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권 시인의 '산문山門에 기대어'를 청람 평하다
시인 송수권,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May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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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山門에 기대어
시인 송수권
누이야
가을 산 그리매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苦惱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山茶花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 산 그리매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 산 그리매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ㅡ
청람 김왕식
송수권 시인의 「산문에 기대어」는 누이의 죽음을 감정의 절제로 노래한 작품이다. 이 시는 마치 향가 제망매가를 연상시키듯, 깊은 애도의 감정을 담고 있다.
첫 연에서 시인은 "누이야"라는 호칭으로 누이를 부르며 시작한다. 이는 독자에게 친근함과 동시에 애틋함을 전달한다. "가을 산 그리매*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라는 구절에서 가을 산의 그리움 속에 누이의 흔적을 찾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드러난다. 여기서 '그리매'는 '그림자'를 의미하며, 누이의 존재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묻어난다.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라는 표현은 시인의 슬픔을 억누르려는 노력을 나타내며, 그 끝에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는 장면은 긴 세월 동안의 슬픔과 그리움을 상징한다.
두 번째 연에서 시인은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라며 다시금 누이를 부른다. 여기서 '기러기'는 누이의 눈썹을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으로, 누이의 기억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라는 구절에서는 시인의 슬픔과 그리움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라는 표현은 생생한 기억이 마치 잎새 위의 물방울처럼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나타낸다.
마지막 연에서는 "누이야 아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하여 누이의 존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시인의 마음속에 비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 못물속에 비쳐 옴을"이라는 구절은 누이의 기억이 물 속에 비치듯, 시인의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 있음을 상징한다.
이 시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감정의 절제이다. 시인은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그 슬픔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 시는 이미지의 활용이 돋보인다. '가을 산', '강물', '물방울' 등의 자연 이미지를 통해 누이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독자에게 시인의 감정을 더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시에서 시인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죽음이 가져오는 슬픔과 그리움이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기억 속에서 누이를 살아가게 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시인은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누이를 기억하며, 그 기억을 통해 슬픔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는 독자에게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만, 이 시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부 독자들에게는 이미지의 활용이 지나치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이미지가 사용되면서 주제가 다소 분산될 위험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미지를 조금 더 간결하고 명확하게 사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송수권 시인의 「산문에 기대어」는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그 기억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감정의 절제와 이미지의 활용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며,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