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일찍이 쓴맛을 봤기에 웬만한 쓴맛은!

바늘침과 익모초즙



어릴 적

체하면


그저


배움켜 잡고

뒹굴며

운다.





체하면 배 움켜잡고,

그저

울기만 했던 어린 시절.


내가 아픔을 호소하면

할머니는 바늘을 머리에 문지른다.

머릿기름을 바를 요량이다.


그런 후에

열손가락 끝을 따

피를 낸다.

검붉은 피가 솟구친다.


" 봐라,

시커먼 피를!

꽉 막혔다.

이제 팍 뚫렸으니

되얐다!"


등짝을 쓱쓱 문지르는 것으로 마무리하신다.


그 모습

마치

허준도 울릴 그 기세다.


항상

차분하면서도

따뜻했던 할머니의 눈빛은

살결보다 더욱 부드러운 고요함으로

내 복통을 다스렸다.


바늘에 묻힌 머릿기름이

약효였을까?

그러나,

엄마의 걱정은 달랐다.

할머니의 치료법인

바늘에 대한 의심을 감추지 못했다.


시어머니의

머릿기름 바늘에

신경이 쓰인 모양이다.


아마도

비위생적이라 생각했으리라.


이렇다 할 말 한마디 못한 채,

시어머니

몰래

쓴맛이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익모초를 갈아 먹였다.


일찍이 쓴맛을 봤다.


쓴맛은 그것을 치유하는 비밀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어릴 적

아픔이 그토록 불편하고 괴로웠음에도,

나는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어린이가 아프면 누군가가 돌봐주고,

누군가가 약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따뜻한 행위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 사랑은 할머니의 바늘에서,

엄마의 익모초에서 흘러나왔다.

그것은 거칠지 않은 사랑,

따스한 사랑,

무엇보다도 진실한 사랑이었다.



어릴 적

일찍이

쓴 맛을 본

나이기에


웬만한

쓴맛은


단맛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는 시계를 왜 삶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