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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26. 2024

박순화 시인의 "장 담기"를 청람 평하다

문학펭론가 청람 김왕식








                     장 담기



                          시인 박순화


항아리 숨쉬기 좋은 날 좋은 시時에  
햇물 햇바람 햇별로 장을 담으며  행여나 부정 탈세라 금줄 엮어 달았다  

조왕신竈王神 화날세라 성주신 삐칠세라
잘 띄운 메주 갈라 천지신명께 고하나니  이 정성 살펴 거두어 속 깊게만 우려다오
  
우주의 생기 받고 자연의 섭리받아  
제 몸 삭혀 토해 내는 많아지는 장물에  골몰한 우리 어머니 베적삼이 비친다  

오천 년 역사의 조선장과 간장 맛은  천수를 다하면서 오장육부 건사할  
긴 세월 곰삭은 숨결 장꽃으로 피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순화 시인의 "장 담기"를
평하다




박순화 시인의 "장 담기"는 전통적인 장醬담그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옛 문화와 생활의 지혜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는 장 담그는 날의 풍경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여러 층위에서 섬세하게 드러내며, 자연과 인간,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장면을 그려낸다.

 "항아리 숨쉬기 좋은 날 좋은 시時에 / 햇물 햇바람 햇별로 장을 담으며 행여나 부정 탈세라 금줄 엮어 달았다"
첫 행에서는 장 담그는 날의 시기를 표현하고 있다. "항아리 숨쉬기 좋은 날 좋은 시"라는 표현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적절한 때를 의미하며, 이는 전통적인 농경사회의 시간 개념과 맞닿아 있다. 또한 햇물, 햇바람, 햇별은 자연의 세 요소를 상징하며, 이 세 요소가 장 담그기의 중요한 조건임을 시사한다. "금줄 엮어 달았다"는 부정을 막기 위한 주술적 행위로, 우리 조상들의 생활 속 깊이 배어있는 믿음과 의식을 나타낸다.

 "조왕신竈王神 화날세라 성주신 삐칠세라 / 잘 띄운 메주 갈라 천지신명께 고하나니 이 정성 살펴 거두어 속 깊게만 우려다오"
이 행에서는 장 담그기의 신성한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조왕신과 성주신은 각각 부엌을 지키는 신과 집을 지키는 신으로, 이들에게 정성을 다해 고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장 담그기가 단순한 식품 제조 과정이 아닌, 신에게 올리는 정성과 기도로 가득 찬 의례임을 의미한다. "잘 띄운 메주 갈라 천지신명께 고하나니"라는 구절은 특히 정성과 노력이 담긴 메주를 갈라 신께 바치는 행위를 통해 그 신성함을 강조한다.

 "우주의 생기 받고 자연의 섭리받아 / 제 몸 삭혀 토해 내는 많아지는 장물에 골몰한 우리 어머니 베적삼이 비친다"
세 번째 행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다. "우주의 생기"와 "자연의 섭리"는 장 담그기의 기본 조건이자 본질이다. 이러한 자연의 원리를 받아들여 장을 담그는 행위는 곧 자연과의 소통을 의미한다. "제 몸 삭혀 토해 내는 많아지는 장물"은 발효 과정을 통해 장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묘사하며, 이를 통해 어머니의 정성과 노고를 암시한다. 어머니의 베적삼이 비치는 모습은 시각적 이미지로, 어머니의 헌신적인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오천 년 역사의 조선장과 간장 맛은 천수를 다하면서 오장육부 건사할 / 긴 세월 곰삭은 숨결 장꽃으로 피었다"
마지막 행에서는 장 담그기의 역사와 그 가치가 강조되고 있다. "오천 년 역사의 조선장과 간장 맛"은 우리 전통 음식 문화의 오랜 역사를 나타내며, 이는 곧 우리의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천수를 다하면서 오장육부 건사할"이라는 표현은 장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과 직결된 중요한 요소임을 의미한다. "긴 세월 곰삭은 숨결"은 오랜 시간 동안 발효된 장의 깊은 맛과 향을 상징하며, "장꽃으로 피었다"는 이 모든 과정이 결실을 맺는 아름다운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박순화 시인의 "장 담기"는 전통과 자연, 인간의 조화를 시적으로 잘 형상화하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장 담그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와 생활의 지혜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잊혀가는 소중한 가치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시어 하나하나에 담긴 섬세한 표현과 상징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박순화 시인의 "장 담기"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자연의 섭리를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전통적인 장 담그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옛 생활과 지혜를 되새기게 하는 이 시는, 현대인들에게도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수작秀作이다. 다소 전통적 표현에 치중한 감이 있지만, 이는 시의 본질을 해치지 않으며 오히려 그 깊이를 더해준다.

박순화 시인이 앞으로도 이러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잘 이뤄내어 더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기를 기대한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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