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호 시인의 시 '산길 둘레길'을 청람 평하다
백영호 시인과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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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둘레길
시인 백영호
하루 시작 햇살이
풀잎 하나하나에
일일이 입맞춤하는
새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햇살 안아 영롱하며
윤슬처럼 반짝반짝
다채롬으로 빛남이라
긴 초록풀잎 위에서
밤을 새운 여치는
새 햇살에 날개 말리며
비상飛翔을 궁리하고
뙤약볕 팔월 내내
키 높이 키운 구절초
지난밤 진통 끝에 순산한
젖꼭지 꽃망울을
실잠자리 쉼터로 내어 놓고
그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찰나刹那의 바람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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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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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호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삶 속에서 발견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시 속에 담아내는 데 탁월한 시적 감각을 지닌 작가이다. 그의 시는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예리한 관찰을 바탕으로 하여, 독자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감동을 안겨준다.
특히, 자연과 생명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나며, 이를 통해 인생의 다양한 단면을 성찰하는 특유의 시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그의 시가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내면과 연결되어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다.
백영호 시인의 삶은 늘 자연 속에서 소박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는 자연을 경외하고, 그 속에서 삶의 진리를 찾으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으며, 이러한 태도가 그의 시 곳곳에서 드러난다.
"하루 시작 햇살이 / 풀잎 하나하나에 / 일일이 입맞춤하는 / 새 아침"
첫 연에서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햇살이 풀잎마다 닿는 순간을 묘사한다. 여기서 '입맞춤'이라는 표현은 햇살과 자연 사이의 친밀한 교감을 상징한다. 이 이미지는 마치 자연이 인간과 다름없는 감정을 지닌 존재처럼 느껴지게 하며, 아침의 새로움을 강조한다.
풀잎 하나하나에 햇살이 일일이 닿는 모습은 시인이 자연 속에서 발견하는 세심한 관찰과 감각을 드러낸다. 아침의 상쾌함과 새로움을 묘사하면서, 이른 시간의 고요함과 정적 속에 담긴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이는 자연과의 일체감을 나타내는 동시에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 햇살 안아 영롱하며 / 윤슬처럼 반짝반짝 / 다채롬으로 빛남이라"
두 번째 연은 풀잎에 맺힌 이슬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장면을 그린다. '윤슬'이라는 표현은 물결에 반사된 빛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슬방울이 단순히 반짝이는 것을 넘어 다채로운 색으로 빛나는 모습을 상징한다.
이 이미지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되며, 이슬과 햇살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찰나의 경이로움이 강조된다.
이 장면은 시인이 자연에서 발견한 소소한 아름다움이 어떻게 큰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그 순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고 있다.
자연의 미묘한 변화 속에서 인간이 감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긴 초록풀잎 위에서 / 밤을 새운 여치는 / 새 햇살에 날개 말리며 / 비상飛翔을 궁리하고"
세 번째 연에서는 여치의 모습을 통해 자연 속의 생명체가 어떻게 하루를 준비하는지를 보여준다. 여치가 밤새 초록풀잎 위에서 지낸 후, 햇살을 받아 날개를 말리는 장면은 생명이 다시 시작되는 과정을 상징한다.
여기서 '비상을 궁리하고'라는 표현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여치의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는 인간의 삶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여치의 비상은 자연 속에서의 작은 생명체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생명의 본능과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뙤약볕 팔월 내내 / 키 높이 키운 구절초 / 지난밤 진통 끝에 순산한 / 젖꼭지 꽃망울을 / 실잠자리 쉼터로 내어 놓고 / 그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 찰나刹那의 바람이 지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구절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뙤약볕 팔월 내내 키 높이 키운 구절초'는 인내와 성장을 상징하며, 이는 인간이 겪는 고난과 인내의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꽃망울을 '젖꼭지'로 비유한 것은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며, 자연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강조한다. 이 장면에서 구절초는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실잠자리가 머물 수 있는 쉼터를 제공하는데, 이는 자연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찰나의 바람'이 지나가는 순간은 일시적이지만, 그 순간에도 자연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자연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을 상기시켜 준다.
백영호 시인의 「산길 둘레길」은 자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순간들, 그 속에 담긴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시인은 풀잎 하나, 이슬방울 하나, 여치와 구절초 같은 작은 존재들 속에서 삶의 진리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시적으로 풀어낸다.
시 속에서 묘사된 자연은 단순히 아름다운 배경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공간으로 제시된다.
시의 전체적인 흐름은 아침 햇살로 시작하여 구절초의 꽃망울이 열리는 과정으로 이어지며,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자연의 섬세함과 생명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백영호 시인은 자연 속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며, 그 속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 그의 시는 독자에게 자연을 경외하고, 그 속에서 소중한 삶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