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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일 시인의 '무더위'를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무더위



시인 주광일





2024년 백로 날
여름이 떠났다고 했다

풀잎에 맺힌
이슬을 남기고

그러나 우면산 둘레길의
나뭇잎들은 무성하였다

여름이 물러간
아무런 기미도 없었다

하늘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아야
나뭇잎들 사이로

하늘이 조금
보일 뿐이었다

숲 속엔 아직
무더위가 남아 있었다

아 답답한 세월이
계속되고 있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의 시 "무더위"는 그의 삶과 철학을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는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긴밀하게 연결하며, 일상의 경험을 시적 감각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을 지닌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계절의 흐름, 자연의 변화,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정서가 깃들어 있다. "무더위"는 이러한 그의 문학적 특성과 가치관을 잘 드러내며, 여름이 떠나지 않은 숲 속의 무더위를 통해 끈질긴 고통과 기다림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 시는 자연의 표면적 변화와 그 이면에 남아 있는 감각적 잔재를 대비시켜, 독자로 깊은 사색과 공감을 유도한다.

첫 번째 행인 “2024년 백로 날 / 여름이 떠났다고 했다”는 시의 배경이 되는 시간적 공간을 설정하며 시작한다. ‘백로’는 가을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일반적으로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는 때를 의미한다.
화자는 "여름이 떠났다고 했다"라는 간접적 진술을 사용하여, 실제로는 여름이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이는 자연의 계절적 변화와 인간의 심리적 감각 사이의 괴리를 나타내며,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강조한다.

이어지는 “풀잎에 맺힌 / 이슬을 남기고”라는 구절은 여름의 끝자락에 나타나는 이슬의 이미지를 통해 변화의 흔적을 묘사한다.
이슬은 여름의 한 자락이자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자연의 신호다. 이슬이 남아 있다는 표현은 여름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시사하며, 변화의 과정 속에 남아 있는 여운과 불안감을 표현한다.

"그러나 우면산 둘레길의 / 나뭇잎들은 무성하였다"는 구절에서는 우면산이라는 구체적인 지명을 통해 시적 공간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여름이 끝났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나뭇잎이 무성하게 자라난 상태로 여름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계절의 시간적 변화와 물리적 상태의 불일치를 드러내며, 독자에게 자연의 이면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여름이 물러간 / 아무런 기미도 없었다"라는 구절은 앞선 묘사를 강화하며, 여름이 물러갔다는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음을 명확히 한다. 이는 시적 화자가 느끼는 답답함과 무력감을 극대화시키며, 여름의 고통스러운 잔재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하늘도 거의 / 보이지 않았다"와 "자세히 보아야 / 나뭇잎들 사이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려는 시도의 실패를 나타낸다. 이는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서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고뇌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나뭇잎 사이로 드러나는 하늘은 희미한 희망이나 자유의 상징으로 볼 수 있지만,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자세히 보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희망과 현실의 장벽을 암시하며, 시인의 심리적 고통과 답답함을 부각한다.

“하늘이 조금 / 보일 뿐이었다”는 부분은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극히 적은 희망의 조각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적은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반영하며, 시인이 그려내는 무거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숲 속엔 아직 / 무더위가 남아 있었다”라는 구절에서는 무더위의 잔재가 남아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는 단순히 계절적 더위를 넘어서, 인간이 느끼는 삶의 무거운 무게와 고통의 지속성을 상징한다. ‘숲 속’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심리적, 정서적 깊이를 더하며,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투영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아 답답한 세월이 / 계속되고 있었다”는 결론은 시인의 감정적 토로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답답한 삶의 시간과 고통을 표현한다. 이는 시인이 겪는 현실의 무게를 반영하며, 독자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고통의 연속성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나 환경적 요인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고뇌와 연결된다.

주광일 시인의 "무더위"는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교차시키며, 독자로 깊은 성찰을 유도하는 작품이다.
시인은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이미지들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희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 속에 깊은 철학적 의미를 담아낸다.
그의 시는 단순한 자연의 묘사를 넘어, 우리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시적 노력의 산물이다. 시인은 이를 통해 삶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끈질긴 의지를 드러내며, 독자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이 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감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고유한 주광일 시인의 문체와 철학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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