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은 한평생 한 남자만을 사랑했다
백석 시인과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May 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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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은
한평생
한 남자만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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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인은
자야이다.
그가 평생을 못 잊어하며
사랑한 남자는
바로
시인 백석(白石 ; 1912∼1996)이다.
백석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본명은 백기행(白夔行)이지만 아호인 백석을 필명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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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반도의 아픈 역사 속에서 꽃핀 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
그 주인공은 서울의 대원각을 설립한 기생 자야(본명 김영한)와 북한의 시인 백석이다. 자야는 북한 함경남도 함흥의 기생이었으며, 한국전쟁을 피해 서울로 피난 와서 대원각을 설립하고 재력가로 성장했다.
그녀의 사랑은 백석에게만 향해 있었다.
백석은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문학에 대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시인이었다.
그는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에서 이름을 따 '자야'라는 애칭을 김영한에게 선사했다.
이들의 첫 만남은 1936년,
백석이 영어 교사로 재직하던 함흥 영생여고에서의 회식 자리였다.
백석은 자야를 보고 첫눈에 반해
영원히 그녀의 남자가 되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사랑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백석의 부모는 기생과의 동거를 용납할 수 없어 강제로
다른 여자와 결혼을 시켰다.
결혼 첫날밤,
백석은 자야의 곁으로 돌아갔고,
두 사람은 만주로 도망치려 했으나,
자야는 백석의 미래를 위해 이를 거절했다.
백석은 자야를 기다리며 만주로 떠났지만,
그들의 재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방 후 백석은
자야를 찾아 함흥으로 갔지만,
이미 그녀는 없었고,
6.25 전쟁으로 남과 북이 갈라지면서
둘은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백석은 북한에서 홀로 살다가
1996년에 세상을 떠났다.
자야는 그를 그리워하며 서울에서 대원각을 운영하다가,
1999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그 요정을
법정 스님에게 무조건 시주했다.
자야의 마지막 소원은
길상사에서 백석과 함께 들을 수 있는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그녀의 뼈 가루는
눈 많이 내리는 날 길상사에 뿌려졌다.
그녀의 마음속에
백석의 시 한 줄이 천억 원보다 소중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랑 이야기는
시간을 넘어서 계속되며,
길상사의 풍경風磬소리를 타고
아름다운 여운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다.
서사적인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서정시와 같아,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자야와 백석의 슬픈 애정 이야기는
남북을 가르는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도
그들만의 깊은 사랑으로 빛났다.
두 사람은
그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도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지만,
정치적 상황은 그들의 사랑을 어렵게 만들었다.
자야는
서울에서 대원각을 경영하며
백석을 그리워하다가,
그녀의 전 재산을 불교 사찰에 기증하여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했다.
이는 그녀가 백석을 향한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자야가 시주한 길상사는
서울 성북동에 위치해 있으며,
그곳은 자야와 백석의 사랑을 기리는 곳으로 변모했다.
자야는 생전에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기증하며
그녀의 마지막 바람을 전했고,
그 바람은 길상사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와 함께 이루어졌다.
법정 스님은 자야의 유품을
품위 있게 관리하며
그녀의 순수한 마음과 사랑을
모든 이에게 전했다.
자야의 사랑은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선
정신적인 유대감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백석을 잃고 난 후에도
그의 시를 통해
그와 계속 대화를 나누었고,
그의 문학적 유산을 통해
그와의 연결고리를 유지했다.
자야의 생애와 행적은
한국 문학과 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러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며,
사랑과 헌신,
그리고 상실의 아픔을 통해
인간의 깊은 감정을 탐색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길상사에서 열리는
각종 문화 행사와 음악회는 자야와 백석의 이야기를 기념하며,
두 사람의 사랑이 시간을 초월하여
계속 살아 숨 쉬게 한다.
자야와 백석의 사랑 이야기는
성북동의 풍경소리를 타고,
우리 모두의 마음에 아름다운 여운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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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서 홀로 된 백석은
늘 자야를 그리워하며
그 유명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란 시를 짓는다.
그러나 백석이 잠시 동안이라 믿었던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만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그의 시적 세계에서 간절한 사랑과 고독,
그리고
자연에 대한 동경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백석이
자신과 나타샤,
그리고
흰 당나귀가 함께 푹푹 눈이 내리는 밤에
산골로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다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흐르는 깊은 산골로 가서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면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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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백석은
사랑과 자연, 그리고 도피라는 주제를
섬세하게 엮어내고 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나타샤는
이상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흰 당나귀는 순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상징한다.
시인은 눈이 내리는 밤을 배경으로 삼아,
현실 세계의 고단함과 번잡함에서 벗어나
이상적인 곳으로의 도피를
꿈꾸고 있다.
백석은
눈이 내리는 것을 사랑의 감정과 연결 짓고,
이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시에서 느껴지는 쓸쓸함과 고독은
시인이 느끼는 내면의 갈등과 외로움을 드러내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긴장을 표현한다.
또한,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은
세속적인 삶을 초월하려는 시인의 욕구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니라,
더 깊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백석의 문학적 상상력과
깊은 내적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시인 자신의 삶과 겹쳐지는 부분도 많다.
백석 자신도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개인적인 고립과 사회로부터의 단절을 경험했으며,
이러한 개인적 감정은
그의 시에서 자주 드러난다.
시에 등장하는 나타샤는
비록 구체적인 인물이 아닐지라도,
사랑과 행복을 향한
그리움의 표상으로서
시인의 내면적 동경을 상징한다.
흰 당나귀는
이러한 여정에서의 동반자로서,
순수와 평화의 의미를 더하며,
이상향으로의 여행이 단순한 도피가 아닌,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의지를
반영한다.
시 전반에 걸쳐
풍부한 자연 이미지와 함께 내리는 눈은
변화와 정화의 상징으로 작용하며,
이는 시인이 꿈꾸는 새로운 시작과 더 나은 세계로의 전환을 암시한다.
백석은 이 시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와 이미지로
고단한 현실을 초월하려는 시도를 보여주며,
이는 독자에게도
일종의 위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결국,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백석의 문학적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며,
그의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사랑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깊은 탐색을
제공한다.
이 시는 시인의 삶과 사상,
그리고 그의 문학적 표현력이 어우러진
백석 시의 정수를 보여주는 예로
평가받을 만하다.
이러한 요소들은
백석의 작품이 갖는 유니버설한
매력의 일부이며,
독자들에게 그의 시 속에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시적 언어를 통해
구현된 이상적인 사랑과 세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꿈은,
시인의 현실과의 갈등을 표현하는 동시에,
모든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의 표출이다.
백석의 이 시는
인간의 꿈과 도피,
그리고 이상을 향한 지속적인 탐구를
드러내며,
우리 모두에게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내면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욕구를
일깨워 준다.
그의 시는
현실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정신적 자유와 사랑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시적 명상을 선사한다.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