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장 엘비스는 '상'자만 남기고, 그렇게 가셨다

피로회복과 안전사고




피로회복제!


이것을 마시면

피로한 상태로

다시 되돌아가는구나


안전 사고!


안전을 기하면

사고가

나겠구나?




" 슨상님

보소!

내 미치겠수다.


이 두 글귀를 볼 때마다

몬 말인지 당최 모르갔소!


내가 무식한 겐지,

아니면
5천만이 무식한 겐지!
도대체 모르갔수다""

이는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병원장의 볼멘 푸념이다.

가끔
나는 구두를 닦기 위해 이곳 대학 병원에 들른다.

이곳은
구두 대학 병원이다.
원장은
70대 후반임에도

정정하다.


힘씀이

전통사극에 마당쇠 *이대근이다.


항상

빛바랜 베레모를 쓰고 있어

머리스타일은 알 수가 없다.


다만
모자 밑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보고

반백임을 직감할 뿐이다.

추측에

민머리일지도!


허나
구레나룻은 가히 장관이다.
그야말로

엘비스프레슬리이다.
나는 그를 '엘비스 원장'이라 부른다.

그는

16살 때에

무작정 상경하여

종로 3가

단성사 뒷골목,


피맛골 입구에서
구두닦기 밑에서 *찍새를 했다.

그 후

기술을 배워

이곳

일산 구시장 통해서 병원을 차린 것이다.


뜻하지 않게
신도시가 들어서

그때부터 이 자리에
구두대학병원을 세워

구두진료를 시작했다고 하니
30년이 된 것이다.


그러니
그의 원장 경력은 근 60 년 가까이 된 것이다.


진료를 할 때의 그의

표정은 자못 진지하다.


그만의

나름대로의 구두 닦는 공정 과정이 있다.
꼼꼼해서 좋기는 한데
일정이 바쁜 사람에겐 답답할 수 있다.


그를 보면 *치옹선생의 '방망이 깎던 노인',

그 노인의 얼굴이 겹친다.


누가 봐도

이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인이다.

그는

손님이 뜸할 때면
돋보기 너머로 문고판 책을 읽는다.


서너 권이 선반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중에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다.


그것은

70년대 출판계를 강타한 '삼중당' 문고판의 책이다.
당시는

이 책을 구하려면 종로서적 등을 가야 했는데
새 책은 300 원이었기에
고등학생인 우리에겐 적잖이
부담이 되었다.


해서
청계천 헌 책방을 전전했다.
그곳에 가면

중고 서적 3권을 백 원에 살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그는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을
읽고 있다고 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주인공이
율법을 어기면서
시각장애인 소녀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것'

에 분개한다.

바로

이 아카데믹한 원장님이
내게
'피로회복'과 '안전사고'를 질문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분필을 잡고

국어를 강의하고 있는 나는
적잖이 당혹했다.

'이 드링크제를 마시면
피로한 상태로 다시 돌아갑니다.'

'안전하면 사고가 납니다'





그제

병원에 들렀다.


이토록
신문쪽지 모퉁이에 나온 광고 문구 하나에도
성실히 눈길을 준
원장님 병원에 문이 닫혔다.


왕자물쇠로 굳게 닫힌 대학병원 셔터문에는
큰 먹글씨로
'상중'
이라고 쓰인 종이만이 나를 맞이했다.

어제도
가봤지만
비바람에 뒷 글자인 '중'자는 찢겨나가고
'상'자만 나풀거렸다.






* 치옹선생 ㅡ 수필가 윤오영 선생의 필명이다.

* 이대근 ㅡ 영화배우이다.

주로 힘쓰는 머슴 역할을 많이 했다.

* 찍새 ㅡ 닦을 구두를 모아서 구두닦이에게 구두를 가져다 주는 사람을 속되게 부르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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