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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은 시인의 '억새'를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억새






시인 박덕은






가끔은 억새처럼
당신의 손길 잡고 싶다

밤이 긴 추억의 터미널에서
막차 탄 사람을 떠나보내며
창문 밖으로 내민 아쉬움 잡고 싶다

머나먼 강가를 함께 걸으며
그대의 향기가 손끝에서 녹아
노을로 번지는 걸 다시 느끼고 싶다

스마트폰이 삼켜버린 관계 속에는
떨리는 손 내미는 이가
그 어디에도 없다

산을 내려오다 뒤돌아보니
며칠 뒤면 떠난다는 가을에게
조금만 더 머물다 가라며
눈시울 붉게 손잡고 있는
억새가 서 있다

가끔은 억새처럼
당신의 손길 잡고 싶다

가장 순결히
가을로 물들어가는
당신의 손길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덕은 시인은 대학교수로 존경받는 스승이자 학자이며 중견 작가로, 그의 시는 깊은 철학적 사유와 인간의 감성을 동시에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얻은 경험과 학문적 성찰을 바탕으로 시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특히 이번 시 ‘억새’에서는 억새라는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관계와 인간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고 있다.
억새의 이미지는 인간의 섬세한 감정과 관계의 미묘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시인은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고립과 소통의 부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첫 행 "가끔은 억새처럼 / 당신의 손길 잡고 싶다"는 억새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통해 시작한다.
억새는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식물이다. 이처럼 시인은 억새의 이미지를 빌려, 흔들리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당신의 손길’을 잡고 싶다는 말은 관계의 회복이나 소통의 갈망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이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본능적인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밤이 긴 추억의 터미널에서 / 막차 탄 사람을 떠나보내며 / 창문 밖으로 내민 아쉬움 잡고 싶다"에서는 터미널과 막차라는 공간적 이미지가 등장한다. 터미널은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장소로, 시인은 이 공간을 인간의 삶과 관계에 비유하고 있다. 막차를 타고 떠나가는 사람을 보내는 장면은 이별의 아쉬움과 미련을 상징하며, 이 과정에서 남아 있는 자의 감정은 더욱 깊어진다. "창문 밖으로 내민 아쉬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억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손을 내밀어 그 아쉬움을 잡고 싶다는 표현은 인간의 정서적 갈망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머나먼 강가를 함께 걸으며 / 그대의 향기가 손끝에서 녹아 / 노을로 번지는 걸 다시 느끼고 싶다"는 강가와 노을이라는 시각적 이미지가 중심이 된다. 강가는 시간의 흐름과 인생의 여정을 상징하고, 노을은 그 여정의 끝자락에서 느끼는 감정의 절정을 의미한다.
‘그대의 향기’가 손끝에서 녹아 노을로 번진다는 표현은 그리움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짙어지는 과정을 시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는 과거의 아름다웠던 기억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애틋해지는 인간의 심리를 반영한다.

"스마트폰이 삼켜버린 관계 속에는 / 떨리는 손 내미는 이가 / 그 어디에도 없다"는
현대 사회의 단절과 소외를 비판적으로 묘사한다. 스마트폰이라는 매체는 현대인의 소통 수단이지만, 오히려 사람 간의 진정한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그려진다.
이 구절은 빠른 디지털 시대에 진정한 만남과 소통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떨리는 손 내미는 이가 그 어디에도 없다’는 표현은 디지털 사회에서 감정적 교류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상황을 비극적으로 묘사하며, 독자로 생각해 보게 한다.

"산을 내려오다 뒤돌아보니 / 며칠 뒤면 떠난다는 가을에게 / 조금만 더 머물다 가라며 / 눈시울 붉게 손잡고 있는 / 억새가 서 있다"는
억새와 가을이라는 자연의 이미지가 중심이 된다. 여기서 억새는 떠나가는 가을을 붙잡고자 하는 마음을 상징한다. '눈시울 붉게'라는 표현은 시적 화자의 애틋함과 절박함을 극적으로 드러내며, 억새가 가을을 붙잡는 모습은 인연을 놓고 싶지 않은 인간의 심리를 투영하고 있다. 이는 시인의 섬세한 감성적 터치를 통해 억새와 인간의 감정이 공명하는 순간을 형상화한 것이다.

마지막 행 "가끔은 억새처럼 / 당신의 손길 잡고 싶다 / 가장 순결히 / 가을로 물들어가는 / 당신의 손길을"은 다시 처음의 감정으로 돌아가며 마무리된다. 억새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의 손길을 잡고 싶다는 표현은 시인의 순결한 감성과 인간 본연의 감정을 상징한다. ‘가을로 물들어가는 당신의 손길’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감정이 시간에 따라 깊어지고 변해가는 과정을 시적으로 표현하며, 이로써 시는 자연과 인간의 감정을 하나로 연결한다.

요컨대, 박덕은 시인의 ‘억새’는 억새라는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섬세한 감정과 관계의 복잡성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간결하고 명료한 언어로 인간 내면의 고독과 갈망, 그리고 소통의 부재를 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억새가 가진 이미지적 힘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 시간과 감정의 유기적 연결을 그려낸 이 시는,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시인의 철학적 가치와 감성적 깊이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박덕은 작가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시인
전남대 교수 역임
노벨재단이사장(법인)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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