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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24. 2024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을 청람 평하다

기형도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질투는 나의 힘  



                                 시인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을
평하다.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은 인간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독특한 시각과 감정을 담고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책갈피는 힘없이 종이를 떨어뜨린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시간이 흐르며 기억이 흐릿해지고 잊히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독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시인이 느꼈던 감정과 기억들이 희미해질 것을 암시받는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마음속에 수많은 '공장'을 세웠다는 표현은

이 시의 압권이다.

이는  많은 생각과 감정, 기억들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졌음을 뜻한다. 이는 시인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감정을 쌓아왔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기록하고자 했던 어리석음을 자각하는 순간을 나타낸다.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구름 아래를 떠도는 개처럼, 시인은 방향 없이 방황하고 있다. 이는 삶 속에서 자신의 목적과 방향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시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시인은 가진 것이 탄식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는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와 실망을 나타낸다. 저녁거리에서 청춘을 세워두고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여기서 시인은 자신의 희망이 질투뿐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는 자신이 타인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삶을 비교해 왔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의 자존감이 낮았음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마지막 연에서는 자신의 생을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맸지만, 정작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이는 시인이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순간이다.

이 시의 표현상의 특징은 시적 화자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솔직함과 자신에 대한 냉철한 반성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기형도는 독자에게 인간 내면의 복잡성과 갈등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이를 통해 독자는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이 시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고백으로 끝맺는다. 이는 독자에게 다소 암울한 느낌을 줄 수 있다. 만약 시인이 마지막 연에서 스스로를 사랑하려는 노력을 암시하는 내용을 담았다면 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형도는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독자에게 진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시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며,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시인은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며, 이를 통해 독자 역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기형도의 시는 단순한 내면의 고백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 고독과 자아 성찰을 탐구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의 시는 현대인의 내면적 고뇌와 불안을 반영하며, 이를 통해 독자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요컨대,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은 인간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며, 독자에게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나열이 아닌,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진지한 작품으로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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