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13. 2024
배선희 시인의 시 '자생식물'을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
자생식물
시인 배선희
1.
지구온난화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 생산확대로 품종개량에 의한 변종 여행자유, 뿌리내린 세계식물 이동에 의한 변태.
지구는 지구대로 순리가 꼬여 고통받고 있고
나라마다 지역마다 생태계가 병들고 있다
사람만 철없이 까불어 대는 것이 아니라 제철만은 꼭 지키던 식물마저 철을 잃어가고 있다.
철 모르는 사람보다 철 잃는 식물 때문에 가슴 아파 바쁜 사람이 있어 오늘도 찾았다
천계가 제 궤도를 지키듯 철들려고
한국 땅에 뿌리내리고 명줄을 지켜와 준 자생식물의 종자를 보호하고 번식시키며 멸종위기 식물들을 보관하느라 바쁜 사람 나라가 할 일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는 사람
나는 *그분을 일러 야생화 명인이라 부른다
우리 산과 들에서 만날 수 있는 귀한 야생화를
이곳에 오면 한자리에서 다 만날 수 있어 좋다
한국식물도감에도 없는 미기록종도 있어 좋다
바쁠 터인데 왜 자주 오느냐고 물으면 답하죠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들을 확인하러 온다고.
2.
내 고향 청송 산골짜기를 종종걸음으로 나설 때부터
어머니는 눈에 보이는 식물들을 하나씩 인사시켜 주셨다.
어느 철에 싹이 트고 꽃이 피어 무슨 열매를 맺는지
식품인지 약재인지까지는 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세상만사 체험길에 나섬도 그 때문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어느 도시에서 소학교 교사로서
그 도시민들의 부인회장을 역임하셨던 어머니는
당시 일본인이 만든 [한국자생식물도감]을
경전을 보듯 성서를 읽듯 뼛속 깊이 담으셨다.
귀국 후 청송에서 약재 재배로 여생을 보내셨다
한발 짝도 움직이지 않는 식물이 그 땅의 주인이고
제 강토를 떠나지 않는 토종식물이 애국이라며
산 돌아 강돌아 들건너 자생식물을 지키라 하셨으니
역사가 바뀌고 세상이 변해도 자기 땅을 지켜 사는
자생식물들! 그래서 이곳을 찾는다는 말은 못 하고,
식물학자도 아닌 것이 전문 여행가도 아닌 것이
카메라 하나 앞세우고 무거운 배낭 집어진 지
어언 육 년, 석가모니는 깨달아 붓다가 되셨는데
마음만 바쁘고 지혜는 열리지 않아 고된 여행길!
가는 곳마다 지켜사는 자생화가 있어, 갈 수밖에
*
그분은
전국에 산재해 있는 토종 자생식물들을 수천 종 수집하여, 그 종을 보존하고 있는 충주 산유화 자생식물원의 '김용연'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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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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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희 시인은 자연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적 언어를 통해 한국 자생식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철학을 드러낸다.
그의 시는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태계의 변화 속에서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특히 그의 삶에서 어머니의 영향은 크다.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서 교육자로서의 경험과 함께 한국 자생식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지녔고, 이는 배선희 시인의 작품 전반에 걸쳐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고 있다.
시인은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바탕으로 우리 땅에서 자란 자생식물들을 보존하고 지키는 사람들의 삶을 시적 언어로 풀어낸다.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한국 땅의 자연과 역사, 그리고 생명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환기시키고자 한다.
1.
첫 번째 연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와 그에 따른 식물들의 변종을 언급하며 시작한다. 이 문장은 기후변화로 인해 자연의 순리가 왜곡되고,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결과로써 생태계가 고통받고 있음을 나타낸다. '지구는 지구대로 순리가 꼬여 고통받고 있고'라는 표현은 지구가 스스로의 질서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직관적 진술을 통해, 자연의 자정 능력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환경이 변하고 생태계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며, 자연보호의 필요성을 환기한다.
두 번째 연에서는 식물들조차 계절을 잃어가고 있다는 표현을 통해 자연의 위기를 묘사한다. 이 부분은 기후 변화와 생태계 변화가 사람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계절에 맞춰 살아가던 식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철을 잃어가는 식물을 통해,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삶이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균형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세 번째 연은 그럼에도 철을 잃지 않고 자연의 순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특히 ‘야생화 명인’이라 불리는 이들의 헌신과 열정을 통해, 시인은 자연보호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사랑을 강조한다. 이는 작가의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자연에 대한 존경심과 일맥상통하며, 독자에게 자연을 지키는 일의 숭고함을 일깨워준다.
