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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15. 2024

시인 이오장의 시 '우리들의 자화상'을 청람 평하다

시인 이오장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우리들의 자화상




                              시인  이오장




할아버지는 종이었다
단옷날 벌려놓는 막걸리 한 사발에
덩실덩실 한바탕 춤으로
지게질로 빠져버린 어깨뼈 추스르고
다시 논바닥을 기어 호미질하다가
풍년초 한 줌으로 고단을 날리는 종이었다

아버지는 종의 아들
부모 형제가 하던 그대로
죽음 마다하고 뼈를 갈다가도
잘한다 추임새에 흠뻑 녹아
곡괭이로 땅을 파 기둥을 박고
열다섯 발 깃발을 매다는 상머슴이었다

우리는 종으로 태어나 종으로 사는구나
첫차로 출근하여 막차 타고 돌아오다
의자에 기댄 꿈이 침을 흘려도
손수건 한 장 없이 옷깃으로 닦고
어둠에 찌들어 잠들어 꿈도 꾸지 못하는
달개비꽃의 자손이구나

우리는 아는 것이 없었구나
그냥 종으로 사는 것을 당연시했구나
투표장 나가라면 나가서 0번 찍고
세상이 바뀌는 줄 알았구나
백중날 길바닥에 차린 술판에 취하여
정치판 돌아가는 것을 모르고
다시 투표장에 나갔구나

우리는 영원한 종이다
우리가 뽑은 나으리들에게 박수치고
시장에 가서 고기 한 근 얻어 춤추다가
뼛골이 훤히 보여도 말 한마디 못하고
다시 같은 나으리를 뽑는
종을 할아버지로 둔 손자종이구나











                      청람 김왕식


시인 이오장의 시 "우리들의 자화상"은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한국 사회의 고단한 삶과 억압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현재의 우리 세대를 통해 그 삶의 연속성을 그리며, 각 세대의 특성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미당의 자화상을 연상케 한다.


첫째로, 할아버지의 세대는 "종"으로 표현된다. "단옷날 벌려놓는 막걸리 한 사발에 덩실덩실 한바탕 춤"이라는 표현은 고된 삶 속에서도 잠시의 즐거움을 찾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내 "지게질로 빠져버린 어깨뼈"라는 구절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잘 나타낸다. "논바닥을 기어 호미질하다가"와 "풍년초 한 줌으로 고단을 날리는" 모습은 그들의 삶이 농업에 종사하며, 작은 기쁨을 통해 고단함을 잊으려 했음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세대는 할아버지의 세대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부모 형제가 하던 그대로 죽음 마다하고 뼈를 갈다가도"라는 구절에서 이는 명확히 드러난다. 그들은 자신의 고된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잘한다 추임새에 흠뻑 녹아"라는 표현처럼 작은 칭찬에도 삶의 의지를 찾는다. "곡괭이로 땅을 파 기둥을 박고 열다섯 발 깃발을 매다는 상머슴"은 그들의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우리 세대는 앞선 세대의 연장선에 있다. "첫차로 출근하여 막차 타고 돌아오다 의자에 기댄 꿈이 침을 흘려도"라는 구절은 현대인의 일상을 그대로 묘사하며, "손수건 한 장 없이 옷깃으로 닦고"라는 표현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를 잘 나타낸다. "어둠에 찌들어 잠들어 꿈도 꾸지 못하는 달개비꽃의 자손"은 현대인의 삶이 꿈을 꾸기조차 어려운 현실임을 암시한다.

이 시는 우리의 삶을 종으로 묘사하며, 그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강조한다. "우리는 아는 것이 없었구나. 그냥 종으로 사는 것을 당연시했구나"라는 구절은 우리의 무지와 순응을 비판하고 있으며, "투표장 나가라면 나가서 0번 찍고 세상이 바뀌는 줄 알았구나"는 우리의 정치적 무관심을 꼬집는다. 이는 백중날의 술판에서 정치판을 모르는 우리 모습을 통해 더욱 부각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영원한 종이다"라는 구절은 절망적이다. "우리가 뽑은 나으리들에게 박수치고"와 "시장에 가서 고기 한 근 얻어 춤추다가"라는 표현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비루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뼛골이 훤히 보여도 말 한마디 못하고 다시 같은 나으리를 뽑는" 모습은 우리의 무력함과 반복되는 잘못된 선택을 나타낸다.

이 시는 생생한 묘사와 반복적인 구조를 통해 세대 간의 연속성과 그들의 고단함을 강조하고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우리 세대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반복적인 표현을 통해 강조하며, 이는 우리의 현실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또한 이 시는 우리의 삶이 고단하지만, 그것을 당연시하거나 순응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각 세대가 겪는 고단한 현실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변화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요컨대, 이오장의 시 "우리들의 자화상"은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고단한 삶과 억압을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하며, 그 안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오장 약력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역임

부천문인회 고문

한국 NGO신문 신춘문예 운영위원장

문학신문사 문학연수원, 국보문학, 가온문학 시 창작 강사


수상;

제5회 전영택문학상,

제36회 시문학상 등 수상


시집:

『왕릉』 『고라실의 안과 밖』 『천관녀의 달』 『99인의 자화상』 『은행꽃』 등 21권

평론집:

『언어의 광합성, 창의적 언어』,

시평집:

『시의 향기를 찾아서』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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