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세 최고령 청년 시인 이생진 선생
시인 이생진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May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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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세 최고령 청년 시인 이생진
청람 김왕식
이생진 시인, 한국 문단에서 그의 이름은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특히 섬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 그의 시들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1929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96세의 나이로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삶과 문학적 업적을 통해 우리는 그의 시 세계와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이생진 시인은 서산 농림학교를 졸업한 후 군 복무를 마치고, 국제대학 영문학과와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언어학과를 다녔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교사로서 오랜 기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문학적 소양을 쌓아갔다. 그의 첫 시집은 1955년에 출간된 『산토끼』였다. 이후 다수의 시집과 시화집, 수필집 등을 출간하며, 그의 문학적 역량을 널리 알렸다.
이생진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가난한 시인을 살핀다.
가난한 시인
가난한 시인이 펴낸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는다
가난은 영광도 자존도 아니건만
흠모도 희망도 아니건만
가난을 시인의 훈장처럼 달아주고
참아가라고 달랜다
저희는 가난에 총질하면서도
가난해야 시를 쓰는 것처럼
슬픈 방법으로 위로한다
아무 소리 않고 참는 입에선
시만 나온다
가난을 이야기할 사이 없이
시간이 아까워서 시만 읽는다
가난한 시인이 쓴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을 때
서로 형제처럼 동정이 가서
눈물이 시 되어 읽는다
이 시는 가난한 시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 시를 통해 그는 가난이 시인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지, 그리고 그 가난 속에서도 창작의 의지를 잃지 않는 시인의 모습을 그렸다. "가난한 시인이 펴낸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는다"는 구절은 가난한 시인들 간의 연대감을 강조한다. 서로의 작품을 통해 위로받고 공감하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또한, 이생진 시인은 가난을 영광이나 자존심의 상징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가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이 흠모나 희망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가난 속에서도 시를 쓰는 것은 단순한 창작을 넘어, 삶의 의지와 예술의 힘을 상징하는 행위였다.
이생진 시인은 "가난을 시인의 훈장처럼 달아주고"라는 구절을 통해, 가난이 시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비판했다. 가난한 시인들에게 가난을 이겨내고 창작을 이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의 시선을 풍자했다. 그는 또한 "가난해야 시를 쓰는 것처럼" 여겨지는 인식을 꼬집으며, 가난이 있어야만 진정한 시가 나오는 것처럼 생각하는 태도를 비판했다.
그의 시 속에서 가난한 시인들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연대감을 형성하며 살아간다. "서로 형제처럼 동정이 가서 눈물이 시 되어 읽는다"는 구절은 가난한 시인들 간의 동정심과 형제애를 나타낸다. 이는 독자들에게 가난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잃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며 연대하는 시인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생진 시인은 다양한 시집과 시화집을 통해 자신의 문학적 세계를 널리 알렸다. 특히 그의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다. 이 책은 그가 제주도의 성산포를 배경으로 쓴 시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의 섬과 바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제주도 명예도민이 되기도 했다.
그의 문학적 업적은 다수의 문학상을 통해 인정받았다. 196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1996년 윤동주 문학상, 2002년 상화 시인상, 2008년 도봉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그의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러한 수상 경력은 그의 문학적 역량과 업적을 더욱 빛나게 한다.
이생진 시인은 또한 시낭송 활동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그의 시를 직접 들려주었다. 성산포, 마라도, 인사동 등 다양한 장소에서 시낭송회를 열며, 그의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과 소통했다. 이러한 활동은 그가 단순히 글을 쓰는 시인이 아니라, 직접 독자들과 소통하며 시의 감동을 전하는 예술가임을 보여준다.
이생진 시인은 그의 시를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가난한 현실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잃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며 연대하는 시인의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다. 이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며, 가난 속에서도 창작의 의지를 잃지 않는 시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생진 시인은 그의 시를 통해 우리에게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난한 현실을 낭만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독자에게 깊은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그의 시가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이생진 시인의 삶과 문학적 업적은 그의 시와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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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진 시인은
올해 96세이시다.
음력 1929년 2월 21일(호적상 10월 1일)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1949년 서산 농림학교(6년)를 졸업하였고 1951년부터 1954년까지 군복무를 하였다. 1965년부터 1969년까지 국제대학 영문학과 수학을 전공하였으며 1969년부터 1970년까지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언어학과를 다니다가 중퇴하였다. 1954년부터 1993년까지 중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였다.
시선집
1999: ≪시인(詩人)과 갈매기≫
2004: ≪저 별도 이 섬에 올 거다≫
시화집
1997: ≪숲 속의 사랑≫(시: 이생진/사진: 김영갑)
2002: ≪제주, 그리고 오름≫(시: 이생진/그림: 임현자)
수필집 및 편저
1962: ≪아름다운 천재(天才)들≫
1963: ≪나는 나의 길로 가련다≫
1997: ≪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
2000: ≪걸어 다니는 물고기≫
시집
1955: ≪산토끼≫
1956: ≪녹벽(綠壁)≫
1957: ≪동굴화(洞窟畵)≫
1958: ≪이발사(理髮師)≫
1963: ≪나의 부재(不在)≫
1972: ≪바다에 오는 이유(理由)≫
1975: ≪자기(自己)≫
1978: ≪그리운 바다 성산포(城山浦)≫
1984: ≪산(山)에 오는 이유(理由)≫
1987: ≪섬에 오는 이유≫
1987: ≪시인의 사랑≫
1988: ≪나를 버리고≫
1990: ≪내 울음은 노래가 아니다≫
1992: ≪섬마다 그리움이≫
1994: ≪불행한 데가 닮았다≫
1994: ≪서울 북한산≫
1995: ≪동백꽃 피거든 홍도로 오라≫
1995: ≪먼 섬에 가고 싶다≫
1997: ≪일요일에 아름다운 여자≫
1997: ≪하늘에 있는 섬≫
1998: ≪거문도≫
1999: ≪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
2000: ≪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
2001: ≪혼자 사는 어머니≫
2001: ≪개미와 베짱이≫(곤충시집: ‘내 울음은 노래가 아니다’ 증보판)
2003: ≪그 사람 내게로 오네≫
2004: ≪김삿갓, 시인아 바람아≫
2006: ≪인사동≫
2007: ≪독도로 가는 길≫
2008: ≪반 고흐, ‘너도 미쳐라’≫
2009: ≪서귀포 칠십리길≫
2010: ≪우이도로 가야지≫
2011: ≪실미도, 꿩 우는 소리≫
2018: ≪무연고≫
공동 시집
2003: ≪영혼까지 독도에 산골 하고≫
시화전
1971: 시화전
동인 활동
1971∼1985: ‘분수’ 동인(신협, 윤강로, 이봉신, 김준회, 신용대, 이생진) 활동
1986∼2006: ‘우이시’ 동인(임보, 채희문, 홍해리, 이생진) 활동
시낭송 활동
1995~2000: 성산포, 아끈다랑쉬오름, 마라도, 안면도, 실미도, 만재도, 우이도 등 섬에서 시낭송
2000~2011: 인사동에서 시 낭송
추천·수상
1969: ≪현대문학≫으로 등단
1996: 윤동주 문학상 수상
2001: ‘그리운 바다 성산포’와의 인연으로 제주도 명예도민이 됨
2002: 상화(尙火) 시인상 수상
2008: 도봉문학상 수상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