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영 시인의 시 '춘란春蘭'을 청람 평하다
정순영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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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란春蘭
시인 정순영
나는 고고한 선비가 아니외다
소나무 그늘에서
이슬을 먹고사는
청초한 풀이로소이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비취는 하늘빛으로
세상 쏘인 마음을 씻으며
바위틈 풀숲에서 안빈安貧하게 사는 서민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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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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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영 시인의 시 '춘란春蘭'을 읽는 순간,
嘉藍 李秉岐 선생을 떠올렸다.
그렇다.
두 시인은 분명 난초와 닮았다.
시인의 삶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된다.
정순영 시인은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자연과 인간, 특히 서민의 삶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시를 쓴다. 이는 그의 시에서 발견되는 고고孤高한 자연과 소박한 서민적 가치에 대한 묘사에서 드러난다. 그는 서민의 삶 속에서도 청빈淸貧하게 살아가는 선비의 정신을 중요시했으며, 그 정신을 자연의 이미지와 연결하여 표현하는 시적 기법을 자주 사용했다. 특히 '춘란'에서는 자신의 삶을 풀어내는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담아내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춘란'은 단순히 꽃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철학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나는 고고한 선비가 아니외다"
첫 번째 행에서 시인은 자신을 '고고한 선비'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이 구절은 겸양의 미덕을 담고 있으며, 시인은 자신을 신분적 특권이나 높은 도덕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는 고고함과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자아를 강조하는 태도다. 또한 이 구절은 독자에게 시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함으로써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게 한다. 고결高潔함을 넘어선 진정한 겸양謙讓이 여기서 드러난다.
"소나무 그늘에서"
두 번째 행은 장소적 배경을 제시한다. 소나무는 오래전부터 한국 문학에서 고결함과 인내를 상징하는 나무로 묘사되어 왔다. 여기서 소나무 그늘은 보호와 안식처로 해석될 수 있으며, 시인은 그 그늘에서 평온한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 또한 소나무의 그늘은 정신적 피난처로서 시인이 세상의 소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내포하고 있다. 고결함을 상징하는 소나무는 시인의 삶의 가치와 연결되며, 그 속에서 이뤄지는 시적 자아의 사유와 성찰이 담긴다.
"이슬을 먹고사는"
이 구절은 매우 단순하지만, 그 안에 깊은 상징성이 담겨 있다. '이슬을 먹는다'는 표현은 자연에서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하며 사는 삶을 뜻한다. 이는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충만을 추구하는 태도를 드러내며, 시인이 말하는 '안빈'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이슬은 생명의 근원적 요소로서 시인의 삶의 에너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시인은 이슬을 통해 자연의 순수함과 고요함을 자신의 삶에 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청초한 풀이로소이다"
여기서 시인은 자신을 '청초한 풀'로 비유하고 있다. 청초함은 단순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의미하는데, 이는 고결함을 추구하는 선비의 모습과는 다르다. 시인은 굳이 고결한 자아를 추구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소박한 존재로서 살아가고자 한다. 이 구절에서 풀이 가진 생명력과 유연함은 시인의 존재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적 이미지다. 또한 풀은 땅과 가깝게 자라며, 이는 시인이 서민적 삶을 지향하는 점과도 연관된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비취는 하늘빛으로"
이 부분에서 시적 자아는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빛을 바라본다. 하늘빛은 시인의 정신적 지향점을 상징하며, 세속을 초월하는 이상적인 세계로 연결될 수 있다. 또한 하늘빛은 자연과의 조화, 그리고 정신적 맑음을 나타낸다. 시인은 이 하늘빛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고,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나 고민을 씻어낸다. 이는 자연과의 깊은 교감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으로, 시인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세상 쏘인 마음을 씻으며"
시인은 자연 속에서 세상의 고통과 스트레스,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상처를 씻어내고자 한다.
'쏘인 마음'이라는 표현은 그가 세상을 살며 겪은 고통과 고난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고난은 자연 속에서 정화될 수 있으며, 시인은 이를 통해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시인은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정신적 공간에서도 평화를 추구하며, 이를 통해 고통을 극복하고자 한다.
"바위틈 풀숲에서 안빈安貧하게 사는 서민이로소이다"
마지막 행에서 시인은 자신을 '서민'으로 규정하며, '안빈'이라는 단어를 통해 물질적 가난 속에서도 정신적 풍요를 추구하는 삶의 자세를 드러낸다. 이 구절은 시인의 삶의 철학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는 서민적 삶 속에서 평화를 찾고자 한다. 바위틈 풀숲에서 살아가는 서민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며, 세속적 욕망을 내려놓고 청빈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상징한다.
이로써 시인은 물질적 가치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자신의 철학을 명확히 드러낸다.
정순영 시인의 '춘란'은 자연과 인간, 특히 서민의 삶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을 겸손한 서민으로 규정하며, 소박하고 청초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했다. 이 시는 자연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정화하고, 물질적 풍요가 아닌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강조한다. 또한 자연 속에서 고난을 극복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이상을 제시하며,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전달한다.
시인은 '춘란'이라는 소박한 이미지를 통해 겸손하고 청빈한 삶의 미덕을 아름답게 노래했으며,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자연 속에서의 평화를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