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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

청람 김왕식










검정 고무신





청람





새 신발을 손에 쥐고
발보다 큰 꿈을 꾸던 날들,

맨발로 걷다 보니
길 위에 작은 흙먼지마저
반짝이는 새벽 별이 되던 시절.

검정 고무신,
친구들 것과 헷갈려 잃어버릴까
신발 속 깊이 새긴 비밀의 표시,
그마저도 사라질까
발끝이 닳도록 걸었던 마음들.

발뒤꿈치가 까지고
손가락 하나 남는 헐렁함에도
운동화보다 편했던 까닭은
젖어도 털어내면 그만인 마음 때문일까.

물가에서 송사리를 품어
고무신 가득 찬 생명을 느끼던 손끝,
센 물살에 밀려 신발이 흘러가도
덜 아쉬웠던 건
이미 낡아 익숙한 것들과
이별의 연습을 하며 자란 탓이겠지.

엿장수 아저씨에게
신발 한 짝 바꿔 먹던 추억,
발보다 신발이 더 귀했던 날들.

모든 것이 흔해져 버린
이 시대의 아이들은
결코 모를 이야기.
우리의 발끝에 새겨진
작고도 소중한 기억의 흔적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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