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평하다
김춘수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l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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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시인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數千) 수만(數萬)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네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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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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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세계를 그려낸 작품이다.
샤갈의 그림처럼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담고 있으며,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인간의 내면과 자연의 조화를 표현하고자 했다.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는 시작부터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샤갈의 마을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에 3월, 즉 봄에 눈이 온다는 설정은 일반적인 자연현상을 뒤엎는 것이다. 이는 독자에게 낯선 이미지와 신비로움을 전달하며, 샤갈의 초현실적인 화풍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눈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닌 상징으로 작용한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는 시적 화자가 기다리는 봄을 암시한다. '관자놀이'라는 신체 부위의 구체적인 언급은 긴장과 기대, 혹은 생명의 맥박을 나타낸다. 봄을 기다리는 남자의 모습은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내적 변화를 동시에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새로 돋는 정맥(靜脈)이"는 생명력과 부활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과정에서 자연이 다시 생명력을 얻는 모습을, '새로 돋는 정맥'으로 표현한 것은 매우 시적이다. 이는 생명의 순환과 자연의 리듬을 아름답게 묘사한 부분이다.
"바르르 떤다"는 기다림과 기대감, 혹은 긴장의 순간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여기서 '바르르'라는 의성어는 시각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청각적인 이미지도 함께 전달하며, 독자에게 생생한 경험을 제공한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는 다시 한번 긴장과 기다림을 강조한다. 반복적인 표현을 통해 긴장감이 고조되며, 이는 다음 행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새로 돋는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는 생명력의 상징을 부드럽게 묘사하고 있다. '어루만지며'라는 표현은 따뜻함과 애정을 담고 있으며, 이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상징한다.
"눈은 수천(數千) 수만(數萬)의 날개를 달고"는 눈을 새의 날개에 비유함으로써 더욱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든다. 수천, 수만이라는 과장된 표현은 눈의 많음과 동시에 그 장관을 강조한다.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는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그려낸다. 샤갈의 마을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에 눈이 내려오는 장면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묘사된다.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는 눈이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이는 자연이 인간의 생활공간을 덮으며, 자연과 인간의 일체감을 나타낸다.
"삼월(三月)에 눈이 오면"은 시의 중심적인 이미지인 삼월의 눈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봄에 눈이 오는 비현실적인 상황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동시에 시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은 겨울 열매의 작은 크기를 강조한다. '쥐똥만한'이라는 표현은 친근하면서도 구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겨울의 흔적을 나타낸다.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는 겨울 열매가 다시 색을 되찾는 과정을 묘사한다. 올리브빛은 생명과 평화의 상징으로, 겨울이 끝나고 다시 생명력이 돌아오는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밤에 아낙네들은"은 마을의 일상적인 장면을 담고 있다.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아낙네들의 모습은 따뜻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은 아낙네들이 지피는 불이 그 해의 가장 아름다운 불이라는 표현으로, 일상의 작은 순간을 특별하게 만든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모습을 상징하며, 따뜻한 감성을 전달한다.
마지막 행 "아궁이에 지핀다"는 시의 끝을 따뜻하게 마무리한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행위는 생명과 온기를 상징하며, 시 전체의 분위기를 아늑하게 마무리짓는다.
이 시는 김춘수의 섬세한 표현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통해 독자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다만, 반복되는 이미지와 표현이 다소 과잉될 수 있어, 간결함을 조금 더 살렸다면 더욱 깊이 있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요컨대,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김춘수의 독특한 상상력과 섬세한 표현이 돋보이는 시이다. 비현실적인 이미지와 현실적인 감각을 조화롭게 엮어내어 독자에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따뜻하게 그려낸 이 시는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며, 김춘수 시인의 문학적 역량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