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13. 2024
백영호 시인의'볼트와 넛트 2'를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
볼트와 넛트 2
시인 백영호
어둠이 선거에서 이긴
당선자처럼 위풍당당
점령군으로 다가 올 즈음
탁자 위에 놓인
볼트넛트 한 짝에 시선 매단다
오돌토돌한
살점 속에 살이 있어
끊김과 이음이
정중동靜中動의 나라
고요 속 움직임에
북과 꽹과리 난타의 공연
드러남과 감춤이 있고
안內인가 싶더니 밖外이 되고
나감出인가 싶더니 들옴入이라
구속과 자유가 공존하며
요凹와 철凸,
오목과 볼록이 한 몸이니
삶과 죽음이 한 울에 산다
묘하다
모순과 순리의 다채롬서
풀림과 잠김, 묘한 조화로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백영호 시인은 그의 시에서 삶의 이중성과 모순을 탁월하게 표현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시는 대체로 일상적인 사물에서 삶의 본질을 발견하고 이를 시적 언어로 재구성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번 시 '볼트와 넛트 2'에서도 그는 볼트와 넛트라는 일상적 사물을 통해 삶과 죽음, 구속과 자유, 안과 밖 등 다양한 대비적 개념을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백영호의 시는 단순히 사물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물 속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깊이 탐구하며 독자로 새로운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첫 번째 행에서 시인은 "어둠이 선거에서 이긴 당선자처럼 위풍당당"이라는 표현으로 어둠이 점령군처럼 다가오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는 밤의 도래를 암시하면서 동시에 어둠이 가져오는 어떤 지배적 힘을 연상케 한다.
어둠이란 보통 부정적이고 두려운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시인은 이를 '당선자'와 '위풍당당'이라는 긍정적인 어조로 풀어내면서 독자에게 역설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어둠이 단순히 부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어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탁자 위에 놓인 '볼트넛트 한 짝'에 대한 시선은 매우 집중적이다. 이는 평범한 사물에 대한 시인의 깊은 관찰력을 보여준다. 볼트와 넛트는 그 자체로는 기능을 하지 않지만, 결합될 때 서로를 고정시키고 하나의 완전한 구조를 형성한다. 이는 인간관계나 삶의 다양한 면에서의 상호의존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오돌토돌한 살점 속에 살이 있어'라는 표현은 볼트와 넛트의 표면과 내면을 묘사하며, 시인은 여기서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표면은 거칠지만 그 속에 뭔가 중요한 것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외면과 내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대비를 통해 삶의 깊이를 탐구하는 방식이다.
'끊김과 이음'은 서로 대조되는 두 개념을 하나로 묶는다. '정중동靜中動의 나라'라는 표현은 고요함 속에서의 움직임을 의미하며, 이는 우리의 일상 속에 내재된 모순적 역동성을 표현한다. 이는 일상적 삶 속에서 발견되는 조용한 변화와 움직임을 표현하는 동시에, 삶 자체가 정적인 동시에 동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드러남과 감춤'이라는 구절에서는 '안內'과 '밖外', '나감出'과 '들옴入'의 상호 전환을 통해 대비적 개념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시적으로 그려낸다. 이는 삶의 불확실성과 모순, 그리고 그 속에서의 조화로운 움직임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시인은 여기서 명확한 구분을 하지 않고, 경계가 불분명한 세계를 제시하면서 독자에게 사유의 여지를 남긴다.
'구속과 자유가 공존하며'는 볼트와 넛트의 조화를 표현하면서, 인간의 삶에서 구속과 자유가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우리가 속박된 듯 보이는 상황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고, 자유로운 상황에서도 어떤 형태의 구속이 있다는 역설적 진리를 담고 있다.
'요凹와 철凸', '오목과 볼록이 한 몸'이라는 구절에서는 모순적 개념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삶과 죽음의 순환적인 본질을 암시하며, 모순 속에서도 어떤 일관성과 질서가 있음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구절들은 인간 존재와 삶의 복잡한 양상을 깊이 있게 탐구하려는 시인의 의도를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묘하다'로 시작하는 구절에서는 이 모든 대조와 모순, 조화 속에서 드러나는 삶의 묘미를 인정하며, 이를 시적인 언어로 승화시킨다.
'모순矛盾과 순리順理의 다채롬서'라는 표현은 모순과 조화가 동시에 존재하는 삶의 다양한 측면을 고찰하는 시인의 깊은 철학적 사고를 반영한다.
요컨대, 이 시는 단순한 사물의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 사물을 매개로 삶과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볼트와 넛트라는 일상적 사물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시인의 통찰은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삶의 다양한 모순과 조화를 동시에 끌어안는 태도를 제안한다.
이는 백영호 시인이 일상 속에서 발견한 철학적 진리를 시적 언어로 승화시키는 독특한 능력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시인의 언어는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고, 그의 시적 상상력은 독자에게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