골 사람들의 삶은, 때로는 서로를 의지하며, 때로는 각자의 고독 속에서 깊은 사색에 잠긴다. 그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강인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자연과의 깊은 연결을 엿볼 수 있다.


삭풍이 문풍지를 흔들어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봄을 기다리는 따뜻한 희망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있다. 이 산골의 겨울이야기는 마치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울림을 지니며, 깊은 산속의 조용한 풍경과 어우러진다. 촌부의 숯불이 이글거리는 가운데, 그 불빛은 마치 과거의 이야기꾼처럼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산골짜기를 메워, 온 마을이 하나의 큰 가족처럼 느껴지게 한다.


눈이 내리는 밤, 늙은 촌부는 자주 떠오르는 젊은 시절의 기억에 잠긴다. 어렸을 적 겪었던 첫눈의 기억, 그리고 그 눈을 맞으며 달렸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그의 귓가에 생생하게 울린다. 이제는 모두 각자의 길을 가고, 남겨진 그는 이 산골 마을의 추억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었다. 그의 흔들리는 불빛 아래에서, 과거와 현재가 서로를 마주 보며 고요히 숨 쉰다.


밤이 깊어가고, 강아지는 이제 눈밭에서의 놀이에 흠뻑 빠져든다. 첫눈을 만끽하며 뛰어노는 모습은 마치 봄날의 꽃처럼 싱그럽고 활기차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삽살이는 자신의 젊은 날을 회상하며, 더불어 그 시절의 에너지를 다시 느끼는 듯하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삭풍 속에서도 마을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젊은 아낙은 버선을 끝내 말리고, 조용히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한다. 그녀의 손놀림은 능숙하고,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견고해진다. 그녀는 이 산골 마을에서의 삶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그 경험은 그녀를 더욱 단단한 인간으로 만들어간다. 그녀의 존재는 마을에게 큰 힘이 되며, 그녀의 조용한 강인함은 모두에게 큰 용기를 준다.


이 산골 마을의 겨울은 쉽지 않지만, 각자가 지닌 강인함과 부드러운 마음, 그리고 서로를 향한 깊은 애정으로 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들의 삶은 겨울밤의 별처럼 차가우면서도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빛을 발한다. 이 산골의 겨울 이야기는, 각자의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으며, 그들이 어떤 계절을 맞이하든 함께 할 수 있는 힘을 심어준다.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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