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동 시인의 '가을이 오는 소리'를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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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는 소리
시인 石 英 박 길 동
지루한 장마 끝나고
더위가 물러갔다
산들바람 불어와
밤이슬 차갑다
벼 이삭 고개 숙이고
코스모스 하늘하늘 손짓한다
처서處暑 지나니
모기는 입이 삐뚤어지고
매미 울음소리 멈추었다
울밑에 귀뚜라미 노랫소리에
무더위는 떠나가고
소슬바람에
그대가 오는 소리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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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길동 시인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긴 시인으로, 그의 작품에는 자연 속에서 삶의 이치를 탐구하는 깊은 통찰이 드러난다.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삶의 무상함과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은, 풍경 속에 녹아든 자신의 감정을 통해 독자에게 삶의 철학을 전하고자 했다.
그의 작품은 사색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섬세한 감각을 바탕으로 생명의 본질과 그 흐름을 시각화한다. "가을이 오는 소리"라는 작품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읽어야 할 시로, 자연의 변화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한다.
시의 첫 행, "지루한 장마 끝나고 / 더위가 물러갔다"는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암시한다.
여름의 끝을 알리는 장마와 더위는 피곤한 일상이나 지친 마음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자연의 현상에 인간의 감정을 투영함으로써, 독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장마와 더위가 지나간 후의 청명함은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며, 이는 인생에서의 어려운 시기가 끝나고 다가오는 평화로운 순간을 상징한다.
이어지는 "산들바람 불어와 / 밤이슬 차갑다"는 변화의 조짐을 느끼게 한다. 산들바람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사이며, 밤이슬의 차가움은 점차 깊어가는 가을의 기운을 전해준다.
이는 자연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을 담고 있다. "밤이슬 차갑다"는 감각적인 표현으로, 시적 화자가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섬세하게 느끼고 있음을 나타낸다.
"벼 이삭 고개 숙이고 / 코스모스 하늘하늘 손짓한다"는
시각적 이미지가 돋보이는 구절이다. 무르익어 고개를 숙이는 벼 이삭은 성숙함과 수확의 풍요로움을 나타내며, 코스모스의 흔들림은 가을바람에 살랑이는 가냘픈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자연의 움직임을 통해 삶의 겸허함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전달한다. 또한, 이 구절은 인간의 삶과 자연의 순환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처서處暑 지나니 / 모기는 입이 삐뚤어지고 / 매미 울음소리 멈추었다"는 가을의 절기를 중심으로 한 자연의 변화를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처서는 여름의 끝자락을 의미하며, 모기와 매미의 변화는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이는 인간의 삶에서도 각 계절마다 맞이하는 변화와 적응을 상징하며, 시인은 자연의 섭리를 통해 인간의 생애주기를 암시하고 있다.
"울밑에 귀뚜라미 노랫소리에 / 무더위는 떠나가고"는 가을의 소리, 특히 귀뚜라미 소리를 통해 자연의 변화를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귀뚜라미의 소리는 시적 화자의 감정과 연결되며, 더위가 떠나고 새로운 계절이 다가오는 것을 청각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이 구절은 자연의 변화 속에서 느끼는 일종의 감정적 환기를 의미하며, 자연의 소리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조용히 울리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소슬바람에 / 그대가 오는 소리 들린다"는 가을바람을 통해 어떤 존재, 아마도 그리운 대상의 접근을 암시하고 있다.
이 '그대'는 시인이 기다리고 있는 대상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더 깊은 의미에서 삶의 어떤 중요한 변화를 상징할 수도 있다. 바람 소리를 통해 '그대'의 접근을 느끼는 것은 감각적 경험을 통한 시적 화자의 내면적 변화를 나타내며,
시 전체의 유기적 흐름을 마무리 짓는 중요한 구절이다.
이 시는 박길동 시인이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통해 삶의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자연의 변화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생생하게 전달하면서도, 그 속에 인간의 감정을 은유적으로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주제의식은 자연과 인간의 순환적 연결성,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삶의 깊이와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로 요약될 수 있다.
시인은 계절의 변화 속에서 삶의 다양한 얼굴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동시에 노래한다. "가을이 오는 소리"는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 그 안에 담긴 생명의 본질과 인간의 내면적 성숙을 깊이 탐구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