네 번째 연에서는 한국의 자생식물들이 가진 고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이들을 보존하는 일이 국가의 책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는 단순한 식물 보존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와 전통, 그리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연결된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자생식물의 종자를 보호하고 번식시키며 멸종위기 식물들을 보관하느라 바쁜 사람’을 묘사하며, 이들이 곧 한국의 생태계와 문화를 지켜내는 파수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2.
첫 번째 연은 시인의 어린 시절과 어머니와의 기억을 통해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묘사한다. 청송 산골짜기를 함께 걸으며 어머니는 하나하나 자생식물들을 시인에게 소개하고, 각 식물이 어떤 계절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지를 가르쳐주었다. 시인은 식물의 모든 속성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어머니와의 이러한 경험이 그가 세상과 자연을 탐험하고 이해하려는 출발점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이는 자연에 대한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삶의 경험과 철학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을 잘 보여준다.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자연과의 교감은 시인의 내면에 깊이 새겨져, 지금까지도 그의 삶과 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암시한다.
두 번째 연에서는 시인의 개인적 경험과 어머니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시인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로부터 자생식물에 대한 깊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서 ‘한국자생식물도감’을 성서처럼 소중히 읽고, 이를 통해 한국 자생식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러한 어머니의 경험은 시인의 시적 세계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 시를 통해 그가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과 경외심을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보여준다.
세 번째 연에서는 자생식물들이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시인은 "한발 짝도 움직이지 않는 식물이 그 땅의 주인"이라는 표현을 통해, 식물들이 그 땅에서 자연스럽게 존재하며 그 자체로 주인이 되는 모습을 시각화한다. 이는 인간이 그 땅의 주인임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땅의 식물들이 진정한 주인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구절이다.
네 번째 연은 시인이 자신을 식물학자나 전문 여행가가 아닌, 단지 자연을 사랑하는 순례자임을 자각하며 느끼는 고뇌와 열망을 표현한다. 카메라와 배낭을 짊어지고 6년간 자생식물을 찾아다닌 여정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났듯이 자신만의 깨달음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시인은 "마음만 바쁘고 지혜는 열리지 않아"라는 구절을 통해 아직도 자신에게는 그 깨달음이 오지 않았음을 토로한다. 그럼에도 각기 다른 곳에서 자생하고 있는 자생화들을 통해 자연의 순리를 깨닫고, 그들에게 이끌리듯 계속해서 길을 나설 수밖에 없음을 시적 언어로 절묘하게 표현한다.
이는 시인의 끊임없는 탐구 정신과 자연에 대한 겸허한 자세를 드러낸다.
배선희 시인의 이 시는 감성적인 측면에서 독자에게 강한 울림을 준다. 시인은 자연을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으로 그리지 않고, 인간과 자연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고찰한다. 자생식물의 이미지들은 독자에게 정체성과 뿌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야생화 명인'과 '자생식물'은 단순한 식물의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 삶과 연결된 철학적이고 문화적인 상징으로 다가온다.
시인은 이러한 상징들을 통해 독자가 자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유도한다.
배선희 시인의 가치철학은 자연에 대한 경외와 존중, 그리고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헌신에 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배운 자연에 대한 애정과 자생식물의 가치를 시를 통해 드러내며, 우리의 땅과 자연을 지키는 것이 곧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라는 주제의식을 전달한다.
이는 단순한 자연보호의 메시지를 넘어,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역사, 그리고 문화를 포함하는 깊은 철학적 사유를 포함하고 있다.
배선희 시인의 '자생식물'은 한국의 자연과 생태계, 그리고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헌신과 열정을 다층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시인은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바탕으로, 생태계의 중요성과 그것을 지키는 일의 소중함을 시적 언어로 표현한다.
그의 시는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깊은 통찰을 제시하며, 독자들에게 자연과 삶의 조화로운 공존을 재고하게 만든다. 철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그의 시적 태도는 자연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반영하며, 이는 오늘날 생태계 위기 속에서 더욱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ㅡ청람