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08. 2024
브런치스토리 박성진 시인, 그는 누구인가
시인 박성진, 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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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고갱 의자'
시인 박성진
고갱과 고흐
동료 예술가들이 폭력적인 싸움을 한다
고갱은 떠났고
빈 의자만 남았다
서로를 점령하였던 사이에서
빈 의자만 남겼다
의사소통도 끊어졌다
이제 빈 의자가 주인공이 되었다
고갱의 의자는 더 우울해 보인다
절친한 친구와의 상실과 부재,
붕괴되어 가는 고흐
주인공이 되어버린 의자만
부재의 슬픔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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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은 이러한 복잡한 감정과 상징을 단순하고 강렬한 글로 표현해 냈다.
그의 글은 고갱의 의자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한다.
그의 신선한 감각이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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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브런치스토리 작가
박성진 시인이 고흐의 '고갱의 의자'라는
그림을 보고
단 십수 초만에 써 내려간 글이다.
오래 숙고하면
누구나
쓸 수 있다.
박성진 시인은
또 다른 우주가 그의 머릿속에 있다.
누르면
순간 글들이 쏟아져 튀어나온다.
그의 글은 성글다.
익지 않은 날 것이다.
풋풋하고 신선하다.
그의 글은 순간적인 영감에서 비롯되며,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시는 고갱과 고흐의 복잡한 관계와
그로 인한 감정의 파고를 단순한 의자의 이미지로 표현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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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 아를. 그곳은 한때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두 명의 거장 예술가가 함께 작업을 하던 장소였다. 그들의 관계는 한편으로는 격렬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예술에 대한 열정을 공유했지만, 결국 그 열정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은 예술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으로 인해 끊임없는 갈등을 겪었다. 고흐는 자연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을 추구했지만, 고갱은 더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을 선호했다. 이러한 차이는 두 사람 사이의 긴장감을 고조시켰고, 결국 그들의 우정은 폭력적인 싸움으로 끝나게 되었다.
그날 밤, 고흐의 방에는 깊은 침묵이 감돌았다. 고갱은 떠나버렸고, 방 안에는 오직 빈 의자만이 남아 있었다. 그 의자는 고갱이 앉아 있던 자리였다. 그 의자는 이제 고갱의 부재를 상징하며, 둘 사이의 갈등과 상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고갱의 의자는 방 한구석에 홀로 놓여 있었다. 그 의자는 더 우울하고 쓸쓸해 보였다. 절친한 친구와의 다툼 후 남겨진 빈 공간은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의자는 두 사람의 관계가 붕괴되어 가는 과정을 목격한 유일한 증인처럼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흐는 더욱더 고립되어 갔다. 그는 고갱과의 우정을 상실한 후로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의 정신 상태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고, 그의 작품에도 그 불안과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그는 그 의자를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그 의자는 이제 그의 작품의 주인공이 되었다.
고흐는 고갱의 의자를 캔버스에 담아내면서, 그 의자에 자신의 슬픔과 상실감을 투영했다. 의자는 더 이상 단순한 가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 예술가의 복잡한 관계와 그로 인한 감정의 파고를 상징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고흐는 그 의자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려 했다.
의자는 고갱의 부재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고흐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담아내는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의자는 또한 예술가로서의 고흐의 고뇌와 고통을 상징했다. 그의 그림 속에서 그 의자는 고독과 슬픔, 그리고 상실의 감정을 노래하는 듯했다.
고흐의 그림 '고갱의 의자'는 그 의자에 담긴 의미를 통해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 의자는 이제 예술가들 간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상실과 재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의자는 두 사람의 복잡한 관계를 상기시키며, 동시에 예술가로서의 고흐의 고뇌와 성장을 상징한다.
이 글은 고흐와 고갱의 복잡한 관계와 그로 인한 감정의 파고를 통해 인간의 상실과 재생을 노래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