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 시인의 '생각을 틀며'를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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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틀며
시인 박순
울퉁불퉁 구불구불 휘어지며
똬리를 튼 소나무는
솔방울을 매달며 하루하루 버티더라
새끼가 뭐라고
작은 머리 위에 똬리를 얹고
새벽이면 무거운 짐을 이고 장사를 나섰다
비바람에 날아갈까 꼭 붙들고
걷고 또 걸었다
가마솥 같은 더위에 녹아내리는 소금 모양으로
땀방울을 흘리며 걷고 또 걸었다
새끼가 뭐라고
왜 이리 머리가 아프다냐
왜 이리 몸뚱어리가 오그라들었다냐
왜 이리 사는 게 팍팍하다냐
새끼가 뭐라고
새끼 걱정에 오늘도
똬리를 틀며 너희들을 보고 있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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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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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 시인의 삶은 굴곡진 인생의 여정과 강한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그의 시는 흔히 자연과 인간의 삶을 결합하여, 삶의 현실과 고통을 상징적 이미지로 풀어낸다.
특히,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소나무는 단순한 자연의 한 요소를 넘어, 강인함과 인내의 상징이 된다.
박순 시인의 경험과 감정이 녹아든 그의 시는 독자에게 생생한 감정의 파도와 깊은 성찰을 안겨준다.
그의 시 "생각을 틀며"는 이와 같은 작가의 철학과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의 무게와 그 안에서의 생명력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첫 행은 "울퉁불퉁 구불구불 휘어지며 똬리를 튼 소나무는"이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이 표현은 자연의 한 요소인 소나무를 인간의 삶과 고통에 빗대어 묘사한다. "울퉁불퉁"과 "구불구불"은 거친 길을 암시하며, 이를 통해 소나무가 성장하는 과정이 마치 험난한 삶의 여정을 나타내는 듯하다.
또한 "똬리를 튼"이라는 표현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첫째로, 소나무가 자연의 힘에 굴하지 않고 견뎌내는 모습은 인간의 고난을 상징한다.
둘째로, 그 모습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다듬고 새롭게 하는 인간의 강인한 정신을 나타낸다.
"솔방울을 매달며 하루하루 버티더라"는 소나무의 생명력과 끈기를 표현한다. 솔방울은 소나무의 씨앗이자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매일같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버티더라"는 표현은 일상의 반복 속에서 인내하는 삶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이 문장은 인생의 무게를 견디며,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는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시인은 이를 통해 독자에게 힘겨운 일상 속에서도 희망의 씨앗을 품고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새끼가 뭐라고 작은 머리 위에 똬리를 얹고"라는 표현은 매우 독특하다. 여기서 "새끼"는 어린아이 또는 사랑하는 존재를 상징하며, "작은 머리 위에 똬리를 얹고"라는 표현은 인생의 무게를 짊어진 인간의 모습을 암시한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 고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연상되며,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헌신적으로 살아가는지를 시사한다. 이러한 구절은 부모의 희생과 헌신을 더욱 감동적으로 느끼게 한다.
"새벽이면 무거운 짐을 이고 장사를 나섰다"는 구절은 삶의 시작을 알리는 새벽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함께, 무거운 짐을 지고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으로 인간의 노동과 투쟁을 강조한다. "무거운 짐"은 육체적 노동뿐만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부담까지도 의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시인은 우리에게 생존을 위한 고된 노력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비바람에 날아갈까 꼭 붙들고 걷고 또 걸었다"와 "가마솥 같은 더위에 녹아내리는 소금 모양으로"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시적 긴장감을 높인다. "비바람"은 인생의 시련과 고난을 상징하며, "꼭 붙들고 걷고 또 걸었다"는 구절은 그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인간의 의지를 나타낸다.
특히, "녹아내리는 소금 모양으로"라는 표현은 땀방울과 동시에 인간의 몸과 정신이 고통 속에서 사라지는 듯한 이미지를 그려내며, 삶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시의 후반부에서는 "왜 이리 머리가 아프다냐, 왜 이리 몸뚱어리가 오그라들었다냐"라는 반복적인 질문이 이어진다.
이는 단순한 육체적 고통을 넘어서,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고통을 내포하고 있다. 시인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 고난의 무게가 신체적뿐만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이러한 반복은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행인 "새끼 걱정에 오늘도 똬리를 틀며 너희들을 보고 있댜"는 시 전체의 주제를 응축하여 전달한다.
이 구절은 부모나 보호자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 "똬리를 틀며 너희들을 보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아무리 힘들고 고된 상황에서도 자식을 바라보며 힘을 얻고, 그들을 위해 다시 일어선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시는 박순 시인의 가치철학, 즉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생명력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강조한다. 시인은 자연을 통해 삶의 진리를 드러내며, 동시에 인간의 본질적인 사랑과 희생을 표현하고자 한다.
전체적으로 "생각을 틀며"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강인한 정신과 사랑을 예찬하며, 독자로 하여금 삶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힘을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박순 시인의 시적 언어는 단순하고 직설적이지만, 그 속에 깃든 상징과 은유는 매우 강렬하고 깊다. 그의 시는 한 편의 시를 통해 자연과 인간,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생각을 틀며"는 고된 삶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을 잃지 않는 인간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며, 그의 시가 독자에게 강한 감동을 주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시적 언어의 힘과 메시지 때문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